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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너그럽고 부드러운! 덕유산 품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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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없이 너그럽고 부드러운! 덕유산 품에 들다

2017년 8월 백두대간종주 12구간 <덕유산권역 남덕유산구간>

백두대간학교(교장 이철승, 백두대간전문가) 2017년 8월 산행은 제72강으로 백두대간종주 12구간입니다. 8월 19일(토), <백두대간 덕유산권역 남덕유산구간>입니다.

백두대간학교 제72강 2017년 8월 산행은 백두대간종주 12번째 산행입니다. 백두대간학교는 2016년 9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으며, 참가자 전원이 2016년 9월 <천왕봉구간>, 10월 <벽소령구간>, 11월 <금산구간>, 12월 <만복대구간>, 2017년 1월 <수정봉구간>, 2월 <고남산구간>, 3월 <봉화산구간>, 4월 <중재구간>, 5월 <백운산구간>, 6월 <노고단구간>, 7월 <영취산구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완주했습니다.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서봉)ⓒ백두대간학교

[산행지안내]
백두대간학교 제72강 2017년 8월 산행은 백두대간 종주 그 열두 번째 산행입니다. 산행일은 8월 19일(토) <백두대간 덕유산권역 남덕유산구간>입니다.

백두대간종주 8월 산행은 부드럽고 너그러운 덕유산으로 들어갑니다. 덕유산권역 첫 산행으로, 육십령에서 덕유산의 품으로 들어가 할미봉에 올라, 지나온 영취산·백운산을 조망하고, 남덕유산의 유장한 품에 안깁니다. 장수덕유산(서봉)에서 잠시 다리쉬임을 하고 남덕유산 정상에 섭니다. 지리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을 담고 돌아서면 향적봉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덕유산의 능선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솔바람이 땀을 듣게 해주는 남덕유산의 숲에서 8월의 백두대간을 걷습니다.

[구간소개]
-산행월일 : 2017년 8월 19일(토)
-산행출발 : 2017년 8월 18일(금) 오후 11시
-산행코스 : 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서봉)-남덕유산-월성재-황점마을
-산행거리 : 약 14km(도상거리)
-소요시간 : 약 10시간
-난 이 도 : 상하(★★☆)

▲남덕유산 표지석ⓒ백두대간학교

이철승 교장선생님으로부터 8월 산행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8월의 대도시는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와 도시에서 방출하는 온갖 화기로 폭염과 찜통에 시달립니다. 이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마음이 조급해져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기 십상입니다. 이럴 때 하루쯤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찜통더위 속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짜증은 더위를 식혀주는 산들바람을 타고 스르르 사라집니다. 향긋한 풀내음과 싱그러운 숲의 청량한 기운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피톤치드 가득한 덕유산의 숲길로 마음의 안정과 세속의 지친 삶의 치유를 찾아 힐링의 시간여행으로 들어갑니다.

8월 백두대간학교는 덕유산권역으로 들어갑니다. 산행의 시작은 남덕유산이 올려다 보이는 육십령입니다. 옛날, 도적이 많아 육십 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육십령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이어주는 큰 고갯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적한 길입니다. 스트레칭 후 육십령휴게소를 등에 두고 덕유산 그 넓은 품으로 들어갑니다. ‘산삼의 고장 함양’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들어서면 옛 성터의 흔적이 보입니다. 잘 쌓여진 성벽을 지나며 등산로는 조금씩 그 고도를 높입니다. 734m의 육십령에서 1,026.4m의 할미봉까지 약 1시간 30분여 동안 서서히 고도를 높입니다. 우측의 커다란 암괴에 메어진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할미봉입니다.

할미봉에 서면 남으로는 깃대봉을 지나 백운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구절양장 아스라이 이어집니다. 서편으로는 장계의 너른 들녘과 장수경주마목장 그리고 산들의 중첩이 첩첩합니다. 동으로는 월봉산, 금원산을 지나 기백산과 거창의 산하가 자리를 잡고 있고, 북으로는 장수덕유산(서봉)과 남덕유산이 병풍처럼 우뚝하니 펼쳐져 있습니다. 할미봉 옆 우뚝하니 솟은 대포바위는 전설을 간직한 채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심한 듯 서있는 늘 푸른 소나무 한 그루는 대포바위의 영원한 친구입니다.

여기서 할미봉 하면 연상되는 할미꽃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김하돈님이 지은 <그 산맥은 호랑이 등허리를 닮았다>에 보면 <꽃이 된 할머니>라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상도 어느 산골짜기에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살았다. 난리 통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엾은 손녀들이었다. 그런데 맏손녀는 얼굴은 비록 못생겼지만 마음씨가 아주 고았고, 작은손녀는 얼굴은 예뻤지만 마음씨가 고약했다.

어느덧 손녀들이 자라 모두 혼처가 정해졌다. 얼굴이 예쁜 작은손녀는 이웃 마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고, 마음씨 고운 큰손녀는 멀리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맏손녀는 할머니를 두고 멀리 시집가는 것이 마음 아파 밤새 울었다. 그렇다고 넉넉하지 않은 시댁 살림에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집가는 날 맏손녀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뒤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손녀들이 떠난 외딴집은 쓸쓸했다.

할머니는 손녀들을 돌보기 위해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일했지만, 막상 손녀들이 모두 시집을 가고 보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졌다. 일어나 밥 지을 기운도 없어 할머니는 점점 끼니를 거르게 되었다. 그나마 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먹을 양식도 모두 떨어져버렸다. 병든 몸으로 외로움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손녀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힘든 몸을 일으켜 겨우겨우 재 넘어 작은손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작은손녀는 창피하게 시댁까지 찾아왔다고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보고 싶었던 작은손녀 얼굴을 보았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할머니는 다시 맏손녀가 사는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맏손녀가 사는 마을은 너무 멀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득한 동네였다. 할머니는 끝내 맏손녀 집까지 가지 못하고 고갯마루 이름 모를 무덤 곁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봄, 할머니가 죽은 자리에서 할머니를 꼭 닮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꽃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애잔함이 서린 할미꽃의 유래를 듣고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섭니다. 급경사면 로프를 잡고 내려서면 순한 능선이 이어집니다. 너른 공터에서 아침 산행의 허기진 배를 넉넉히 채우고 다시 등산화가 이끄는 데로 발길 이어갑니다. 참나무 울창한 숲길 이어지고 조금 더 고도를 높이면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조릿대길이 계속됩니다.

평탄했던 등산로는 영각사 갈림길에서 서서히 머리를 세웁니다. 서봉(장수덕유산)까지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로프가 달린 암릉 구간과 벼랑처럼 이어진 날카로운 구간을 지나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입니다. 서봉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진 장쾌한 능선이 펼쳐집니다. 잠시, 산들의 밑그림과 구름과 바람이 그려내는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람에 몸을 싣고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유영합니다. 자유롭게 바람에 몸을 맡기고 구름 달 가듯 유유자적한 시간입니다.

우둘투둘 바위구간을 지나고 작은 숲 터널을 지나면 서봉입니다. 장수덕유산이라고도 불리 는 서봉 아래로 조금 내려서면 시원한 샘이 숨어있습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참샘입니다. 시원하고 알싸한 물맛은 오르막으로 점철된 산행의 피로는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합니다. 한 모금 더 목을 축이고 수통에도 가득 채우고 다시 서봉으로 올라섭니다.

서봉에서의 조망도 감탄사가 연발합니다.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 중봉, 향적봉으로 이어진 덕유산의 주능선이 용틀임하고 있고 백암봉에서 못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의 주능선도 호방함을 자랑하며 활시위처럼 탱탱한 곡선의 미를 뽐내고 있습니다. 구름 아래 펼쳐진 산들의 향연은 덤덤한 그리움입니다.

아찔한 철제계단을 내려서며 남덕유산으로 향합니다. 서봉에서 남덕유산까지의 구간은 알프스의 만년설이 흘러내려 만든 빙하의 U자 계곡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서봉에서 급격히 고도를 낮추며 내려서서 평탄한 안부를 걷다가 남덕유산 근처에서 다시 고개를 곧추세웁니다. 발 디딤과 확보에 주의하며 모싯대꽃 하늘거리는 숲을 지나서 잠시 숨 가쁘게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남덕유산 정상입니다.

남쪽하늘 하얀 적란운 아래 지리산의 주능선이 아스라하게 보이는 남덕유산에서 다시 한 번 너그러운 덕유산의 기운을 한껏 받습니다. 눈으로 담고, 향기로 담고, 바람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습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향적봉과 중봉의 주목의 이야기와 향 내음 맡으며 남덕유산을 내려섭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시원한 물 한모금과 소박한 반찬으로 삥 둘러 앉아 맛있게 점심식사 나눕니다. 막걸리 한 잔 함께 나누며 기운 돋우고 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든든한 시간을 갖고 월성재로 향합니다. 살랑거리는 모시나비와 함께 걷다 보면 금새 월성재입니다.

월성재에서 백두대간 마루금과 인사 나누고 우측 황점마을로 내려섭니다. 월성계곡과 나란히 걷는 길입니다. 울창한 덕유산의 계곡답게 수량이 풍부합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계곡이 계속 이어집니다. 시원한 물줄기를 품어내는 이름 모를 폭포들을 지납니다. 청량한 계곡물 소리와 함께 내려가면 황점마을입니다. 시원하게 흐르는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그며 백두대간 남덕유산 구간을 마무리합니다.

이어 지근거리 식당으로 옮겨 덕유산이 내어주는 덕유산 기운을 먹고 자란 나물들과 버섯들이 만들어내는 산채정식으로 늦은 식사 겸 뒤풀이하며 여름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 보냅니다. 메밀파전과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함께한 도반들과 산행 후일담을 이야기하며 8월 백두대간 산행을 마칩니다.

함께 걷는 백두대간학교는 도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입니다. 혼자 걸으면 나만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8월 백두대간학교 남덕유산의 부드럽고 유장한 능선을 걸으며 세속의 온갖 잡념 날려버리시고 향긋한 숲의 기운과 백두대간의 기상 마음껏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 덕유에 서다.ⓒ백두대간학교


[산행계획]
여유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와 동행하며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공인 등산가이드이신 이철승 교장선생님과 전문가이드 선생님들이 선두와 후미에서 함께 하며 평안하고 안전한 산행을 진행합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 전에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8월 18일(금) 오후 11시
23:00 덕수궁 대한문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역 2번출구)
23:30 사당역 공영주차장앞 출발(지하철 2,4호선 1번출구)
23:40 양재역 서초구청 폭포앞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출구)
23:55 경부고속도로 죽전(하행) 버스승차장
8월 19일(토)
00:05 경부고속도로 신갈(하행) 버스승차장

<산행일정>
03:50 육십령 도착/산행 준비&스트레칭
04:00 육십령 출발
05:30 할미봉
06:00 안부–아침식사(도시락 지참)
07:30 영각사갈림길삼거리
09:30 서봉(장수덕유산)
10:40 남덕유산
10:50 갈림길삼거리 안부–점심식사(도시락 지참)
12:00 월성재
14:00 황점마을–산행 마감/스트레칭
남덕유산 산나물집-산채정식, 메밀파전과 막걸리로 늦은 식사 겸 뒤풀이
15:30 황점 출발
18:30 서울 도착(예정)
*상기 시간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종주 12구간 <남덕유산구간> 산행도Ⓒ백두대간학교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재킷, 우의, 스틱, 물통,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아침-도시락, 점심-도시락 등

▶백두대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2017년 9월 백두대간종주 13구간 산행 안내]
-산 행 지 : 백두대간 덕유산권역 무룡산구간
-산행일시 : 2017년 9월 16일(토)-무박 산행
-출발일시 : 2017년 9월 15일(금) 오후 11시
-산행코스 : 안성탐방지원센터-동엽령-무룡산-삿갓재-월성재-황점마을
-산행거리 : 약 16km
-소요시간 : 약 10시간
-난 이 도 : 상하(★★✫)
*상기 일정은 현지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대포바위ⓒ백두대간학교

[산행자료]
[덕유산] 1,614m 향적봉.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광려산(匡慮山), 여산(廬山)으로 불렸다. 이성계가 고려 장군 시절 이 산에서 수도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글거렸으나 한 번도 해를 입지 않아 덕이 넘치는 산으로 덕유산이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安城面)·설천면(雪川面)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 주봉인 향적봉에서 시작해 남으로 중봉, 덕유평전을 지나,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에 이르는 장장 100리에 걸친 산으로 덕유산맥으로도 불린다. 계곡은 총 8곳이 있는데,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으로 흘러드는, 길이 30㎞의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덕유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금산군편에 “안성소에 있는데 경상도와 안음현의 지경에 있다”고 했다. 안음현편에는 “현 서북쪽 60리 지점에 있으며, 전라도 금산국과 장수현의 경계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증환의 <택리지>에는 “덕유산은 흙산인데 구천동이 있고 천석(泉石)이 깊숙하다”고 쓰여 있다.
17세기 후반에 쓰여진 윤증의 <유광려산행기>에는 덕유산의 별칭이 ‘광려산’이며 “광려산은 금산군 안성현에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안성현 쪽에서는 덕유산을 광려산으로 부른 것 같다. 이 책은 “구천동의 백련암에는 1백 명의 승려가 모여 독경한다” “향적봉에 오르니 왼쪽에 가야산 오른쪽에 둔악(屯岳. 어딘지 모름)이 있고 두류산(지리산)이 남쪽 하늘 끝에 가로 걸쳐 있다” “동구(구천동 입구)는 철쭉이 다 져가는데 산 위에는 아직도 한창이다” “수많은 봉우리는 개미둔덕 같다”는 등 덕유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 명종 때 광주목사를 지냈던 임훈은 그의 저서 <등덕유산 향적봉기>를 통해 덕유산의 주봉을 향적봉이라 했고, 이는 주목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남덕유산이 황봉이고, 무룡산은 불영봉이라고 했다. 덕유산권의 사찰로는 직지사와 백련사, 송계사, 영각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덕유산은 1975년, 오대산과 더불어 국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태백산에서 이어진 백두대간이 서남쪽으로 뻗으면서 소백산, 속리산 등을 솟아오르게 한 후, 다시 지리산으로 가는 도중 그 중심부에 빚어놓은 또 하나의 명산이라고 할 수 있다.
13개의 대(臺), 10여 개의 못, 20개의 폭포 등 기암절벽과 여울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구천동계곡은 예부터 선인들이 이름 붙인 33경으로 덕유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육십령에서 동엽령까지 남덕유로 불리고 남덕유의 주봉은 장수덕유산(서봉) 1,510m다. 남덕유는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 장수덕유, 할미봉으로 이루어진다.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했다. <문헌비교>와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은 대덕산을 경유, 덕유삼봉-백암봉-봉황산을 거처 육십령으로 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덕유산은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남덕유가 암봉으로 날카롭다면 북덕유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매우 유순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흙산인데 구천동(九泉洞)이 있고 천석이 깊숙하다. 난리를 격을 때 이 산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데서 “덕이 큰 산” “넓고 크다”라고 했다. 또한 임훈의 <덕유산향적봉기>에는 무주구천동을 불공을 이룬 자 9천 명이 머문 둔소라 했고 박문수 어사가 천(千)씨 부자와 관련해 구천동민을 신도로 다스렸다. 구(具)씨와 천(千)씨가 많이 산다고 해서 구천동(具千洞)이라 한다고 하는 말도 있다.
백암봉-중봉-향적봉의 덕유평전과 주목, 향적봉에서의 조망은 매우 훌륭하며, 설경산행이 최고의 백미인 향적봉은 대간길을 벗어나 있다.

▲백당나무꽃ⓒ백두대간학교

[월성재] 아래 ‘월성리’라는 마을이 있다. 월성(月星)은 달이 마을 앞 성삼봉(城三峰)에 비친다 하여 월성(月城)이었던 것이 달(月), 별(星) ‘월성’으로 바뀌었다.

[남덕유산] 1,507m. 지리산 다음으로 크고 넉넉하고 덕이 있는 덕유산이며, 덕유산의 연봉들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덕유(德裕)산에 남녁 남(南)자를 붙인 이름이다.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 일대를 북덕유산, 장수군에 있는 서봉을 장수덕유으로 일컫는다. 장수군 지역에서는 장수덕유산을 5대 명산의 하나로 꼽고 있다.
덕유산 하면 북쪽의 북덕유산과 주봉인 향적봉, 그리고 무주구천동의 33경만 생각하기 쉬우나 장수덕유와 이곳 남덕유산까지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남한에서는 지리산국립공원 다음으로 웅장하고 넉넉한 산이다. 덕유산의 한 봉우리는 무주에서 시작되고, 또 한 봉우리는 장수에서 일어나는데, 장수의 봉우리를 남덕유산이라 하며, 무주의 봉우리를 북덕유산이라 한다. 남덕유산은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이 산하에 와서 산을 보고는 크고 덕이 있는 산에서 싸울 수 없다 하여 퇴군했다고 전해진다.

[서봉-장수덕유산] 1,492m.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했다. <문헌비교>와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은 대덕산을 경유, 덕유삼봉-백암봉-봉황산을 거처 육십령으로 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남덕유산인지 장수서봉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참샘] 장수덕유산의 산상에 있는 샘으로,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수이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찬물이 솟아난다. 참샘은 남강의 발원샘이다. 이외에도 남덕유산은 3대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는데, 육십령이 금강의 발원샘, 북쪽 바른골과 삿갈골샘은 낙동강의 지류 황강의 발원이다.

[할미봉] 1,024m. 할미봉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할미봉 아래에는 성터가 있는데, 할미봉의 이름은 이 성터에서 유래한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미봉이라 했다는 것.
2.할미봉 서쪽 산자락에 있는 반송마을 사람들은 할미봉이 원래 ‘쌀미봉’인데 할미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 때 이곳에 합미성이 있어 합미봉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1961년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일람표에는 합미봉으로 표시)
3. 옛날 한 도승이 할미봉 정수리의 암장을 보고 우리나라 군사가 수년 먹을 쌀이 쌓여 있는 형상이라 했다 하여 합미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장수경주마목장] 할미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장수마을에 위치. 46만 평 규모의 우리나라 내륙 최대의 말목장. 경주마 생산 농가를 위해 우수 씨수말의 무료교배 지원사업을 펼치게 되는데, 지난해 40억 원에 도입된 씨수말 '메니피'의 무료교배도 이미 시작됐다. 또 국내산 말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경주마가 되기 위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다.

[대포바위] 할미봉의 턱밑에 위치. 임진왜란 때 장수를 치기 위해 육십령을 넘던 왜군들이 대포바위를 조선군의 대포로 착각하여 함양으로 우회해 남원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군 일원이 피해를 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가까이 보면 남자의 성기와도 비슷하여 남근석으로 불리는데, 남자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이 바위에 다가와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육십령] 덕유산과 백운산을 가르는 고개로 조선조 이전에 개통된 고개다. 지금은 장수군 장계면과 함양군 서상면을 잇는 26번 국도가 지나가고 마루에는 휴게소가 있다. 장계에서 서상까지의 거리가 예전에 60리에 해당했으므로 육십령으로 부른다.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 중에서 서하면 봉전리 황석산성이 있다. 선조 30년(1597년)에 왜군의 2차 침입이 일어나자 함양국수 조종도와 안음현감 곽준은 영·호남을 잇는 육십령을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고 군민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맞싸웠다. 중과부적이기도 했지만 장수인 김해부사 백사림이 “성 밖으로 나오면 잡지 않겠다”는 왜군의 속임수에 빠져 성문을 열고 도망치는 바람에 요새는 함락되었고, 조종도와 곽준도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훗날 백사림은 정부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지고, 왜군사령관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요새를 함락시킨 왜장에게 포상했다고 하니 황석산성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 일전이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또 다른 자료에 육십령은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하는데, 소백산맥 중의 덕유산(德裕山)과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있으며 신라 때부터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 이 고개는 영남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교통로로 전주~대구 간 26번 국도가 지나간다. 예부터 함양-장수 주민들의 물류를 교환했던 고개라고 한다.
1.감영에서 이 고개까지의 거리가 60리(24km)이고 장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도 60리(24km)라고 하여 육십령.
2.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어 육십령.
3.옛날엔 이 고개에 산적들이 많아서 60명이 모였다가 올랐다는 이야기인데,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양쪽 산 아래 마을에서 며칠씩 묵어가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밑에는 장정들이 모여있던 주막이라 해서 장군동(壯群洞)이 있고, 산적을 피해서 살다가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해서 피적래(避賊來)라는 마을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아있어 세 번째 이야기가 신빙성이 높다.
4. 박정희 군사정권 때 군장동 사람들에게 산속 군장동에 살지 말고 길가에 나와서 살라고 흙벽돌집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갯마루 연립주택식으로 지어진 하얀색 집들이 그때 지어준 집들이다. 군장동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것이 그때부터. 육십령마을이 군장동 사람들에게 새 삶의 터전이 된 것도, 고개 이름이 육십령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때부터라고 한다.(자료출처 : 아름다운소통(협), 백두대간학교, 한민족문화백과 등)

[백두대간학교]
백두대간학교 이철승 교장선생님은 오랜 동안 백두대간학교 수석가이드로 활약해주셔서 낯익은 얼굴입니다. 산행 경력 30년의 저명한 M.T.디자이너이며 국가공인 숲길체험지도사(산림청), 응급처치법 강사(대한적십자)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낭 하나 메고 지리산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렸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며 얼굴이 환해집니다. 천상 산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연이어 정맥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백두대간 가이드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산악회 가이드, 기업체 가이드, 목적산악회 가이드 등으로 활약하며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가이드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인문학습원 백두대간학교 개교부터 가이드로 동분서주했습니다.
백두대간 교양강좌, 트레킹학교 등의 실무를 도맡아 진행했고, 아이들과 뚜르드몽블랑(TMB), 몽블랑 일주 트레킹을 다녀왔으며, 흥덕고등학교 백두대간 종주대 <백두대간 하늘길를 걷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백두대간 숲길을 거닐며 바람과 햇살, 구름, 안개, 곤충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진 산줄기 ‘백두대간’ 총 길이 1,625km의 백두대간은 단순한 산줄기가 아닙니다. 이 땅 모든 산줄기와 강줄기의 시원입니다. 또한 한반도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 땅에 기대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근간입니다. 백두대간 줄기 따라 물이 흐르고, 마을이 생겨 사람들이 깃들어 살았습니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문화가 생성되었습니다. 백두대간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생명의 근간인 백두대간을 찾아가는 백두대간 종주는 우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보따리를 찾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지난 6년간 60강에 걸쳐 백두대간 아름다운 산하를 걸었던 백두대간학교는 백두대간의 결정체인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습니다. 총 길이 1,625km의 백두대간 중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남측 구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고성 향로봉까지 701km입니다. 이중 비법정탐방로 79.9km를 제외하면 도상거리 621.1km입니다. 접속구간을 포함하면 실제 백두대간 종주거리는 약 1,000km에 이릅니다.

2016년 9월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과 문화를 찾아 떠납니다. 마음 한켠 간직해왔던 꿈을 찾아 떠나는 희망의 발걸음입니다. 백두대간 종주는 힘든 여정이지만 도반들과 함께라면 거뜬하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혼자 걸으면 나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모두의 희망인 ‘백두대간 종주’ 힘차게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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