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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선거구제'는 정치 개혁이 아니다

[하승수 칼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자

6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치개혁특위 구성안이 통과됐다. 안건 자료를 보면, "선거구제 개편, 비례성 강화 등 헌법개정과정에서 함께 논의가 필요한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사항"을 다루는 것이 정치개혁특위의 역할이다.

시민들 중에는 '이게 무슨 얘기지?'라고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는 앞으로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심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좋은 선거제도는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좋은 정치'를 만든다. 그런 정치가 밥 먹여준다는 것은 이미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반대로 불공정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승자독식의 사회를 만든다는 것도 증명된 사실이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헬조선'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래서 하반기에 본격화될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지금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삶까지도 좌우할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비례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일치시킨다는 의미이다. 정당이 받은 표만큼 의석을 나눠가지니까 가장 공정한 방식이다. 사표도 없어지고, '표의 등가성'이 실현된다.

비례성을 강화하려면, 비례대표 숫자를 단순히 늘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연동해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300명 국회의원이 있으면,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에 따라 300명을 각 정당에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말이 어려우면, '민심(표심) 그대로 의석 배분'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 국회에서 개헌논의가 벌어지고 있지만,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해야 개헌도 가능해질 것이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개헌의 핵심쟁점인 권력구조 개편에 관해서도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 중에 다수는 대통령중심제를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요즘에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말도 쓴다)로 바꾸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회로는 설득력이 없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결국 대통령 권력을 국회로 분산시키자는 것인데, 지금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국회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가장 불신받는 기관중에 하나이다. 어떻게 이런 기관에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선거제도를 바꿔서 국회구성을 혁신하지 않으면,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국민동의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의 실마리를 푸는 첫 단추이기도 하다.

국회가 정치개혁특위 구성안을 통과시킨 것은 뒤늦게나마 이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헌특위와 함께 정치개혁특위를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여전히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도입이 개헌의 전제'라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중·대선거구제'라는 족보도 불분명한 선거제도 얘기를 꺼내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왜 족보도 불분명하다는 표현을 쓰느냐 하면, 논리적 타당성도 없고, 외국에서 이런 선거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례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는 이론상으로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와 그렇지 않은 선거제도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몇 언론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주 꺼내드는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라는 분류 자체는 이론적 근거가 희박하다.

한국에서 중·대선거구제는 1개의 지역구에서 2명이상을 당선시킨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유권자가 정당이 아닌 후보에게 '1인 1표' 방식으로 투표하면서 1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을 뽑는 선거방식은 세계적으로 예외적으로 사용된 선거제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 1개 지역구에서 2명을 뽑는 선거를 했었고, 일본이 1948년부터 1994년까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 정도이다. 이론적으로는 '단기 비이양식(single non-transferable vote)'라고 부르는 이 방식을 지금 채택하고 있는 곳은 아프가니스탄, 요르단, 바누아투 정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제도가 아닌 것이다.

유럽의 경우에 1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후보를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권역을 나눠서 하는 것이다. 이 방식도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므로 비례성은 상당수준 보장된다. 대한민국이나 일본이 채택했던 선거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도 중·대선거구제를 옹호하는 정치학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 기초의회(시, 군,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1개 지역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택하고 있지만, 평가가 그리 좋지 않다. 4인선거구는 거의 없고 주로 2~3명을 뽑는 선거구들이 존재하는데, 실제 상황을 보면 1~2개 정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져왔다. 거대정당 중심의 독과점 구조는 1개 지역구에서 2~3명을 뽑는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중선거구제를 택하면, 그만큼 선거구역이 넓어지게 된다. 선거구역이 넓어지면 선거비용도 늘어난다. 그래서 중·대선거구제는 기득권정당, 돈이 있는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중·대선거구제는 정치개혁의 답이 될 수 없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채택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만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대안이다.

하반기에 벌어질 정치개혁특위의 논의는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좌우하는 논의가 될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서, 정당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평가받는 '정책 중심의 책임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부패와 예산낭비를 줄일 수 있고,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약자와 소수자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지방의회 선거제도도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존재가치조차 의심받는 상황이 된 한국의 지방의회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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