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라는 '거물'과 맞서야 하는 야당 후보들은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모두 "자신 있다"는 표정이다. 야당 후보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민주당 장상 후보와 국민참여당 천호선 후보는 모두 "단일화가 되면 승리가 확정적이지만 단일화 없이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후보 등록 후 후보끼리 단일화를 할 수 있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는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모두 "민주당의 패권적 행태"에 날을 세우며 되려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은평을은 특히 '아름다운 연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기는 연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당 후보로는 단일화를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2주, 은평을은 어디로 갈까?
민주 "'장상 카드'로 승리, 자신 있다"
▲ 민주당의 서울 은평을 재보선 후보인 장상 후보.ⓒ연합뉴스 |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2일 "여론조사에서 이재오 전 위원장과 장상 후보가 고작 7%포인트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며 "후보 단일화가 되지 않아도 이긴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지역 민심이라는 것이 원래 한 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며 "정권 초기 이명박 지지율이 70%일 때도 떨어졌던 이재오 전 위원장이 2년 만에 민심을 회복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장상 후보 캠프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지역을 돌아보면 여전히 'MB 심판'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7% 차이는 공천이 최종 확정되기 전"이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숨은 표는 15%나 됐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와 최종 결과의 불일치가 재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캠프 관계자는 "더욱이 민간인 사찰 건이 불거지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 공포는 더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70대 할머니가 우리를 만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는데 다음날 동네 사람들이 내가 그리 말한 것을 다 알고 있더라'고 하소연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단일화 조급한 정세균 "무조건 민주당에 양보하라는 것 아니다"
자신감은 충만했지만, 민주당은 어느 당보다 가장 강력하게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단일화 없이도 이길 수 있지만, 단일화되면 확실히 이긴다"고 말했다.
여유보다는 조급함도 느껴진다. 정세균 대표가 11일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무조건 민주당에 양보하라는 게 아니라 경쟁력 테스트로 단일화 하자"고 제안한 것도 그렇다. 정 대표는 "다른 선거에서 다른 야당의 원내진출을 위해 협력할 일이 있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까지 했다. 정 대표는 이전까지는 "전국적인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는 다르다"며 야권연대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 왔다.
이런 입장 변화는 민주당 스스로 '더 경쟁력 있는' 후보라며 영입을 추진해 온 신경민 선임기자 공천이 무산되면서 재보선 가도에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은평을은 여야 공히 이번 재보선 승패를 가르는 승부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의 여유로운 야권연대와 은평을은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참여당 "민주당, 내부 후보 경쟁력 없다며 영입 소동 피울 땐 언제고…"
문제는 단일화의 또 다른 주체들이 모두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일단 참여당은 천호선 후보로의 단일화를 얘기한다. 민주노동당은 '광주 남구'의 양보를 원한다. 두 당 모두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자기 당 후보만 고집하면서 '4대강 심판, MB 정권 심판'에 과연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냐는 것이다.
천호선 후보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내부 후보들을 경쟁력이 없다며 외부 인사 영입소동을 피운 장본인이 민주당 지도부"라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는 근거가 있냐"고 되물었다.
▲천호선 후보는 이날 "내부 후보들을 경쟁력이 없다며 외부 인사 영입소동을 피운 장본인이 민주당 지도부"라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는 근거가 있냐"고 되물었다. ⓒ연합뉴스 |
양순필 참여당 대변인도 "당 대 당으로 야권연대 협상을 여러 차례 제안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이제 와서 경쟁력 테스트를 하자는 것은 진정성도 없고 전략도 없다"고 일갈했다. 양 대변인은 "신경민 후보 영입이 불발된 것은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이라며 정 대표의 리더십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양 대변인은 "단일화가 안 되도 천호선 후보의 당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있는데도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이재오와 맞서 파란을 일으키지 않았냐"고 덧붙였다.
"당 대 당의 야권연대 논의"를 요구해 온 참여당은 "은평을만 놓고 단일화 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천호선 후보로의 단일화를 민주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정 대표가 '경쟁력 테스트'를 언급하긴 했지만, 무게 중심은 단일화에 실려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문수와 이재오는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유시민 후보에게 양보했더니 결국 김문수에게 졌던 아픈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러브콜' 집중되는 민노당, 참여당·사회당 버리고 민주당 선택했지만
은평을만을 놓고 '원 포인트 협상'은 없다는 것은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또 주목되는 지점은 참여당과 사회당이 각각 민노당에 '민주당 빼고 우리끼리라도 먼저 단일화를 하자'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민노당을 향해 '나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두 당이 동일하다. 한 마디로, '민주당 압박을 위한 선 단일화'를 요구하는 천호선 후보도, '진보신당까지 포괄하는 진보 단일 후보'를 얘기하는 사회당 금민 후보도 민노당의 양보를 요구하는 셈이다.
민노당은 일단 두 당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문제는 민주당"이라며 민주당 압박에 주력하고 있다. 목표는 민주당의 당연한 승리가 예상되는 광주 남구를 얻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을 내주고 기초단체장 등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전략이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광주 남구 지역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지속적인 야권연대를 위해 민주당이 민주노동당에 의석을 양보하는 게 옳다는 응답이 65%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것이 바로 여론의 동향이고 민심의 추이라고 주장했다.
민노당 관계자는 "단일화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 민주당"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이 4차례 정도 진행된 협상에서 요지부동"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지역은 제외하고 은평을만 단일화 협상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연대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는 선거를 위한 단일화는 할 수 없다"는 민주당과 "연대의 기본은 양보"라는 다른 야당 사이에서 은평을 선거 결과는 안개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마지막 가능성은 후보 등록 후 단일화 성사다. 시민단체들은 이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희망과 대안'은 "야당들을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야권 연합에 모든 열정을 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희망과 대안은 민주당에게는 "독단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판단에 매몰되선 안 된다"며 변화를, 참여당과 민노당에는 "보다 큰 가치의 실현을 위한 진정성"을 각각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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