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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비정규노동정책 성공하려면

[작은책]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인상적인 첫 출발

'5·9 대선'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다. 하루가 다르게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파격 인사와 탈권위 행보로 역대 최고의 고공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악질 갑을오토텍 사측을 대리한 박형철 변호사를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하는 등 적잖은 실수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결정적인 과오 없이 개혁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국정농단과 불통정치의 정점을 보여 준 박근혜 정부와 차별화하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적폐 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열망한 촛불민심을 개혁 동력으로 삼은 문재인 정부는 식민과 전쟁, 독재와 양극화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적인 자산이 가장 든든한 행복한 정부이다.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 낸 촛불정부인 만큼 진심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첫 현장 방문지로 선택한 것은 적절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포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흑자 공기업이므로, 선도적으로 양질의 정규직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연내 1만 명 정규직화는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이미 대세가 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필두로 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확대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 개선의 물꼬가 트였다. 첫 단추를 잘 끼운 만큼 앞으로가 관건이다.

▲ 알바노조는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대통령님, 개돼지들이라서 최저임금 만 원은 아깝습니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프레시안(최형락)

비정규노동정책 성패 시금석 ①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노동정책은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정부가 실패한 대표적인 민생 난제다. 그나마 가장 전향적이었던 참여정부마저 비정규 문제로 민주노총과 정면충돌하며 개혁 동력을 잃고 말았고 현재의 양극화 현실로 귀결됐다. 통한의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치밀하고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 우선 넘어야 하는 두 개의 허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 비정규노동정책의 첫 번째 관문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 법정시한이 6월 29일까지라 최우선 당면 현안이다.(최저임금 법정 심의기한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 심의 요청을 받은 날(3월 31일)로부터 90일 이내인 6월 29일이다. 하지만, 법정시한을 넘겨도 최저임금 논의는 계속 진행된다. 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 고시 예정일인 8월 5일 20일 전인 7월 16일까지 최종 합의가 이뤄지면,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노동조합 바깥으로 배제된 500여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최저임금만큼 중요한 노동 의제가 어디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한 만큼 전망은 밝다. 다만 공익위원 추천권 다각화와 가구생계비 기준 반영, 정보 공개 등 최저임금위원회 제도 개선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조기에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가능하다. 원하청 불공정거래 혁파와 골목상권 침해 방지, 임대료와 카드 수수료 및 가맹 수수료 인하 등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근로감독관 증원이 현실화된 만큼 최저임금 위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행정감독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 촛불집회에도 오기 힘들었을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최저임금 수준이 올해 얼마로 결정되느냐가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의 첫 번째 시금석이 될 것이다.

비정규노동정책 성패 시금석 ②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재인 정부 비정규노동정책의 두 번째 관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이 무조건 좋을 수는 없다. 제대로 된 대안 모델이 아니라면, 오히려 정체나 후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각각에서 여러 사례가 축적돼 온 만큼 그저 정규직화라고 통칭하는 것으로 자족하는 수준이어선 곤란하다. 졸속 추진도 우려된다. '이명박근혜' 정부 10여 년과는 정반대인 정부 정책 흐름에 맞추느라 급급하게 정규직화를 고심하고 있는 공공기관-공기업 및 대기업도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더욱 세심하게 잘 따져 봐야 한다. 일자리의 질을 상향평준화하는 전체 흐름은 바람직하지만, 개개 사례에선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표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은 기존 무기계약직 모델을 넘어서야 한다. 이건 참여정부의 비정규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 멈춰선 안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서울시 박원순 표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을 마지노선으로 새로운 대안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고용안정과 합당한 처우 개선이 병행되는 양질의 정규직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형태까지 아우르면서 상시 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 및 전환 원칙을 지키는 정규직화 모델이 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양질의 정규직화를 성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노사 당사자 간 상충되는 이해를 조율하고 공익적 모범사용자로서 소임을 다하면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입법화 실현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노동 공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비정규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노동 동일가치 입법화다. 비정규 규모 감축과 차별 시정의 대전제가 되는 양대 공약을 임기 내 완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한 번도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노동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서 입구 전략으로 불리는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화'를 실현하는 비정규 사용사유 제한과 차별 시정의 원칙을 정립하는 초기업 단위 '동일노동 동일임금 입법화'가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다. 문재인 정부는 현대사 최초로 노동 문제를 해결한 정부로 평가될 것이고, 한국 사회도 OECD 가입국으로서 실질적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이 두 핵심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선 재벌과 관료, 보수언론 등 수구세력의 조직적 반발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는 대통령과 정부 각료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동력도 순식간에 약화될 수밖에 없다.

노조 할 권리 신장과 노조 조직율 제고가 관건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노사관계 정상화와 노조 조직력 제고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계급 간 대등한 역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채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갑을 관계 혁파는 불가능하다. '노조 혐오'가 노골화된 사회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시로 침해되고, 전체 사회 노동 인권은 하향평준화가 필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 다수인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는 헌법 기본권인 노동3권으로 보장돼 있지만, 한국 사회에선 심각한 수준으로 제약돼 왔다. 현재 10퍼센트 내외에 불과한 낮은 노조 조직률을 끌어올리지 않고선 한국 사회 정상화는 무망하다. 특히 노조 가입률 2퍼센트 내외로 무권리 상태에 가까운 1000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 신장이 화급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각성한, 대단위로 조직된 노조운동이 없다면 몽상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취약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보완되어야 한다.

지금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암울하고 힘겹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봉툿값 20원 때문에 살해당하고, 케이블 방송 신입 조연출로 노동착취가 일상화된 제작 환경 아래 시달리다 자살하는 청년 노동자들. 쌍용차, 현대기아차, 삼성전자서비스, 유성기업, 이지테크(포스코 사내하청), 하이디스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희생당했다. 얼마 전 악질 사용주의 극단적인 노조 탄압으로 갑을오토텍 조합원이 생을 마감했던 비극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이 구속됐지만, 자본의 위세는 여전히 거칠 것 없다.

1987년 6월 항쟁을 이어 간 것은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대거 결성된 노동조합의 힘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계급인 노동자들이 시민권을 얻었고 민주노총 결성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지 못한 채 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노조운동은 총 자본과 권력의 위세에 기가 눌리고 포섭됐다.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전방위적인 사회복지와 기업 복지 차별에 시달리는, 전체 노동자의 반이 넘는 비정규 문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한 불평등 해소 대안은 분명하다. 1000만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되고 합당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성패의 열쇠는 대통령의 차질 없는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 의지와 함께 파트너로 역할을 할 노조운동의 올바른 강화 여부에 달려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 위대한 역사를 만든 촛불을 기억하며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위기 의식으로 문재인 정부와 노조운동이 상호 견제와 협력 속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거라 기대한다. 이제부터 진검 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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