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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학교 인근 사진관

[문학의 현장] 허리를 쭉 펴고, 미소를 띠고

직업학교 인근 사진관

허리를 쭉 펴시고 고개는 조금 왼쪽
아니 다시 오른쪽, 턱은 내리고
미소를 살짝 머금으세요 네, 하나 둘

취업상담사는 고개를 저었다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
죽을 때 행복하게 죽고 싶다는 답변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려면
자격증이 필요하지요, 유용한 자격증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는
2종 보통 운전면허증 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일 수밖에 없는 죽음
사는 데 서툴면 서툴게 죽게 될까
죽음 앞에서 어떤 기술이 유용할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기술해 오세요
약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할 수 있어요, 용기를 가지세요

근면과 능력을 증명하셔야 합니다
최근에 찍은 증명사진을 제출하세요

막연함은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생각하셔야죠
허리를 쭉 펴고, 미소를 띠고

시작노트

직업학교에 다니고 있다. 웹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배우는 중인데, 총 6개월 과정이다. 학교에 다닌 지 4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에 5일, 하루 8시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이고 있다. 손과 눈, 머리가 빠른 이십대 초중반 젊은 친구들과 달리 머리는 물론 몸마저 따라주지 않을 때면 내가 왜 이걸 배우겠다고 여기 왔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헤아려보니 실업자가 된 지 어언 3년 6개월. 나의 실업 상태를 그럴 듯하게 포장할 수도 있다. 전업 시인이 된 지 3년 6개월이라고. 간혹 만나게 되는 글 쓰는 친구들이나 선후배 작가들이 말을 꺼낸다. 그동안 시를 많이 썼겠다고.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양과 창작의 양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몸소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글이란 한편으로는 어떠한 절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언가가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작동해야 하는 것.

아무튼 십삼 년 넘게 해오던 출퇴근을 그만 두고 난 일 년 남짓은 말 그대로 그냥 놀았다. 아무 생각도 아무 계획도 없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쉬지 않고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러고 나서 일하게 된 직장에서 누적된 피로를 모조리 날려버리고 싶었다. 내내 계약직으로 일을 해왔던 터라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한동안은 생활이 가능했다. 허리띠를 졸라 맨 생활.

하지만 지출은 물리적인 시간과 정확히 비례한다. 먹고 자고 숨만 쉬는데도 일정량의 돈이 든다. 일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시인이라는 명함이 원고료를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 갖가지 글을 쓰게 해주었다. 나의 처지를 생각해 일거리를 주선해준 분들 덕분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원고 매수와 마감 일자를 꼬박꼬박 지켰다. 그렇지만 비정기적인 글쓰기로 인간답게 먹고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친한 작가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노년을 대비해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한 후배 시인은 도배학원을 다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한다. 좋은 시를 쓰고 훌륭한 문학상도 탄 시인이다. 직장도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전업 작가로 먹고사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과외로 다들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하기는 미래가 불안한 이들이 작가들뿐일까. 투잡도 모자라 쓰리잡까지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직업학교를 다니고는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젊은 친구들 역시 자주 불안함을 토로한다. 취업을 하기는 할 수 있을까, 취업을 해서 먹고는 살 수 있을까,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수업 담당 선생님이 간혹 직업학교 학생들의 취직 의사를 물어온 회사의 근무 조건과 월수입을 이야기해 주곤 하는데, 과연 그런 조건과 수입으로 인간다운 삶,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고노동, 저임금이 당연시되고, 그런 일터에나마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감지덕지해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상식적인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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