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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씨, 12년 전 떼인 돈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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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씨, 12년 전 떼인 돈 받다

[작은책] 돈 받을 권리인 '소멸시효',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

철수 씨는 연희 씨에게 12년 전 이맘때쯤 500만 원을 빌려주었습니다. 이자 없이 1년 뒤에 갚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연희 씨는 다음 날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사도 해 버렸습니다. 연희 씨는 철수 씨뿐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는 종적을 감춰 버린 것입니다. 입맛이 썼습니다.

3년 정도 지난 뒤, 두 사람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습니다. 연희 씨는 지금 당장은 가진 돈이 없어 우선 100만 원만 갚겠다고 하더니, 그 자리에서 계좌이체를 해 주었습니다. 나머지도 곧 갚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습니다. 철수 씨는 옛정을 생각해 한 번 더 믿어 보자는 마음으로 새 전화번호만 받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연희 씨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또 사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연희 씨를 만나고 9년이 흐른 뒤에 철수 씨는 연희 씨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냈습니다. 12년 전 빌린 돈을 달라고 따졌습니다. 연희 씨는 12년 전에 빌린 돈은 10년 소멸시효가 지났으니, 법적으로 돈을 갚을 의무가 없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돈 달라고 식당에 또 찾아오면 영업 방해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도 합니다.

분하고 답답한 철수 씨, 정말 철수 씨는 돈을 받을 수 없는 건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소멸시효가 무엇인가요?

ⓒ이동수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해당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는 제도입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법이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일상생활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소멸시효는 대여금 채권 소멸시효 기간이 10년입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는 10년이 지나면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돈 받을 권리의 소멸시효가 모두 10년은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소멸시효 기간을 받아야 할 돈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달리 규정하고 있습니다.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권리는 일반적인 채권, 그리고 법원이 판결한 판결금 채권입니다. 5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권리는 상인들 간의 거래 또는 일반인과 상인 사이의 거래로 생긴 상사채권, 그리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아야 할 돈입니다. 물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내야 하는 돈의 소멸시효도 5년입니다.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권리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 잘 기억해 두어야 할 채권은 급여채권과 공사대금 채권입니다. 밀린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권리, 하도급 대금을 받을 권리는 3년 안에 행사해야 합니다. 1년 만에 소멸하는 채권도 있습니다. 여관 숙박료, 음식값, 물건 사용료, 학원 수업료 등은 1년 안에 행사해야 합니다.

좀 복잡하죠? 구체적으로 자기가 받을 돈의 소멸시효를 알아야 한다면, 민법 제162조부터 제165조를 확인하고 검색엔진에서 '소멸시효'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동수

소멸시효의 중단


그럼, 돈 빌리고 10년 동안 갚지 않으면 빚이 없어진다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때를 전제한 제도입니다. 즉, 권리를 가진 사람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면, 소멸시효는 중단되었다가 다시 진행됩니다.

철수 씨가 연희 씨가 돈을 갚기로 한 1년 뒤부터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는 등 돈을 갚으라고 재판 외에서 청구하거나 최고하는(독촉하는) 경우, 연희 씨의 재산을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할 경우, 돈을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소멸시효는 중단되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재판 외에서 청구나 최고를 했는데도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동수
한편, 채무자가 갚을 돈이 있다고 '승인'을 한 경우에도 소멸시효는 중단됩니다. 대법원은 "시효완성 전에 채무의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는 그 수액에 관하여 다툼이 없는 한 채무승인으로서의 효력이 있어 시효중단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즉 연희 씨가 돈을 빌리고 3년 뒤에 철수 씨에게 100만 원을 갚은 것은 채무를 승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철수 씨의 연희 씨에 대한 대여금 채권 연도의 소멸시효는 그때부터 다시 진행됩니다. 지금은 연희 씨가 100만 원을 갚은 때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철수 씨의 대여금 채권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빌려준 돈, 밀린 임금, 밀린 외상값 등 받을 돈이 있는 분들은 먼저 받을 돈의 소멸시효를 확인해야 합니다. 곧 소멸시효가 지나간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어렵다면, 먼저 재판 외에서 청구를 하세요. 채무자에게 '내가 당신한테 받을 돈이 얼마이니 언제까지 갚으라'는 내용을 적어서 내용증명 우편으로 보내면 됩니다. 전화로 이야기할 경우에는 꼭 녹취를 해 놓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재판 외에서 청구했음에도 돈을 주지 않으면, 청구 후 6개월 이내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채무자의 재산에 압류, 가압류, 가처분 등을 해야 합니다. 아니면, 일부라도 빌린 돈을 받아 놓으세요. 일부 변제는 채무 승인의 효과가 있으므로 적더라도 돈을 갚으면, 소멸시효는 그때부터 다시 진행됩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권리가 없으면 모르되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서 날려 버리는 일은 피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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