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요즘 부쩍 피곤해 해서 공진단을 먹이고 싶어요. TV를 보니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어떤 약인가요?"
환자가 직접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처방도 할 수 없음을 우선 말씀드린 후 공진단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기대에 찼던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지요. 남편을 직접 진료해야 왜 피곤한지,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고, 그에 맞는 치료가 환자에게 최선이라는 말로 상담을 마쳤습니다. 남편과 다시 오겠다 했지만, 아직 안 오시는 것을 보면 그 약이 꼭 필요했거나 제 설명이 부족했나 봅니다.
시대에 따라 질병의 양상이 바뀌고 이에 맞춰 특정 약물이 많이 쓰이지만, 요즘 보면 일종의 유행처럼 특정 약물이나 처방이 선호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치료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사례도 있지만, 산업 논리가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자극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시쳇말로 몸에 좋다고 하니 크게 생각하지 않고 광고에 나오는 의약이나 의약외품을 복용하는 이들을 보면, 가끔 우려됩니다.
공진단이 예전부터 보약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것은 사실입니다. 분명 잘 가려서 쓰면 좋은 효과를 내는 약입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약이 예능프로그램이나 홈쇼핑에서 마치 비타민처럼(비타민 또한 가려서 먹어야 하지요), 아무나 먹으면 좋은 것처럼 소개된다는 데 있습니다. 홍삼이나 녹용이 무조건 효과를 보지 않듯,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공진단은 원나라의 위역림이란 의사가 황제에게 올린 약으로 유명합니다. <세의득효방>이란 의서의 저자이기도 한 위역림은 의사를 가업으로 하는 집에서 태어나 젊어서부터 명성을 얻은 당대의 명의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정형외과 분야에 실력이 뛰어났는데, 기마술을 중시하고 많은 전쟁으로 부상이 잦았던 당시 상황 상 그의 의학적 성과는 더 크게 부각되었지요. 그 명성이 황실에까지 알려져 부름을 받았지만, 진료를 이유로 거절하면서 대신 올린 것이 공진단이었습니다. 황제가 이를 복용하고 크게 만족해 황실가족이 애용했다고 하지요.
여기서부터 오해가 생깁니다. '황제가 복용한 것이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인식이 생기지요. 영조가 인삼을 즐겨 먹으니 시중에 인삼이 품귀현상이 일어났다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서 왜 황제에게 그 처방을 진상했을까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공진단이 만병통치약이라서였을까요? 다른 좋은 것들도 많은데 왜 위역림은 당귀, 산수유, 녹용, 그리고 사향이란 약재를 선택했을까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동의보감>에서 공진단은 지친 간을 보하는 약으로 분류됩니다. 실제 당귀와 산수유, 녹용은 간을 보하는 성질이 따뜻한 약재입니다. 이들 약재를 통해 축적된 효과를 사향이 통하게 하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간의 장혈(藏血) 기능에 초점을 두되 마냥 보하지만 않고 이 힘을 잘 끌고 갈 수 있도록 처방을 구성한 약이 공진단이지요.
이제 위역림이 왜 황제에게 공진단을 처방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원나라 황실은 잦은 정쟁에 시달렸습니다. 위역림 생전에만 10명의 황제가 바뀔 정도로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위역림이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이유도 정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였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지요.
이처럼 살얼음판 같은 시대에 황제가 받는 긴장감과 피로감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이를 풀기 위해 황제는 술을 즐겼을 수도, 유목민 특유의 식습관 상 육식을 선호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이 간을 지치게 만들지요.
몽골의 차가운 기후대에서 생활해온 사람들의 특성상, 아무래도 황제는 따뜻한 약재를 선호했으리라는 점도 추정 가능합니다. 조선 3대 명주 중 하나로 고려시대 원나라로부터 증류기술과 함께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감홍로에 용안육이나 계피와 같은 따뜻한 성질의 약재가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위역림이 황제를 위한 약을 처방할 때 아마도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이 약이 정말 좋기만 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처방이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써야 합니다. 특히나 현대인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신체 내부에 독소가 많이 축적되어 생기는 병을 많이 앓는데, 무조건 보하기만 하면 좋다는 식의 발상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공진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공진단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한 유명인 따라하기 혹은 일시적 유행 아닐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이 심리적으로 지쳤다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들 좋다고 하는데, 마침 나도 힘드니 공진단으로 위안 받고 싶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공진단 권하는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어떤 분의 말처럼 저녁이 있는 삶이, (미화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요즘 유행하는 '휘게(Hygge)'란 말뜻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온다면 유행에 혹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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