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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개혁과 협치' 두 칼을 다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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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개혁과 협치' 두 칼을 다 쥐었다"

[윤여준-박명림 대담 ②] "21대 총선에 맞춰 개헌 준비해야"

의회와 함께 하는 개혁.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일부 인사들에 대한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에 정부 구성조차 가로막혀 있다.

그렇더라도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의 몫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거듭 강조한 개혁의 방법론이다. 1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들어봤다. (☞ 대담 1부 보기 : 文정부 '촛불 절대화' 위험 )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업무지시' 형식으로 진행된 지난 한 달의 개혁 조치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했다.

윤 전 장관은 "지금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가적 아젠다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라며 "매일 사드 얘기만 뉴스에 나오고, 대통령이 '몇 호 지시' 이런 것을 계속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처리 건을 예로 들면, 당연히 순직 처리를 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지난 정부의 인사혁신처가 반대했던 사안이니, 인사혁신처장을 불러 '왜 안 된다는 것인가. 제도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되는 방법이 없겠느냐'를 묻고 '다시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후 인사혁신처가 스스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법을 만들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게끔 하는 게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제도를 따라서 잘못된 문제를 고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구두 지시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게 매우 위험해 보인다"며 "게다가 얼마 전에는 뜬금없이 가야사 얘기를 해서 불필요한 논쟁까지 만들었다. 국가가 왜 역사 해석에 개입하려고 하는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은 어쩌면 지금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개혁 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는 개혁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했다.

박명림 교수도 "민주주의와 법치의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의 업무지시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과 인수위의 부재로 인한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한다"며 "이 업무지시가 계속되면 이른바 지시주의·포고주의(decreeism)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입법화가 필수적인 개혁의제는 의회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며 "따라서 입법연대 구축, 정부와 내각구성, 사정개혁 사이의 '국정 수순'이 초반 행보에서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은 이것이 좀 뒤바뀌어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특히 재벌개혁이야말로 국가경제구조로부터 개인 삶의 질까지 걸쳐있는, 핵심 중의 핵심개혁이라고 본다"며 "그러나 사건을 들추어내고 사람을 자르는 식의 사정개혁은, 법률과 제도개혁에 비해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개혁과 협치 두 칼을 다 쥐고 있다"며 "이를 예술적으로 잘 결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려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개헌에 대해서도 윤 전 장관과 박 교수는 속도조절을 당부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빠르게 개헌을 추진하다 보면 권력구조나 의회 제도, 지방 자치 문제 등 핵심 사안은 합의를 못하는 기형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며 "개헌 형식은 국민 참여 개헌, 개헌 시기는 21대 총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고 했다.

박 교수는 "시간을 두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경청하고 정당 간 이견 조정 절차를 제대로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 계속 토론하고 합의한 뒤 총선과 함께 국민 투표에서 개헌안을 부치는 것이 좋다"면서 "개헌안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안도 만들어서 21대 총선은 새 제도로 치르는 게 좋다"고 했다.

권력구조 문제와 관련해 박 교수는 "국제비교를 통해 객관적으로 볼 때는 원론적으로 의회가 중심이 되는 제도가 더 민주적이고 더 효율적"이라며 "이번에는 권력이 분산되는 쪽으로 개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교수는 또한 선거제도 개정 방향에 대해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며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먼저 완수되는 게 당연히 좋겠지만, 안 되면 개헌과 함께라도 꼭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도 "100% 동의한다. 정당, 선거, 제도 다 바꿔야 한다"며 "모든 국민이 개헌안을 둘러싼 토론 과정을 충분히 보고 자기 생각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국민들이 당장은 선뜻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더라도 설득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선거법을 바꾸고 정당법을 바꾸면 국회의원 수준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 걸 전제로 의회 권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다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과 함께 대규모 자연재해와 테러 등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세계적으로는 집행 권력 강화 추세가 있다고 지적하며 "권력 분산형 개헌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섬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지난 8일 문재인 정부의 출범 후 1달 평가와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대담을 하는 모습. 두 사람은 모두 '촛불의 절대화'를 경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개혁 = 치밀한 로드맵 + 의회와의 협력"

프레시안 : 지난 1달 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각종 개혁 조치가 쏟아져 나온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개혁 동력이 강한 집권 초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듯해 보인다. 다만, 여러 개혁 아젠다를 하루가 멀게 던지면서 너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지 않나 싶다. 그로 인해 종합적인 개혁의 입구를 막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여러 개혁 과제 중에 가장 문 정부가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뭐라고 보고 있나. 개혁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텐데, 청와대가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박명림 : 국정농단 사태 초반에 국회나 시민사회에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물어왔을 때 저는 3단계가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탄핵 국면, 대선 국면, 개혁 국면을 말한다. 개혁 국면에는 개헌이 포함된다. 이 3단계 국면에서 개혁 세력이 겪게 될 난관은 국민의 개혁 열망은 지속되겠지만 개혁의 연대 범위는 점점 축소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대선 때 이미 나타나지 않았나. 탄핵과는 달리 개혁 세력의 상당한 표가 여러 후보에게로 나뉘어졌다. 대선 다음 국면인 개혁 국면에서는 의회와 함께 입법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가야 한다. 더 축소되는 것이다. 촛불, 대선, 의회구성의 상이 때문에, 개혁의 성공을 위해 제가 일관되게 제안한 것이 통합 정부 구성이었다. 개혁에 대한 초기 지지가 높은 것은 국민의 개혁 열망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개혁이야말로 국가경제구조로부터 개인 삶의 질까지 걸쳐있는, 핵심 중의 핵심개혁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건을 들추어내고 사람을 자르는 식의 사정개혁은, 법률과 제도개혁에 비해,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을 꼭 명심하였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흔히들 정부의 개혁 조치는 첫 100일 안에 끝난다고 하질 않나. 그 안에 안 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들 말한다. 지금 내각 구성 상황만 봐서는 석 달은 걸릴 거 같은데, 국회가 인선을 다 끝내주길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제스처만 취하기보다, 재벌 개혁이 핵심이라면 뭔가 제대로 된 개혁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도 싶다.

박명림 : 입법적인 개혁 의제는 원래 지지는 높지만 성취는 쉽지 않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다. 대통령이 현장에 가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언급하고,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을 안아주고, 보훈대상자와 민주화 피해자를 끌어안는 국민통합행보는 지지와 기대를 동시에 추동한다. 매우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입법화가 필수적인 개혁의제는 의회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입법연대 구축, 정부와 내각구성, 사정개혁 사이의 ‘국정 수순’이 초반 행보에서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은 이것이 좀 뒤바뀌어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윤여준 : 물론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 후 1년이 나머지 임기를 좌우한다고들 한다. 그 1년을 줄여 석 달, 100일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무슨 얘기냐면, 집권을 준비하는 세력이라면 개혁 아젠다를 완벽히 순서까지 짜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고, 집행에 들어가면서, 첫 1년은 정부도 공무원도 의회도 국민도 바쁘게 일을 끌고 가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석 달 안에 무슨 수로 필요한 개혁을 다하겠나. 지금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가적 아젠다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매일 사드 얘기만 뉴스에 나오고, 대통령이 '몇 호 지시' 이런 것을 계속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처리 건을 예로 들면, 당연히 순직 처리를 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지난 정부의 인사혁신처가 반대했던 사안이니, 인사혁신처장을 불러 '왜 안 된다는 것인가. 제도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되는 방법이 없겠느냐'를 묻고 '다시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후 인사혁신처가 스스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법을 만들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게끔 하는 게 좋았다. 이렇게 제도를 따라서 잘못된 문제를 고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구두 지시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게 매우 위험해 보인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뜬금없이 가야사 얘기를 해서 불필요한 논쟁까지 만들었다. 국가가 왜 역사 해석에 개입하려고 하는가.

박명림 :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개혁 과제를 수임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혁명적 변화일수록 개혁적 방법으로 성취할 때 안정적이고 오래 간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의 업무지시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과 인수위의 부재로 인한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한다. 이 업무지시가 계속되면 이른바 지시주의·포고주의(decreeism)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나 탄핵, 쿠데타 직후와 같은 상황에서 주로 위원회 방식을 통해 자주 등장한 것이 지시주의이긴 하나, 이는 법치나 의회주의, 타협과는 충돌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통치방식은 의회나 사법부에서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면 국정 동력을 급격하게 떨어뜨린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를 문서로써 하게하고, 국무총리 및 관계 국무위원과의 사실상의 삼중제(三重制)로 정해 놓은 이유는 민주적 법치와 공적 합의제를 확고히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헌법 제82조)

윤여준 : 이명박 정부 당시 '이 사람은 CEO(최고경영자 역할을 하는 기업인) 출신이라 민주적 절차를 낭비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언제 그걸 다 사람들과 논의하고 추진하냐, 이렇게 생각하더라. 문재인 대통령도 어쩌면 지금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개혁 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는 개혁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다.

박명림 : 전적으로 동의한다.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가 가장 비용이 적게 든다고 했다. 낭비처럼 보여도 결과적으론 민주적 법치 절차를 거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국회를 개혁 대상이 아니라 국정 동반자로 인정하는 만큼 개혁도 성공하고 문재인 정부도 성공할 것이다. 여-야, 국회-행정부 갈등은 국정 동력의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국민들도 이제는 협치를 인정을 해주면 좋겠다. 저도 나름대로는 개혁적인 정치학자이지만, 우리가 선출한 국회의원을 임기 1년 밖에 안 지났는데 곧바로 개혁 대상으로 여기면 안 된다. 자기모순인 것이다.

그동안 재벌과 함께 대통령·관료·검찰을 포함한 행정부는 늘 정치 폄하, 정치 조롱, 의회 폄하, 의회 배척 담론의 주 생산자이고 활용자였다. 그러다 보니 앞선 정부들에서 국가실패와 정책실패의 핵심은 항상 대통령·관료·행정부의 실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엉뚱하게 국회에 전가하면서 청와대·관료·행정부의 책임은 회피하여왔다. 이는 항상 반복되었다. 이런 뒤집힌 상황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 국가들은 지금 복지 국가, 평화 국가, 자유 국가라는 선진국가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행정부, 여-야 협치를 통해 이 뒤집힌 상황을 바로 잡아야한다. 누구보다 촛불 열망을 많이 끌어안아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대통령이 의회와의 협치와 입법연대에 성공한다면 개혁은 성공하고 한국민주주의는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과 협치 두 칼을 다 쥐고 있다. 이를 예술적으로 잘 결합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절실하게 말씀드린다.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북핵 문제 해결 '입구' 만들 카드 준비해야"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이 6월 말로 예정돼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너무 빠르다'며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고 있다. 지금 미국도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데다, 우리의 전략적 우선순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만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또 누군가는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빨리 만나야 한다고도 한다. 어쨌건 하기로 했으니 안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불과 두 달 전에 '4월 한반도 전쟁설'이 돌 만큼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가 긴장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첫 번째 정상외교에 나서는 문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겠나.

윤여준 : 한미 동맹은 현실이고 그 중요성이 크다. 대통령이 새로 취임했는데 한미 정상회담을 빨리 못한다고 하면 국내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데 한다고 해놓고 유예한다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 물론 트럼프도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지만,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얼굴 붉히기야 하겠나. 사전 조율도 할 것이다. 특히 사드 문제가 계속 불거지니 지금 한미 동맹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라도 얼른 한미 정상회담을 해서 한미 동맹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주변국에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명림 : 저도 한미 정상회담을 약속대로 추진하는 게 좋다고 본다. 일단 현재 북핵과 미사일 문제, 사드 배치 문제, 한-중 갈등이란 현안의 엄중성을 보면 한미 정상회담을 미룰 수가 없다.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미국 내정 때문에 연기한다면, 앞으로는 외려 더 상황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미국 내 정치 수순을 예상해서 정상회담을 미루자는 것은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얘기다. 북핵 문제는 21세기 세계 최고의 안보 문제의 하나다. 유엔과 세계 4대 강대국이 4반세기나 다루었는데도 해결 못한 문제이지 않나?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는 긴 시간 동안 한반도 외교 안보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 국제사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한미 정상회담은 추진하는 게 옳다.

또 저는 일단 사드 배치에 대한 국내의 법적 제도적 절차를 제대로 밟는 것은 찬성한다. 다만 이렇게 확보되는 시간이 우리의 역할이나 해법을 국제사회에 반영하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에도 국내 국제 논란이 계속된다면 박근혜 정부가 겪었던 난관과 유사한 국면에 직면할 수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단순한 시간 벌기만 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삼중 난관에 직면해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적 대북 지원과 민간 교류를 재개하려고 하는데, 국제사회는 대북 압박과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제재를 초래하는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개혁 세력의 요구에 대해 북한은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나아가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국내 시민 사회의 제안도 북한은 거부하고 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을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야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고 북핵 문제와 그에 따른 사드 문제, 한중 갈등 문제 등도 풀린다. 예컨대 노태우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남북합의를 통해 유엔동시가입, 한-중 수교, 한-소 수교, 동북아 6개국 안보 협의체 구상이란 국제성과로 연결됐다. 한반도 문제의 남북관계 개선 축을 먼저 뚫자 국제관계와 국제협력의 축이 이어서 뚫린 것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동일하였다. 즉 남북 축이 뚫리면 국제 축도 뚫리는 것이다.


프레시안 : 지금 상황으로는 남북 관계 개선의 시동 걸기도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데….

박명림 :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못한다고 벌써 좌절하면 안 된다. 과거를 돌이켜 보자.전두환 시기에는, 1983년 10월 랭군 폭파 사건(버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해 북한 공작원이 벌인 폭탄테러로, 이범석 외무 장관 등 외교사절 17명이 사망)에도 불구하고 다음해에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 제안을 수용해 북한을 놀라게 하고, 이는 숱한 남북회담으로 이어져 정상회담 개최합의로 까지 연결되었다. 또 노태우 시기에는 칼(KAL)기 폭파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했다. 이후의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박정희 정권 때도 마찬가지다. 북한 무장군인이 대통령을 노리고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1968년 김신조 침투 사건) 했음에도 1972년 7.4 공동성명까지 갔다. 이 세 번의 과정을 깊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북한의 위협은 지금 북핵 문제보다 결코 적지 않았다. 대통령 목숨을 직접 겨냥한 사건들이었고, 국가위기는 더 엄중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결정적인 돌파구를 만든 것이었다.

▲ 박명림 연세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개헌 퇴로 만들어주자…21대 총선서 의회 책임 제로"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의 1년을 예상해보면,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도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개헌안 논의에 의회와 정부의 협치를 가능케 할 제도 개선도 포괄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텐데, 구체적인 구상을 제안해 달라.

박명림 : 이 문제는 국민들이 국민참여 개헌을 통한 바람직한 헌법을 위해 대통령과 의회에 퇴로를 열어줬으면 좋겠다. 주요 정당과 후보들이 전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개헌을 추진하다 보면 권력구조나 의회 제도, 지방 자치 문제 등 핵심 사안은 합의를 못하는 기형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인사 청문회들이 끝나서 정부를 구성하면 바로 하한정국 및 정기국회와 예산 국회가 시작되고, 끝나고 나면 지방선거 공천 및 선거 국면으로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좌우할 개헌의 각종 쟁점을 다 합의해낼 수는 없다. 국민참여 없는 졸속 개헌을 국민들이 동의할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개헌 형식은 국민 참여 개헌, 개헌 시기는 21대 총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시간을 두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경청하고 정당 간 이견 조정 절차를 제대로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 계속 토론하고 합의한 뒤 총선과 함께 국민 투표에서 개헌안을 부치는 것이다. 개헌안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안도 만들어서 21대 총선은 새 제도로 치르는 게 좋다. 선거법 개정은 개헌과 불가분의 관계다.

윤여준 : 저도 100% 동의한다. 정당, 선거, 제도 다 바꿔야 한다. 또 모든 국민이 개헌안을 둘러싼 토론 과정을 충분히 보고 자기 생각을 결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 항상 합의가 안 된 부분이 권력구조 부분이었다. 논의 기간을 다음 총선까지 늘인다고 해서 말씀하신 이상적인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선호하지만 국회에선 내각제 선호도가 꽤 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 때 합의되는 부분만 개헌하자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인 듯 하다.

박명림 : 국민들이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헌의지는 분명 높아졌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들은 의회에 대한 불신도 못지않게 크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하고, 반면 국회의원들은 의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비교를 통해 객관적으로 볼 때는 원론적으로 의회가 중심이 되는 제도가 더 민주적이고 더 효율적이다. 오랫동안 OECD 국가 중 대통령 책임제 국가가 거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밀하게 연구해 봤는데, 여러 국가지표들을 볼 때 대통령 책임제 국가는 의회 책임제 국가를 따라갈 수 없다. 이번에는 권력이 분산되는 쪽으로 개헌이 됐으면 좋겠다.

윤여준 : 저도 방금 말씀하신 의회 책임제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국민이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돼선 안 된다고 인식하면서도 의회 권력을 강화하는 것엔 선뜻 동의하지 못 할 것 같다. 이게 가능하겠나?

박명림 :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한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행정부가 법률안 제출권, 인사권, 예산권, 감사권까지 전부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는 세계적으로 우리밖에 없다. 우리 헌법은 '초(super) 대통령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적극적 권한'은 전부 행정부가 갖고, 우리의 입법부는 국정조사, 국정감사, 인사청문, 예산 계수조정과 같은 ‘소극적 권한’ 밖에 없다. 의회의 규모와 권한을 키우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형평성 지표는 나아지기 어렵다.

윤여준 : 형식은 삼권분립이라고 해놨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이다. 국민들이 당장은 선뜻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더라도 설득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선거법을 바꾸고 정당법을 바꾸면 국회의원 수준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 걸 전제로 의회 권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행정부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한다면, 그 권력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당연히 의회로 가는 게 맞다.

박명림 : 4년 중임제나 대통령 직선제가 국민 열망이라고 한다면, 국가기획 및 국가전략 설정, 국가목표 설정과 국가통합 기능은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내각 통할 기능과 정책집행 기능은 내각과 국무회의에 부여하는 '준 대통령제'를 정밀하게 연구하여 대안으로 추구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권력의 구성 방식과 권력구조는 직결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선거 제도는 크게 잘못 되었다. 득표율 40~50%로 선출된 대통령은 유권자 전체로 보면 실제로는 3분의 1 정도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런 사람이 100%의 권한을 행사한다. 선거제도와 권력구조가 불일치하는 것이다. 비례성이나 대표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러니 대통령이 제왕으로 시작해 식물로 끝나고, 열망에서 시작해 실망으로 끝나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51%의 표만 살고 49%의 표는 죽은 표가 된다. 결국 정부여당이 사실상 4분의 1 정도의 지지를 얻고서 100%를 통치하니, 나머지는 늘 야당을 지지하거나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이러니 한국은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화 이전처럼 시위와 갈등이 높다. 국회와 정부가 4분의 1 내지 3분의 1의 민의에 바탕한 승자독식구조이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선거제도를 반드시 개혁해야 하는 이유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선호한다.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먼저 완수되는 게 당연히 좋겠지만, 안 되면 개헌과 함께라도 꼭 시행해야 한다.

윤여준 :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국민들이 인정하면서도, 그런 제도 변화를 굉장히 섬세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배경은 분단 현실 때문이다. 대규모 자연재해와 테러라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두 가지 위험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집행 권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런 위기에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유럽 나라들은 행정부의 집행 권력이 민주주의를 침해하게 된다고 고민하더라. 게다가 우리는 분단 상태다. 집행 권력이 지나치게 약화된다 싶으면 국민이 또 불안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한 약화를 원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권력 분산형 개헌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섬세해야 한다.

박명림 : 개헌 방향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지방자치의 획기적 강화여야 한다. 한국의 아주 큰 갈등 중에 하나가 중앙과 지방 사이의 갈등이다. 예전에는 중앙과 지방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서울시도 지방정부인데 언제부턴가 중앙과 지방을 구분해 사용한다. 자치의 강화 없이는 국가발전도 어렵다.

윤여준 : 지방자치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도 지방정부란 말을 못 쓰게 했다. 어떻게 지방에 정부란 표현을 쓰느냐고.(웃음) 지금 상황대로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당은 참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지방선거를 앞둔 개헌은 정계개편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른정당도 지금 존재감을 너무 못 찾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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