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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박명림 대담] 文정부, '촛불 절대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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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박명림 대담] 文정부, '촛불 절대화' 위험

[윤여준·박명림 대담 ①] "제도를 통한 개혁이 가장 큰 개혁"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혁명의 정신을 받들겠다"(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고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의 산물"(5월 31일 국무총리 취임사)이라고 했다.

'촛불'이 문재인 정부 정체성의 근간이란 선언은 이 외에도 숱하다. 출범 한 달 간 새 정부가 쏟아낸 각종 개혁 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환호와 80%에 이르는 '역대급' 대통령 지지율 역시 아직 식지 않은 촛불 열기와 무관치 않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일각에선 촛불이 뒷받침하는 임기 초반인만큼 전방위적인 개혁 속도전을 주문한다. 반면 촛불 만능론에 기댄 밀어붙이기식 개혁은 얼마 못 가 장벽에 부딪힐 거란 걱정을 하는 이들도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확실히 후자 쪽이다. 실질적인 개혁은 입법으로 완성되며, 이를 위해선 국회, 특히 야당과의 타협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여야 갈등이 가시화된 인사청문회 정국 속에, 권력과 정치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 원로와 왕성한 연구활동을 통해 현실 정치에 이론적 제언을 제공해 온 정치학자의 대담을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야당 손을 잡아야 개혁이 가능하다"

새 정부의 정신적 뿌리인 '촛불'에 대한 높은 평가에 인색하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경이로웠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디지털 시대의 한국 사회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며 "디센트럴라이제이션(decentralization·분산,분권)을 디지털 시대의 핵심이라고들 한다. 바로 이것을 한국에서는 광화문 촛불 혁명을 통해 보여줬다"고 했다.

박 교수는 "촛불 혁명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길을 잃었던 공화국의 가치를 복원시킨 사건"이라며 "계속 악화된 공공성, 법치, 헌법, 시민참여, 연대, 평화라는 공화적 가치를 민주주의와 접목시킨 역사적 대사건"이라고 했다. "촛불 혁명은 한국 사회에서 강고한 상층 카르텔을 형성해 온 재벌, 검찰, 정당, 법조, 언론을 아우르는 보수 세력을 향한 공화적 개혁과 재편 요구"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촛불 혁명의 절대화"를 입 모아 경계했다. 윤 전 장관은 "최근 언론을 보면서 촛불 혁명을 지나치게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면서 "이것은 그 자체로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이낙연 총리가 취임할 때 '문재인 정부 공직자는 촛불 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도구'라고 말한 것은, 총리로서는 해서는 안 될,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며 "이런 발언도 촛불 혁명을 절대시하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광장의 정치가 요구하는 원칙이나 가치를 받아서 제도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고 해서 (촛불의 힘으로만)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도 "광장의 정치와 제도정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사회가 촛불 혁명을 절대화하면 스스로 개혁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국민적 지지가 높은 요구는 반드시 수용해야 하고, 의회는 보수적이니 배척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가는 양자택일 국면에 빠지면서 개혁추진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처한 현실은 여소야대다. 어느 때보다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정부다. 문재인 정부 개혁의 성패는 곧 야당을 개혁의 동반자로 설득해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한국 사회 모순을 보면 혁명적으로 확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개혁은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개혁을 위해 우선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다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서도 "다만 개혁의 방법은 개량주의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혁명적으로는 안 된다. 야당과 손을 잡아야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거듭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한발 한발 나아갈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한 번에 열 걸음 도약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의 과제와 로드맵을 만들어서, 하나씩 정리를 해가며 추진해야 한다. 절대로 조급한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초기 개혁 의제들에 대한 국민 지지는 현재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 구성도 완료하기 전에 여야가 대치하면서 통합과 협치가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개혁을 하면 착시효과는 크지만 그 실질 결과는 지속되기 어렵다"며 "반면 타협을 통해 법률과 제도를 개혁하면, 처음에는 개혁의 폭이 조금 작아 보일지라도, 상호 승복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가장 큰 개혁을 성취하게 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특히 이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는 공통 공약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공통 공약을 시행하는 것이 협치와 통합에 매우 좋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혁은) 의회와 함께 가야 한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만큼은 '의회가 개혁 주체인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담론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인사에 대해선 후한 평가를 했다. 윤 전 장관은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하고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환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윤 전 장관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하고 핵심적인 문제가 경제적 불평등인데,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겠냐"며 이 같이 말했다.

또한 "김상조, 장하성 두 사람 모두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재벌 해체론자가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며 "야당이 김상조 후보자를 청문회에서 낙마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만한 대단한 결격 사유도 없었다고 본다"고 했다.

박 교수도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개혁성, 비교적 높은 여성 참여 비율, 대통령의 정실인사 배제 등을 꼽으며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는 일단 성공이라고 본다"고 했다.

박 교수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5.18 버스운전사 사형 선고와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소수 의견 제시에 대한 동시 비판은 거의 정신 분열 수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언론을 향해서도 "해당 공직을 수행할 만한 적격한 인물인지 종합적 평가를 내리기보다 흠 잡기를 언론 본연의 일인 줄 아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지난 8일 오후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이 진행한 대담 전문.

▲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지난 8일 문재인 정부의 출범 후 1달 평가와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대담을 하는 모습. 두 사람은 모두 '촛불의 절대화'를 경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화 30년 만에 공화주의 복원한 촛불 혁명"

프레시안 : 지난해 촛불 혁명은 시민이 밑으로부터 이룬 민주 혁명이다. 앞선 사례를 보면 87년 6월 항쟁의 경우 야권 분열로 보수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엔 집권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의가 제대로 정치에 반영되는 제도가 정착되는 계기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촛불 혁명과 대선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간단한 전망을 먼저 부탁한다.

박명림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짧은 밑으로부터 도전과 일정한 기간의 안정을 반복해 왔다. 건국과 정부 수립 이래, 이승만 정부는 4월혁명으로 붕괴됐다. 박정희 정부는 부마항쟁으로 붕괴되었다. 그 뒤로는 12.12쿠데타와 광주항쟁으로 또 다시 복구와 저항의 패턴이 반복됐다. 전두환 정부는 6월 항쟁으로 붕괴됐다. 하지만 매번 ‘수동 혁명'에 그쳤다. 수동혁명이란 밑으로부터의 시민혁명으로 구체제는 타도 됐지만 신체제에서도 구체제요소가 빠르게 복원되는 것을 뜻한다. 4월 혁명은 5.16 쿠데타로 대체되고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은 전두환 집권으로 역전되고 6월항쟁은 노태우 집권으로 변형되면서 기존 체제의 복원과 연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지난해와 올해 네 번째 밑으로부터의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이 촛불 혁명은 6월 항쟁 이후에 가장 큰 정치적 격변이고 역사적 사건이다. 촛불시민혁명이 앞선 저항들과 다른 차이점은 군사독재 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를 밑으로부터의 저항으로 전복했다는 점이다. 이는 상당히 큰 차이다. 앞선 세 번의 민주혁명은 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초점이 있었다면, 촛불 혁명은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길을 잃었던 공화국의 가치를 복원시킨 사건이었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모두의 나라'라는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이상은 해체되고 도전받았다. 6월 항쟁의 결과는 군부를 퇴진시켰을 뿐이었다. 민주화 이후 사회가 고르게 발전할 줄 알았지만 결국은 재벌과 검찰, 보수 정당, 보수 언론의 힘은 커지고 비정규직, 청년, 학생, 여성, 노인, 실업자의 사정은 점점 나빠졌다. 촛불 혁명은 국정농단을 계기로 한 이런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국민저항이었다. 계속 악화된 공공성, 법치, 헌법, 시민참여, 연대, 평화라는 공화적 가치를 민주주의와 접목시킨 역사적 대사건인 것이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후 거의 100년만,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 후 70년 만,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만이다.

프레시안 :윤 전 장관은 네 번의 혁명을 모두 성인이 되어서 겪으셨다. 그래서 남다른 느낌이 있을 거 같다. 지난 촛불 혁명을 어떻게 봤나.

윤여준 :전두환 대통령이 1987년 4.13 호헌조치를 했을 때, 제가 청와대 공보 비서관이었다. 호헌 조치가 발표된 다음날 아침에 이종률 공보수석이 비서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데, 거기서 비서관들에게 '어제 있었던 4.13 호헌 조치에 대해서 한명씩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제 앞에 비서관 두 명이 일단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은 만시지탄이라고 했고, 한 사람은 많은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제가 세 번째 차례였다. 저는 '이 일로 4.19 이후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완강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공보수석이 얼굴이 빨개져서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청와대에 있느냐. 나가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두 달이 안 가서 6.10 항쟁이 벌어졌다. 그때 광화문에서 얼마나 최루탄을 쐈던지. 제가 혼자 퇴근을 안 하고 사무실에 남아 있었는데 그 안으로도 최루탄 연기가 들어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참 만감이 교차했었다. 이런 국민적 저항이 올 것이라는 것을 정말 몰라서 (호헌 조치를) 강행한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한 것인가. 전 전 대통령은 빼더라도 참모들은 몰랐던 건가 아니면 알면서 했던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당시에도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 수준에 경탄을 했었다.

이번 촛불 혁명은 저는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랬다. 쓰레기나 부상자가 없었다는 점은 부분적이다. 보다 주목한 현상은 광화문에 100만이 모였는데 지휘부가 없었다는 점이다. 참여자 모두 각자가 중심이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건 디지털 시대의 한국 사회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디센트럴라이제이션(decentralization·분산,분권)을 디지털 시대의 핵심이라고들 한다. 바로 이것을 한국에서는 광화문 촛불 혁명을 통해 보여줬다. 마치 재즈 밴드처럼 내가 지휘자이기도 하고 연주자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정말 경이로웠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저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곤 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더 컸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한 번으로 끝내고 나올 생각을 할까'란 의심도 했었다. 그걸 누구한테도 말하기도 어려웠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정권 연장을 시도)한다면 그 방법은 뭐냐, 한 가지밖에 없는데…'란 걱정을 속으로 엄청 했었다.

그간 한국 보수는 분단 체제를 십분 활용하면서 반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북한 위협을 강조하면서 내부를 누르고 가는 손쉬운 지배를 오랫동안 해 왔다. 세상은 변하는데 보수는 계속 이랬으니 몰락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번의 촛불 혁명과 선거를 보며 보수도 더 이상 그 방법을 쓰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뭘 쓸 것인가.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지금의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에 있는 분들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서 한국에 새로운 보수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아직 별로 없어 보인다. 암담하다.

▲ 연세대 박명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보수의 몰락?…현 정치 제도가 바로 보수의 희망"

프레시안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은 보수 세력이 굉장히 위축돼 있고 또 분화돼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사실상의 보수 몰락이라는 평가도 한다.

박명림 :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보수 세력에 조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공화주의의 역사들을 보면 2세나 3세가 집권하면 선대의 성취나 업적을 파괴하고 해체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국정 농단 사건은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만든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 보수 세력의 능력과 도덕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촛불 혁명은 한국 사회에서 강고한 상층 카르텔을 형성해 온 재벌, 검찰, 정당, 법조, 언론을 아우르는 보수 세력을 향한 공화적 개혁과 재편 요구였다. 지금 보수 세력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낮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보수 세력이 앞으로 자유주의 보수, 민주 보수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소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금까지처럼 반공 보수와 산업화 보수에 머문다면 국민의 지지 기반을 다시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본다.

다만 지금 보수의 바닥은 정치적 문제이지 구조적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건 한국 정치가 타협과 공존, 협치보다는 대결과 갈등, 양자택일로 귀결되는 제도적이고 헌법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권력의 진자운동'을 말한다. 한국 사회는 진자가 이동을 하듯 권력 쏠림 현상이 매우 강하다. 권력 구조와 제도 상 일단 5년 동안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대통령 의제·정당 의제·캠프 의제를 과도하게 밀어붙인다. 그러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실수, 정책 실패가 쌓이면 반대 진영에 정반대의 진영의제·정당의제·캠프 의제가 누적된다. 그러고는 국민의 지지가 바뀌면 모든 국가의제들이 갑자기 역전된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이것을 30년 간 경험했다. 과거 3당합당으로 다 죽었던 민주개혁 세력이 다시 복원 됐고, 노무현 탄핵으로 거의 몰락했던 보수 세력도 다시 복원이 됐다. 3당합당 때 나온 적지않은 글들이 한국은 이제 일본식 1.5당제가 될 것처럼 썼다. 그런데 3당합당은 김영삼 정부 단 한 번밖에 정권 창출을 못 했다. 그 다음에 곧바로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외환위기 때도 많은 이들이 보수가 국가 경제를 이렇게 파탄시켰으니 재기가 가능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후 바로 재기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열린우리당이 개혁세력 최초로 국회에서 제1당으로 등장하고 보수가 추락할 듯 보였는데 거꾸로 개혁세력이 곧바로 정권을 상실했다. 이런 정치동학의 역사를 보면 현재 보수가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다.

"촛불 절대화 경계해야…자칫하면 족쇄"

윤여준 :박 교수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번 촛불을 보고 혁명과 항쟁이란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워낙 촛불이 가져온 변화의 폭이 크니까 일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학문적 엄밀성으로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6월 항쟁은 권위주의 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꾼 체제 전환 사건이니 혁명이라고 부를 법도 한데 아직 '항쟁'이라고 한다. 한편 이번 촛불은 많은 학자들이 혁명이라고 거침없이 쓰고 있다.

박명림 :본질적이고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 주셨다. 애초 혁명이라는 것은 자연과학적 개념이었다. 하늘이, 또는 신이 정해준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회전을 바꾸는 것을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이 개념이 인간의 역사와 사회 문제로 옮아왔다. 항상 세상은 군주가 지배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민중이 군주를 타도하고 인민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프랑스 혁명이 보여줬다. 그러자 학자들이 이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다가 혁명이란 단어가 처음 쓰였다. 이렇듯 프랑스 혁명에 바탕을 둔 혁명의 고전적 정의는 법률과 제도를 초월한 급진적 폭력적 체제 변혁이다.

그러나 그 뒤로 혁명이란 개념의 사용의 폭은 조금씩 넓어져 왔다. 초법성, 단절성,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고 기존 체제를 타도하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일정한 제도와 관성의 방향을 현저하게 바꾼다면 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농업혁명, 근대화혁명, 산업혁명은 물론 최근의 동구혁명과 아랍의 봄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도 아랍의 봄을 두고 시위, 행진, 저항, 변혁, 항쟁, 봉기, 혁명 등 여러 단어 중 무엇이 적절한지 토론이 벌어졌다. 유럽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그 토론회에서도 혁명도 적절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윤여준 :고전적으로 시민 혁명이라고 하면 계급적 변혁이 있을 때를 얘기지만 요즘은 그게 아니더라도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나면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한편 최근 언론을 보면서 촛불 혁명을 지나치게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상화한다고 하면 지나칠지 모르지만, 절대화 하는 거 같다는 느낌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위험하지 않을까?

박명림 :저도 거의 매주 광장에 나간 촛불시민이지만, 광장의 정치와 제도정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말씀하신 대로 한국사회가 촛불 혁명을 절대화하면 스스로 개혁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 이미 몇몇 개혁 사안은 국민적 지지도가 굉장히 높더라도 의회에서는 절차적·법률적으로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단순히 국민적 지지가 높은 요구는 반드시 수용해야 하고, 의회는 보수적이니 배척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가는 양자택일 국면에 빠지면서 개혁추진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윤여준 :박 교수가 최근 언론에 쓴 글에서 '통합과 개혁의 공존'이 문재인 정부 성공의 조건이라는 조언을 한 것을 보고, 저도 그것이 진짜 핵심이라고 생각을 했다. 문 대통령이 정말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낙연 총리가 취임할 때 '문재인 정부 공직자는 촛불 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도구'라고 말한 것은, 총리로서는 해서는 안 될,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발언도 촛불 혁명을 절대시하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건 누가 좀 충고를 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광장의 정치가 요구하는 원칙이나 가치를 받아서 제도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고 해서 (촛불의 힘으로만)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진자 정치 극복하는 통합 추구해야 개혁 성공"

프레시안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큰 과제는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국가적 의제의 설정이라고 보는 건가.

박명림 :저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에서 정당 의제·캠프 의제·대통령 의제만 있고 국가의제, 국가목표, 국가기획, 국가비전은 상실되어 왔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바 있다. 그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나 저출산·고령화, 재벌개혁, 양극화 문제 등이 풀리지 않아왔다고 본다. 게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항상 전임 정부를 부정하면서 국가의제는 늘 실종됐다. 어떤 담론이 특정 정치인과 캠프의 정책이 되고 나면, 그것이 곧 대선을 거치면서 대통령과 정권의 5년짜리 의제가 되면서 국정 전분야를 장악하고 만다. 김대중 대통령은 저와의 수차 대화에서 혼신을 다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준비한 국가의제들을 실현하기에는 너무도 시간과 힘이 부족하였다고 안타까워한바 있다. 저는 정권의제를 넘는 보편적 국가의제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선진 민주·복지·평화 국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핵심문제라고 본다.

윤여준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후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병행 발전'을 말했을 때 엄청난 기대를 했다. 정말 DJ 다운 식견이다 싶었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의식해서 표현을 그렇게 중립적으로 했을 따름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의원은 저에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 발전은 같은 말 아니냐'고 하더라. 그 정도 수준이었다. 다만, 속으로는 DJ에게 굉장히 기대했는데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그게 제대로 안 됐다. 그게 정말 애석하다.

박명림 :말씀하신 이유 때문에 개혁과 통합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의 권력구조 때문에 행정부와 국회의 갈등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대로 협치에 방점을 뒀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는 공통 공약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공통 공약을 시행하는 것이 협치와 통합에 매우 좋다고 본다. 사실 국정농단이 초래한 개혁과제는 국민의 개혁요구도 높고 이미 정부교체와 전임 정부 최고 책임자의 구속으로 인해 역진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초기 개혁의제들에 대한 국민지지는 현재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 구성도 완료하기 전에 여야가 대치하면서 통합과 협치가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갔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국민지지와 의회지지는 동시에 필요하다. 앞으로 개혁의 추진과 저항 사이에 길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마음 깊이 걱정하고 있다. 성공한 개혁사례들은, 기득세력의 저항을 약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제도내로의 통합과 순치라는 점을 보여준다.

윤여준 :말씀하신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엔 '국가 아젠다'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건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다. 이는 국가 운영 원리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 아닌가. 오랜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 시대가 왔으면 새로운 국정 운영 원리도 만들어내야 하고 국가 목표도 제시해서 우리가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지 국민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데, 이게 없이 부분적인 개혁으로 바로 갔다. 그 개혁도 체계적인 것이 아니고 국민이 원하는 게 뭐냐, 박수칠 만한 게 뭐냐를 찾아서 하는 이런 식의 개혁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박정희 모델이라는 흔히 부르는 권위주의 모델이 잠깐 멈췄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완전히 되돌아가는 듯 보였고, 국민은 이번에 다시 그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어서 촛불을 들었던 것 아닌가.

박명림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제도나 거버넌스(governance)보다 사람이나 주체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잘 뽑으면 된다, 대통령이 잘 하면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저의 오랜 주장은 관료 국가에서 의회 국가로, 그리고 관치 국가에서 민치 국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집권하든 '내가 5년 안에 개혁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불가능하다. 초반에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실수와 실패가 누적되어 반대 진영의 점수와 지지가 쌓이고 그러면 힘이 대등해진다. 그러면서 국가 의제가 실종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태우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구호로서 비핵평화는 외쳤지만, 북핵 문제는 점점 더 악화해 왔다는 점이다. 저출산, 고령화, 비정규직, 재벌 개혁, 양극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침통할 뿐이다. 정책의 연속성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시장을 이길 수가 없다. 주기가 완전히 다르니 정부가 늘 패배한다. 임기가 없는 시장을 임기가 제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이길 수 있나. 그래서 선진 국가가 대통령제를 거두고 의회 책임제를 만든 것이다. 나아가 대통령 개인 정부 대신 정당정부를 추구하는 이유다. 정당정부가 지속되면서 거기에 연정까지 하면 정책의 연속성이 확보되니 시장에 일관된 정책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5년에 한 번씩 시장, 북한, 미국을 향한 의제와 신호가 바뀐다.

▲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통합 정치, 어떻게 할까?…"의회 배척 담론부터 폐기해야"

프레시안 :말씀하신 대로, 문제는 우리의 제도 자체가 그런 상황을 만든다는 점이다. 지금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인 김상조 교수가 10년 전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우리나라 정치는 비토크라시(vetocracy·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에 '거부'란 뜻의 비토(veto)를 합친 말)다. 뭘 하게 하는 건 안 되고, 뭘 못하도록 발목 잡는 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실로 돌아와서 보면,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2개월이 없는 상황에서 출범했고, 이제 불과 한 달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협치와 연정을 얘기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 분위기를 보면 정부 구성에만 두 달 이상이 걸릴 것 같아 보인다. 통합을 위한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의 지난 한 달을 평가하면 어떤가. 정부는 기본적으로 연정까지는 생각이 없고 협치 수준을 생각하고 있어 보인다.

박명림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만큼은 '의회가 개혁 주체인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담론이 사라지길 바란다. 한국 사회에는 대선이 끝나고 나면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행정부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뿌리내려 있다. 대통령이 개혁의 조타수이자 개혁의 선두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임기 초반에는 맞다. 또 대통령제 국가니까 그런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임기 내내 그럴 수는 없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원 정당성' 위에 기초해 있다. 대통령에게도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입법부인 의회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국회는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 선거를 통해 의석비율을 배분한 국민의 대표 기구다. 즉 의회와 함께 가야한다. 따라서 '의회가 (행)정부 발목을 잡는다'는 담론은 민주적 담론이 아니다. 이는 탄핵을 당한 박근혜 대통령조차 자주 언급한 매우 비민주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 공간을 보면 '의회가 (행)정부 발목 잡기를 한다'는 비판이 넘쳐난다. 더 나아가 촛불의 개혁열망을 힘으로 행정부가 의회를 분쇄하고 돌파하길 바란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보수적인 정부들 때도 똑같이 '의회가 (행)정부 발목을 잡는다'는 공격담론이 대한민국을 장악했었다. 물론 틀린 말이다. 한국의 의회가 개혁되어야할 점이 많지만, ‘의회의 발목잡기’ 담론을 교차 반복하면 앞으로도 국가의 근본개혁은 불가능하다. 입법자들은 다른 누가 아닌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다. 촛불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개혁정부가 들어서길 간절히 바랐던 시민으로서, 이 발목잡기 담론이 반복되는 것은 정말 우려스럽다.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개혁을 하면 착시효과는 크지만 그 실질결과는 지속되기 어렵다. 대한민국 개혁실패의 역사가 보여주고 수많은 국가의 정치 역사가 증명한다. 반면 타협을 통해 법률과 제도를 개혁하면, 처음에는 개혁의 폭이 조금 작아 보일지라도, 상호 승복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가장 큰 개혁을 성취하게 된다. 당대의 가장 거대한 적폐를 청산한 링컨과 루즈벨트는 해당 부문을 반대당에 맡기는 최고의 통합정책으로 최고의 성취를 달성하였다. 매우 일찍부터 박근혜 하야와 퇴진을 외쳤던 학자로서, 또 거의 매주 촛불 집회에 나갔었던 시민으로서, 제게 한국사회의 개혁성공은 정말로 절박하다. 이번에 나라의 근본 틀을 개혁하지 못 하면 한국의 미래는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협치와 통합을 하면 훨씬 본질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 국정 협조보다도 국정 협치를, 국정 협치보다도 정치연합과 통합정부를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윤여준 :지혜롭고 현실적인 지적이다. 한국 사회 모순을 보면 혁명적으로 확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개혁은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 개혁을 위해 우선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다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다만 개혁의 방법은 개량주의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혁명적으로는 안 된다. 야당과 손을 잡아야 개혁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타당하다.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한발 한발 나아갈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한 번에 열 걸음 도약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의 과제와 로드맵을 만들어서, 하나씩 정리를 해가며 추진해야 한다. 절대로 조급한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文 정부 인사, 잘하고 있다…한국당의 김이수 비판, 정신분열적"

프레시안 :의회가 발목잡는다는 담론이 반복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의 인사 청문회를 보면서는 '저건 정말 발목 잡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고위 공직자 배제 조건(위장전입·부동산투기·병역 변탈·세금 탈루·논문 표절 5대 비리자 배제)을 무작정 적용하는 것을 보면 '참 같이하기 어려운 세력'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니 청와대는 탄핵에 찬성했던 80% 연합, 바른정당까지 포함하는 다수 연합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반대를 하겠다고 작심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의 타협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박명림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는 일단 성공이라고 본다. 첫째는 개혁 지향적인 분들이 경제와 사법 분야 주요 자리에 포진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재벌개혁과 검찰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둘째는 청와대 인사수석, 외교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보훈처 장관 등에 최초로 여성을 임명한 것이다. 저는 오래 전부터 국회의원 여성공천 30%를 주장한 것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여성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성은 곧 인간성이다. 여성이 인구의 절반인데 지금까지 고위 공직자는 남성이 독식했다. 평교사들을 보면 여성이 많은데 교장·교감 선생은 거의 다 남자인 사회다. 셋째는 대통령 측근과 정실인사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 출범 초기에 이 문제로 비판받지 않은 정부는 민주화 이후 문재인 정부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다만 외교-안보-통일 쪽 인사는 난제 중의 난제인 통일·북핵 문제나 한미·한중 관계 등을 직접 다뤄본 사람이 없어 보여 걱정이 크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5.18 버스운전사 사형 선고와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소수 의견 제시에 대한 동시 비판은 거의 정신 분열 수준이다. 또 요즘 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시대정신, 한국사회 발전의 과제, 민생 현안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우리 언론은 흥미와 지엽 말단적인 것을 주로 좇고 있다. 인사청문회 기사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해당 공직을 수행할 만한 적격한 인물인지 종합적 평가를 내리기보다 흠 잡기를 언론 본연의 일인 줄 아는 것 같다.

윤여준 :일단 저는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하고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환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하고 핵심적인 문제가 경제적 불평등인데,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겠나. 국가 권력이 자본 권력에 포획된 상태에서 무엇을 고칠 수 있겠나. 우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라고 하면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자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자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저항이라 하겠지. 그런데 김상조, 장하성 두 사람 모두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재벌 해체론자가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다. 개혁의 좋은 출발이자 환상적 조합이다. 야당이 김상조 후보자를 청문회에서 낙마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만한 대단한 결격 사유도 없었다고 본다.

하나 조언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특보(특별 보좌관) 제도를 활용하는 게 좋다는 점이다. 대통령이야 말로 허위 보고를 가장 많이 받기 쉬운 자리다. 수석 비서관들이이런 잘못된 보고를 막아줘야 하는데 청와대 수석이 특정 부처 출신이거나 그 부처로 돌아갈 사람이라면 대통령 입장이 아니라 그 부처 입장을 더 고려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청와대 수석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정직성이다. 능력이야 부족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정직성은 본인 스스로 쌓아야 하는 것이질 않나. 잘못하면 수석이 대통령을 기만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대통령이 학자나 전문가를 특보로 쓰면 관료나 수석들을 견제하고 보완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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