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청문회 시즌이 열리면서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이 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는 그 '양'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6월 1일 현재까지, 20건에 가까운 의혹들이 언론 지면을 통해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제기된 '의혹'들을 살펴보면 좀 의문이 듭니다. '이게 이렇게 중대하게 다뤄질 만한 일인가?'라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 31일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은 김 후보자의 아내 조모 씨가 서울 성동구 소재 공업고등학교 영어 강사로 채용되기 위해 제출한 지원서와 이력서를 보니, 조 씨가 2006년 7월부터 2007년 9월까지 사설 영어학원에서 학원장으로 일했는데도 이 기간 중 일부(2006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기간에 김 후보자의 직장의료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다며 건강보험료 및 소득세 탈루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김 의원이 공개한 조 씨의 지원서 3건(각각 2011년, 2013년, 2017년 작성)을 보면, 이 가운데 2건(2011년, 2013년 작성본)에는 해당 경력 기간이 '2005년 7월부터 2006년 8월까지'로 돼 있습니다. 2017년 작성한 1건의 지원서에만 '2006~07년'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단순 오기(誤記)로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실제로 공정위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 1건의 지원서에 기간을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1일 아침에는 <조선일보>가 김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면서, 이미 전날 나온 공정위의 해명은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공정위 해명 자료는 전날 <중앙일보>가 김 의원의 주장을 보도한 이후부터 공정위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언론의 사명은 '질문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혹시 거기에 어떤 문제나 잘못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끊임없이 캐물어야 합니다. '설마 민간인인 최순실 씨가 청와대 보고서를 받아 봤겠느냐'고 넘기지 않고, 집요한 취재를 통해 '국정 농단' 사태의 전모를 파헤친 것은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야당 의원인 김선동 의원이 공직 후보자에 대해 석연치 않은 부분을 문제삼고 파헤치는 것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 인사 검증이라는 본연의 직무 범위 내에 포함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의혹을 제기하려면 확인을 거치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동일한 학원 경력에 대해 기재하고 있는 3건의 이력서 가운데 2건은 내용이 일치하고, 1건만 차이가 난다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김 후보자 본인이나 그를 돕고 있는 공정위 직원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전화 한 통화면 될 일입니다.
지난달 30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아파트 분양권 전매 의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문 보도의 요지는, 1999년 3월 서울 중랑구 상봉동의 한 아파트를 매수한 당일 매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김 후보자가 1996년에 청약에 당첨돼 중도금을 납부하던 아파트였고, 김 후보자 측은 "거래 내역에 기재된 '매수'는 '매도'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습니다.
부인 조 씨가 같은 고등학교에서 5년 동안 근무한 것이, 영어 강사의 경우 같은 학교에 4년 이상 채용돼 근무할 수 없게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위반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해프닝이었습니다. 김 후보자 측은 "법 시행령은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4년 동안 근무한 후, 새로운 채용 절차에 따라 임용되어 계속 근무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4년 근무 만료자는 신규 채용 절차를 거쳐 동일 학교에 재임용이 가능하므로, 타 지원자들과 동일한 조건 하에 신규 채용 절차에 응시할 수 있다. 배우자는 2013년 3월부터 4년동안 해당 고등학교에 강사로 근무했고 올해(2017년) 초 새로운 공개 채용 절차를 거쳐 다시 임용돼 계속 근무한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조 씨가 이력서에 자신이 근무한 학원의 정식 법인명을 적지 않고 '대치동 영어학원'이라고만 쓴 것을 토대로, "대치동 영어학원"이라는 학원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허가 학원을 운영한 것이라는 의혹 제기도 있었습니다. 취업하기 위해 내는 이력서에는 통상 이전 근무처의 정확한 명칭을 쓰는 것이 통례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무허가 학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침소봉대에 가깝습니다. 조 씨의 토익 점수가 900점인데 채용 기준은 '901점 이상'이기 때문에 '특혜 채용'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최초 공고를 냈을 때 지원자가 없어 학교가 재공고를 냈고, 이에 따라 점수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조 씨가 채용된 것이라는 해명은 거의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의 '단독 보도'는 '그런데 이게 왜 문제라는 거지?'라고 기자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김 후보자가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전세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지 않았고 전세권 등기를 하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김 후보자가 자기 전세금을 떼일 위험을 무릅쓴 것이 그의 도덕성에 어떤 흠으로 작용하는 걸까요?
또 일부 야당 정치인은 김 후보자가 연말정산 때 신용카드 사용 액수를 '0원'으로 신고한 것에 대해 '씀씀이가 투명하지 않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김 후보자는 당시 공직자도 아니었고, 사용 액수를 제출하지 않은 신용카드도 그의 개인 카드였습니다. 신용카드 사용액 신고는 연말정산 때 세금을 환급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가 신용카드 사용액을 신고해서 소득세 공제를 받지 않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더 냈다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라는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김 후보자가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아 활동한 것이 한성대 교수로서의 겸직금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점입가경입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거나 학내외 연구단체·학회 활동을 하는 것은 대학 교수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고, 영리 목적의 직업 활동을 하는 게 아닌 한 이를 '겸직'으로 여겨 문제삼지 않는 게 통례였습니다.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되, 굳이 문제삼아야 할 만한 일인지 애매한 건도 있습니다. 1일 <국민일보>는 김 후보자가 국세청에 신고한 '기타 소득' 목록에 3건의 강연료 수입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012년 11월 충청남도 경제단체장 특강, 2014년 9월 시민단체 '마을학교' 강연, 2016년 시민단체 '참여연대' 강연이었습니다. 이 3건의 강의료는 20~30만 원 선이었습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강의료 같은 기타 소득은 기본적으로 신고 의무가 원천징수자(강의료를 지급하는 쪽)에 있고, 실무적으로 25만 원 이하의 강의료는 경비를 제외하면 비과세 대상(과세표준 5만 원 이하)여서 신고 의무도 없고 (종합소득) 합산신고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김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그는 2012년 한국방송(KBS)에서 출연료로 4만2700원을 받은 것까지 합산신고를 했습니다. 이에 비춰 보면 강연료가 20만 원 이하여서 일부러 합산신고를 하지 않았다기보다 실수로 누락한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대학 교수인 김 후보자는 2012년 15건, 2013년 24건, 2014년 18건, 2015년 27건, 2016년 30건의 외부 강연료, 원고료, 방송 출연료 등을 꼬박꼬박 신고했습니다. 총 114건을 신고하면서 이 가운데 서너 건을 누락했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설사 신문이 제기한 의혹대로 강연료가 비과세 기준(25만 원)을 넘어섰고 따라서 소득세 일부가 결과적으로 미납된 게 사실이라고 쳐도, 예를 들어 30만 원을 받았다고 했을 때 그가 내야 할 세금은 1만2000원 정도입니다. 신문사에서 받은 고료 250만여 원, 보험 관련 단체에서 받은 강연료 100만 원 등에서부터 단돈 몇만 원의 방송 출연료까지 모두 합산해 신고한 김 후보자가 20~30만 원짜리 강연료 3건을 신고하지 않았다 해도 그게 과연 '소득세 탈루' 목적이었을까요?
다만 김 후보자가 해명해야 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논문 자가표절 의혹은, 사실이라면 연구윤리 위반으로 볼 소지가 높습니다. 신문은 김 후보자가 2000년 8월 700만 원의 연구비를 받아 노사정위 용역으로 작성한 연구보고서 내용 일부가 2000년 12월 발표한 자신 명의의 다른 논문에 그대로 등장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중앙>은 전날 김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2010년 10월 26일 오후 7시38분 서울시 중구 회현동 (주)신세계푸드에서 6만6000원을 결제한 지 31분 만인 오후 8시 9분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세진에프알에스에서 85만4150원이 결제됐다며,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김 후보자 측은 "'업무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원론적 해명을 하기는 했으나, 31분 만에 서울 회현동과 신림동을 오가며 카드를 사용한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추가로 해명돼야 할 부분입니다.
김 후보자 스스로 사실관계를 인정한 1997년 부인·아들의 위장전입 문제는, 이낙연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위반 논란과 맞물려 정치 쟁점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공정위가 사흘째 "사실관계 파악 중"이라고만 하고 있는 목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도, 사실로 밝혀진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한 문제입니다.
김 후보자 아들의 금융기관 인턴 특혜채용 문제는, 김 후보자 측이 "아들의 인턴십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 아들이 인터넷 공모를 보고 응모해 합격한 것이거나 모교 교수의 추천을 받았던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안의 특성상 사실관계 규명이 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처럼 △위장전입 및 위장전입 방조, △다운계약서 작성, △논문 자가표절, △아들 인턴 채용, △법인카드 사용 등 김 후보자 측의 해명이 미진하거나 또는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소지가 있는 문제 5~6건 외에, 김 후보자 측의 해명으로 이미 상당 부분 의혹이 소명된 것까지 싸잡아 "경제 비리 종합선물세트"(1일,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라거나 "의혹이 화수분처럼 솟아나고 있다. 의혹을 다 헤아리기에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같은날,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특히 그간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족 특혜 채용', '본인·자녀의 군 복무 특혜' 등의 의혹이 비중 있게 제기됐던 것은, 해당 후보자들이 대개 고위 공직자이거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였던 이유 때문입니다. 고위직 신분을 악용해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중대한 자질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 후보자는 공직자가 아닌 대학 교수였고, 그것도 진보 성향으로 이름난 학자였습니다. 재벌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는 시민단체 활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어떤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정부·재벌을 비판하는 학자에게 '특혜'를 주려고 했을까요? 김 후보자 부인이 2013년 서울 소재 모 공고 영어 강사로 채용됐을 때 서울시교육감은 보수 성향인 문용린 교육감이었고, 김 후보자 아들이 2011년 군대를 가서 2012년에 제대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 시기였습니다.
물론 김 후보자가 학자이면서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쌓은 만큼, 고위직에 있는 인사들과 개인적 친분을 맺고 이를 내세워 어떤 특혜를 받았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히 검증돼야 할 일이지만, 상식적으로는 그럴 개연성은 상당히 낮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맥락에서, 김 후보자에게 야당과 언론의 공격이 집중되는 양상은 다소 의문을 자아내는, 부자연스러운 광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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