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사드 4기 추가 반입은 언론에서도 보도돼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이제 와서 호들갑 떠는 것은 외교 안보 무능으로 국회 차원에서도 철저히 진상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31일 자 <조선일보>의 논조와 사실상 판박이다.
두 가지 문제다. 사드 배치 보고 누락 공개는 '국면 전환용', 즉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된 발표라는 의혹 제기가 하나고, 사드 추가 4기 반입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라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사드 보고 누락은 '국면 전환'에 좋은 이슈이긴 하다. 그런 의도도 없지 않다고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국면 전환용'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중대한 문제다. 문 대통령이 이 사실을 선제적으로 밝히고 진상 조사를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드 보고 누락 사건은 누군가 징계를 받게 될 경우 언젠가는 분명 드러날 일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진상 조사를 비공개로 진행한다고 해서 해당 문제가 덮어지는 것도 아니고, 덜 중요해지는 것도 아니다. 앞선 박근혜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은 민감한 사건은 그것이 징계를 전제한 것이든, 업무 추진을 위한 것이든 철저히 비공개로, 비공식적으로 진행해 왔다. 그런 가운데 어떤 사건은 덮어졌고, 어떤 사건은 적극적으로 여론몰이에 활용됐다.
촛불 정국을 거친 후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 것은 '투명성'이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도 '대통령의 24시간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정책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 때문에 국정 농단 사태가 생기고, 세월호 구조 참사 사태가 생겼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은 합리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 야당 입장에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 더 지적할 부분이 있다. 박 위원장이 '언론 보도'를 운운한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자 '사드 4基 추가반입, 다 알려진 사실인데… 왜 '충격'일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전에는 (문 대통령이) 몰랐다는 취지다. 하지만 비공개로 도입된 4기도 방송에 운반 장면이 잡힐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특정 언론도 아니고 거의 모든 언론에서 '한 주한 미군 기지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됐다. 다만 한·미 군 당국은 보안상 이유로 공식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보안상 이유로 공식 발표를 하지 않은 일이라면서 청와대가 문제 삼자, 이제 와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실'이라고 대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어딘가 많이 어색하다. 보안상 이유라면, 언론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허술한 운반 작전을 수행한 국방부의 문제점이 지적돼야 할 것 아닌가?
방송에 사드 발사대 운반 장면이 잡힌 것은 지난 4월 25일 밤이었다. 정확하게는 '사드 발사대로 추정되는 물체'가 운반되는 장면이 찍힌 YTN의 특종 보도다. 또 되물어 볼 수 있다. YTN 카메라에 '사드 발사대로 추정되는 물체' 운반 장면이 잡히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 했나?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사안을 파악해야 한다면 국방부는 왜 존재해야 하나?
<조선일보>에 따르면 국방부 측은 "이미 지난 3월 발사대 2기가 반입된 데 이어 4기가 반입된 건 당연한 절차"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국방부가 '당연하게' 절차를 '자체 판단'으로 진행한다고 하면, 군 통수권자는 왜 있고, 선거는 왜 하는 것일까?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하려면, 왜 국방부는 사드 4기 운반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는데도 그동안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주지 않았었는지 여부를 물어야 맞다. 언론에 보도가 나왔는데도 왜 국방부는 '아라비아 숫자 4'도 보고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물어야 맞다. 국방부가 사드 4기를 들여온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은 데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보안상 문제'라면 왜 언론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허술하게 운반했는지 따져야 한다.
청와대는 이날 보고 누락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명기돼 있었으나 수차례 감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최종적으로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국방부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캠프명, 4기 추가 반입' 등 문구 모두가 삭제됐고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반입됐다는 취지로만 기재됐다"는 것이다.
몇 가지 유추해 볼 만한 것들이 있다. 현재 성주골프장 부지 중 국방부가 확보한 면적은 총 148만 제곱미터(㎡)이다. 아직까지는 이 중 30만 제곱미터(㎡)만 주한미군에 공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33만 제곱미터 이하는 간이환경평가 대상이 된다. 환경평가 절차를 줄이기 위해 공여 부지를 줄여 2기를 먼저 배치하고 4기를 추후 배치하기 위해 보관해 놓은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포함해 진상 조사를 지시한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문제는 동북아 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모두가 환영하는 일이라면 고민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걸려 있다. 한미 관계, 한일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도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 수립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모든 사안을 감안해 정책 판단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심각한 군기 문란, 나아가 국기 문란이다.
또 사드 문제는 성주 주민들의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직결된 문제다. 환경영향평가라는 최소한의 장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만약 국방부가 사드 조기 배치를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라면 헌정 유린이 된다. 이번 기회에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추진 배경에 대해 청와대는 낱낱이 파악해 놓아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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