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새로운 주역들
10년 동안 중남미 대륙에서 눈에 띄지 않던 사회 계층들이 가시화됐다. 대륙 곳곳에서 시장만능주의의 피해 대중이 정치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농촌의 최하층인 원주민과 도시의 최하층인 도시빈민이 변화의 주인공이 됐다. 멕시코,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원주민 계층이 다수를 이루는 국가들에서 원주민 운동은 정치적 힘을 배가해왔고,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의 나라에서는 빈민운동이 정치적 힘을 축적해왔다.
▲ 사빠띠스따 원주민 마을의 지도자들, 이들은 대안세계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박정훈 |
마야 원주민 게릴라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대안세계화운동의 국제적 상징이 됐고, 볼리비아에선 원주민 대통령이 취임했으며, 베네수엘라에선 1989년의 빈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빈민대통령'이 집권했다.
세계 최악의 불평등 국가 브라질에선 사상 최초로 빈민 가정에서 태어난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선출됐다. 또한, 수년 전까지 이혼조차 불가능했던 마초의 나라 칠레에선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도시빈민, 원주민, 노동자, 여성 등 20년 신자유주의 시대의 최대 피해 계층들은 강력한 사회운동의 주체로 성장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집권 이후에는 정부가 진보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협력과 압박이라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여 생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왔다.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
또한 지난 1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좌파들은 시장만능주의가 추락시킨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왔다. 브라질의 참여예산제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국민소환투표 등은 광범위한 실망(desencanto)을 낳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중남미 좌파의 노력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라틴아메리카 시민 열 명 가운데 다섯 명 이상은 생활수준이 개선된다면 독재정권을 지지하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민주화에 대한 실망과 정치에 대한 혐오가 심각했다.
▲ 칠레 시민86%가 사회주의자 마첼렛 대통령이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칠레인들은 대통령과 사랑에 빠졌다"ⓒ박정훈 |
하지만 지금 중남미 시민들은 자국의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피해를 받은 대중들이 정치 혐오에서 벗어나 정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에서 벗어나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현재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80%가 넘는 지지율의 고공행진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칠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렛도 70%가 넘는 국정수행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6년 연속 호황
좌파 정부들의 경제 성적도 좋았다. 신자유주의 시대 사실상 성장이 멎었던 중남미 경제가 40년만의 6년 연속 호황기(2003~2008)를 맞았다. 좌파 정부들이 집권했을 때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경기 불황과 사회 해체 등의 위기를 겪고 있었고, 급증한 외채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들은 세계화된 시장의 '발작'을 달래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인식했고, 거시경제안정 처방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들(가령 긴축재정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경기를 침체시켜 실업자를 증가시킨다)을 상쇄시킬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브라질 정부는 소위 '생산자본과의 연합'을 통해 수출을 증대시키고 내수를 진작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지되었던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꾸준히 확대돼 금융기관(브라질), 복지(아르헨티나 연금), 전략산업(베네수엘라)의 국유화 길이 열렸다.
서민복지 향상
뿐만 아니라 좌파 정부들은 심각한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빈민복지정책을 구사하였다.
집권 초기에는 빈약한 국가재정 현실을 고려해 적극적인 제도 개혁 정책으로 재원을 마련해 빈민복지에 투여했다. 베네수엘라에선 유가가 10달러~20달러 선에 불과하던 시절에 국영석유회사의 개혁을 통해 국가재정을 높였고, 브라질에선 공무원 연금제도개혁을 통해 복지재원을 확충했다.
6년 동안 경제가 연속 호황을 맞았을 때는 최하층 서민들이 일자리를 얻고 소득을 늘리도록 지원한 것은 물론이고 빈민층을 위해 의료, 교육 등 복지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베네수엘라에선 '미션'이라고 불리는 빈민복지사업들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브라질에서는 생활지원금을 의료와 교육서비스와 연계시킨 패키지 빈민복지사업을 펼쳐왔다.
▲ 울긋불긋 활력 넘치는 베네수엘라 빈민가 풍경의 미니어처 ⓒ박정훈 |
2008년의 세계경제위기로 경기가 다시 위축되자 빈민의 고용, 소득,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호황으로 재정능력을 확보한 국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 결과 지구상 최악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이 대륙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빈민의 수가 하락하고 중산층의 수가 증가했다.
미국의 고립, 중남미의 통합
지난 10년 동안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패권적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과거 이 대륙은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렸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땅을 뺏거나 병합시켰고(멕시코, 푸에르토 리코), 정권을 무너뜨리고 세우기도 했으며(칠레,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아예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도 했다(파나마).
하지만 2002년 '반미대통령' 차베스에 맞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던 미국은 국제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200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이었던 멕시코와 칠레는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침공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2005년에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로 창설된 미주국가기구 사무총장 선거에서 친미 후보가 패배하고 칠레의 인민연합 정부에 협력했던 호세 미겔 인술사가 당선되는 미증유의 사건까지 발생했다.
현재 중남미에서 미국의 '혈맹'이라 부를 수 있는 국가는 콜롬비아뿐이다. 친미우파 대통령 우리베가 이끄는 콜롬비아가 게릴라 진압을 명분으로 에콰도르 국경을 침입하고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자극했을 때 나머지 중남미 국가들은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의 편에 서서 미국과 콜롬비아 연합군의 행위를 비난했다.
▲ 멕시코 시티에서 개최된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박정훈 |
한편, 중남미 대륙 전체에서 지역 통합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중남미 국가들은 2005년 제4차 미주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하던 미주자유무역지대 출범을 좌절시켰고, 2008년에는 그간 고립되었던 쿠바가 중남미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데 힘을 모았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와 동맹을 맺고 니카라과, 에콰도르, 최근 쿠데타가 발생한 온두라스 등의 국가들을 참가시켜 라틴아메리카 통합 운동 내에서 좌파 블록을 형성했다.
반면 브라질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남미 12개국 전체가 참가하는 남미국가연합을 출범시키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10년에는 남미는 물론이고 중미와 카리브해 국가들 전체가 참여하는 라틴아메리카 지역 최초의 독자적인 국제기구를 창설해 지역블록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리더국가의 등장
마지막으로 초강대국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체제가 다극 세계체제로 이행해가는 시점에서 브라질이 새로운 리더국가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는 미국에 맞서 중남미 국가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북반구 부국들에 맞서 남반구 빈국의 권익을 방어할 국가로서 브라질이 성장하고 있다.
주요국 정상회의(G20) 자리에서 브라질 정부는 세계경제위기의 선진국 책임론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세계경제기구들이 신자유주의 도그마에서 벗어나고, 빈국과 개도국의 견해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로 개혁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브릭스 정상회의 자리에서 브라질은 신흥경제국들이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질서 재편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지난 10년간 중남미에서는 사회 변화의 새로운 주역들이 등장했다. 이들을 대변하는 진보 정부들이 집권하면서 이 대륙은 더욱 민주적으로 변했다. 경제가 다시 성장을 시작했고, 사회의 최하층 서민들의 삶도 현저히 개선됐다.
또한, 이제 중남미는 더 이상 미국의 뒤뜰이 아니다. 중남미 국가들의 통합운동으로 이 대륙에 제2의 독립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바로 통합하는 중남미를 대표하고, 남반구 빈국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부상하고 있다.
중남미 대륙의 좌회전이 한국 진보진영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네 가지로 요약해보자.
1. 한국의 실정에 맞는 정치 노선은 무엇일까?
브라질 노동자당의 당수를 지낸 바 있는 따르수 젠루(Tarso Genro)는 올 초에 한 외신기자로부터 중남미 좌파의 두 가지 경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두 가지 경향 사이에) 그 어떤 적대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그것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두 나라의 정치와 사회가 다른 데서 기인 한다."
현실주의 좌파와 급진주의 좌파라는 두 가지 노선도 실은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와 사회의 명백한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브라질은 1980년대의 민주화 시대를 거쳐 90년대에는 민주주의의 정착기를 보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노동자계층, 중산층, 빈민층 등의 다양한 견해가 반영된 민주정당들이 등장했다. 1980년에 조직된 노동자당(PT)은 22년간 강력한 좌파 대중정당으로 성장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1958년부터 1998년 차베스가 당선될 때까지 40년간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해왔다. 1992년 차베스가 주도한 군사반란 이전에는 중남미에서 아주 드물게 쿠데타가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은 정치가 안정된 국가였다.
하지만 40년간의 민주체제는 상류층과 중산층을 위한 특권체제로서 다수 빈민들을 정치에서도 배제시키고, 복지제도에서도 배제시켰다. 이 나라 중·상류층은 미제 공산품을 애용하고 마이애미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로서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미국적인 문화에 젖어 있는 계층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사회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은 석유 수익의 공정한 분배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는 양국 좌파 정치의 방향을 규정지었다. 룰라 정부는 노동자와 빈민계층에 뿌리내린 좌파 정당인 노동자당을 구심으로 정치적 중도파(사회경제적 중산층)와의 연합으로 선거에서 승리했고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 야당들과의 연합을 통해 국정의 안정을 도모해왔다.
반면, 차베스 정부는 인구의 과반수에 이르는 빈민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집권한 뒤 강력한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사회개혁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40년의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상류층과 중산층의 압도적 반대에 직면하게 됐다.
집권 초기에 주도한 개혁 내용을 살펴보자. 룰라 정부는 90년대 민주주의 발전을 토대로 서민복지와 경제성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 대립 보다는 실질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춘 정치를 펼쳤다.
반면, 차베스 정부는 40년의 정치제도 자체를 혁파하기 위해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국민투표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정치개혁정책에 주로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화된 구 기득권층은 사회개혁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차베스 대통령에 맞서 쿠데타, 사보타주, 국민소환투표 등으로 반격을 펼쳐왔다.
한국은 브라질과도 다르고 베네수엘라와도 다르다. 우리 현실에 적합한 개혁 노선은 무엇일까?
2. 한국에서 시장만능주의의 피해대중은 누구일까?
한 베네수엘라 빈민운동가는 1989년에 카라카스 수도권에서 빈민항쟁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대학생으로 참가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베네수엘라 좌파 운동가들 다수가 '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체'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맞서 싸운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도시빈민들이었다. 특정 정당 혹은 정치세력의 리더십에 따른 것도 아니라 빈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민란이었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파견해 유혈진압했다. 그 뒤 수많은 운동가들이 빈민지역에 뛰어들어 빈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중남미 진보 진영은 시장만능주의의 피해대중을 조직했다. 1990년대 멕시코에서 민주화운동과 대안 세계화 운동을 주도한 것은 멕시코 사회 최하층이었던 마야족 원주민들로 구성된 게릴라들이었다.
2002년 4월 쿠데타로 쫓겨난 차베스 대통령을 권좌로 복귀시킨 것은 카라카스 서부 지역에 밀집해 있는 도시빈민들이었고, 룰라를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더욱 가난해진 노동자들과 빈민들이었다.
중남미 좌파 정당들은 시장만능주의 시대에 최대 피해 계층에 뿌리를 내리고 이들을 대중적 기반으로 삼아 강력한 야당으로 성장해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시장만능주의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누구일까?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 영세 자영업자, 지방 거주민, 농민, 중소기업 경영자들이다. 현재 이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선 정당들은 있지만, 이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진보정당은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3. 한국 좌파는 중도파와 어떻게 연합할 것인가?
중남미에서 신자유주의 정치는 우파가 주도하는 '우파-중도파 연합'으로 추진되었다. 중남미 좌파들은 이를 좌파가 주도하는 '좌파-중도파 연합'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좌파 단독 집권을 고집해오던 브라질 노동자당(PT)은 2000년 당 대회를 전후하여 현실주의 전략을 택하게 되었다. 중도파의 지지 없이 집권은커녕 안정적인 국정운영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우파 자유당과 연합해 승리한 룰라 대통령은 집권 후에는 우파와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의회에서도 극우파를 제외한 12개 정당들과 연합했다.
칠레의 사회당 정부는 가장 먼저 중남미 연합 정치의 모델을 제시해주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피노체트 독재 세력에 맞서 민주세력의 단결을 통해 정권 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 '기독교 민주당(중도 우파)과 사회당(중도 좌파) 중심의 정당 연합'은 무려 20년 가까이 칠레를 통치해왔다.
전반부 10년은 기독교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들이 배출됐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두 명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취임했다.
2006년에 집권한 사회당의 미첼 바첼렛 여성대통령은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에 더욱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구사해 미국의 오마바 대통령으로부터 칠레를 배워야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계최대 구리 생산국 칠레는 구리 호황기 때 세출 유지를 통해 경기를 안정시키고 불황기가 시작되자 세출을 더욱 확대해 사회정책에 투자해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2006년 멕시코 대선에서 좌파 후보가 석패한 것은 정치적 중도파(사회경제적 중산층)의 굳건한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베네수엘라에서 격렬한 정치적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차베스의 급진주의 노선과 대결적 리더십으로 자극을 받은 중산층이 급격하게 우경화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이 우파-중도파의 연합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중도파(중산층)는 상류층과 경쟁주의, 업적주의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심화와 자유의 보장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 좌파도 중도파(중산층)를 서민의 친구로 만들 수 있을까?
4. 한국 좌파의 국제 전략은 무엇일까?
중남미 좌파 정부들은 지정학적 위치, 세계정세의 변화 등을 고려한 다양한 국제 전략을 구사해왔다.
특히 브라질 룰라 정부의 외교 행보가 가장 인상적이다. 브라질 정부는 세 가지 방향에서 국제 전략을 추진해왔다.
첫째는 라틴아메리카 지역 블록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공산주의 쿠바에서 현재 미국의 유일한 혈맹이라고 할 수 있는 콜롬비아까지 중남미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참가하는 지역블록을 건설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협력 분야도 통상에서 정치, 사회, 문화, 에너지, 환경 등 전 분야로 확대해왔다.
둘째는 초강대국 미국, 그리고 북반구 부국에 대하여 라틴아메리카 개도국(빈국), 남반구 개도국(빈국)의 리더로서 성장해가는 전략이다. 세계무역기구 회의, 주요국 정상회의(G20)에서 룰라는 늘 개도국 공동전선을 구성하고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미국과 부국을 압박해왔다.
또한 개발도상국 리더들의 모임인 브릭스 정상회의에 적극 참가해왔다. 이 회의에서 룰라는 세계금융기구들의 개혁, 달러체제의 개편, 국제연합의 개혁 등 다양한 의제들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진보 진영의 국제 전략은 무엇일까?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 지난 10년의 민주정부가 추진해온 것보다 더욱 진전된 대안이 있을까? 동아시아 지역 협력 수준을 통상 협력에서 더욱 확대해나갈 방안은 있을까? 가령 동북아 3국의 지역 현안인 황사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북아시아 환경정상회의를 개최할 수는 있을까?
국제금융질서에 대한 초국가적 규제를 요구하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세계통화질서가 달러중심체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 진보진영의 대안은 무엇일까?
세계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들이 신자유주의 도그마에서 벗어나게 하고 개도국(빈국)의 목소리가 더욱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은 어떤 입장을 제시할 수 있을까?
<추신>
윗글까지 포함해 지난 4월부터 [대결, 차베스와 룰라] 연재 코너에 총 14개의 글을 게재했다.
혁명 50년을 맞은 쿠바 공산주의, 봉기 15주년을 맞은 멕시코의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집권 10년을 맞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 집권 7년을 맞은 브라질의 룰라 정부 등이 걸어온 궤적을 살피면서 성취와 한계를 분석했다. 최근에 발생한 중남미 좌회전 현상의 맥락에서 중남미 좌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기 위해 두 개의 게릴라 좌파와 두 개의 집권 좌파를 분석했다.
2002년 브라질 대선을 취재하기 위해 상파울루를 방문했을 때였다. 백발의 한 캐나다 특파원은 자기 인생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특파원이라며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자기는 현장을 취재하는 중국인 기자와 일본인 기자는 보았지만, 한국인 기자는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 캐나다 특파원의 반가움이 필자에게 큰 기쁨이 아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논쟁 자체가 불가능한 단 한 가지의 시각은 집필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불행이다. 이 글도 바로 그 불행의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라틴아메리카 식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Que tengan mucha suerte!
여러분들께 행운이 함께 하기를
¡Un abrazote solidario!
연대의 포용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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