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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의 유령'을 아시나요?

[작은책] MB가 민간위탁한 방과후학교 현주소

방과후학교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99.9%가 운영하는 정규 수업 외의 교육 활동이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특기·적성 교육을 보강해 계층·지역 간 교육 격차를 줄이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보습하기 위해 2006년부터 전면 실시됐다. 영어 과목의 경우 학원은 최소 월 15만 원이지만, 방과후학교는 월 4~5만 원 선이다. 학원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어 학생 참여율이 70%가 넘는다. 방과후학교 강사만도 전국에 약 13만 명이다.

한채민 씨는 창원 시내 초등학교에서 1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전에는 입시학원 강사로 일했다.

"강사 모집 공고를 보니 근무시간이 오후 1시에서 오후 5시더라고요. 아이 돌보면서 일하기 적당하겠다 싶어서 지원했죠."

최연희 씨는 초등학교에서 독서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교사는 정년이 보장되지만 강사는 길어 봐야 마흔다섯 살까지예요. 40대가 되면 연락 오는 곳이 확 줄어들죠. 경력 많은 것도 장점인데 나이 많으면 소용없더라고요."

▲ 방과후학교 모습. ⓒ작은책

고용 계약 형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학교와 강사가 직접 계약하는 개인 위탁, 또 하나는 민간 위탁업체(업체)와 계약하는 방법이다. 민간 위탁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학교자율화추진계획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개인 위탁도 잘 살펴봐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처음 강사를 시작했을 때 겪은 일이다.

"처음에 학교를 연결해 주는 업체를 통해 들어갔어요. 그러면 학교는 저와 계약서를 씁니다. 그리고 저는 업체와 또 계약하고 제 통장을 업체에 넘겨줘요. 그럼 학교에서 제 월급을 업체가 관리하는 통장에 입금하고요. 거기서 수수료를 뺀 금액이 저의 또 다른 통장으로 입금됩니다. 그게 실제로 제가 받는 월급이에요."

학부모가 부담하는 수강료가 강사의 월급이다. 강사와 업체와의 분배 비율은 보통 5대 5 또는 6대 4. 한 씨의 경우 강사와 업체의 분배 비율이 6대 4로, 한 달 수강료가 300만 원이라면 업체에서 떼어 가는 금액만 120만 원이었다. '교육 콘텐츠 사용' 명목으로 말이다. 사실상 업체는 중개인 역할만 하는 인력송출업체다. 그런데 인력송출업체를 통한 계약은 금지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교육 콘텐츠 개발 업체'로 포장하고 교재를 만든다. 한 씨의 경우 콘텐츠와 교재 사용료로 1년에 1400만 원을 지불하는 건데, 업체는 그만큼 훌륭한 교재를 제공하고 있을까?

"업체 교재는 너무 질이 낮아서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교사가 직접 교재를 개발하거나 따로 프린트물을 주고 수업을 합니다. 어떤 영어 교재를 쓰는지 보면 어느 업체인지 다 알죠. '아 저 학교는 저 교재 쓰네?업체네.'"

업체의 횡포는 이뿐만이 아니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강사들의 불안한 처지를 이용해 계약서에 출강 중인 학교와 중도 계약 해지될 때는 월급의 10배가 넘는 위약금을 물게 하고, 계약이 파기될 경우에는 훈련수당 200만 원 환불 등 각종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조항에 서명하게 했다. 근로기준법상 금지된 행위지만 강사들은 이것이 불법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업체가 이렇게 횡포를 부릴 수 있던 배경에는 학교 교장과의 인맥과 로비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창원 M초등학교 교장이 Y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모두 1000여만 원을 받아 경찰에 적발된 사건이 2012년에 있었다. 한 씨가 Y업체 소속이었을 때 일이었다.

"Y업체 대표의 아버지가 학교 교장이었어요. 그 인맥으로 경남도 내 100여 개 학교에 강사 알선하고 교재를 납품하고 있었죠.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업체가 다달이 교장들 계좌로 송금하고 스승의 날과 명절에도 돈을 보냈어요. 내년에도 잘 봐 달란 식이었죠."

교장이 직접 한 씨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 적도 있다.

"수수료를 다달이 자신에게 주면 1년 뒤 교장 퇴직하고 저를 개인 강사로 전환시켜 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거절했고요. 그리고 다른 강사가 들어오고 저는 재계약이 안 됐죠."

퇴임 후 일부 교장들은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를 차리거나 업체의 고문, 교육위원 직함으로 취업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퇴임 교장들이 현직 교장과 교감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전관들의 도움이 없이는 승진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업체와 학교의 유착 관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 씨는 Y업체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사가 개인 계약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Y업체가 뇌물 제공 혐의로 떠들썩할 때 한 씨는 이때다 싶어 방과후학교 담당 교사에게 Y업체의 교재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인 계약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고 학교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 씨는 개인 강사가 됐지만 업체의 불공정 계약, 비리 등 문제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자 도교육청은 2015년부터 비영리업체를 통해 계약하도록 학교에 권고했다. 하지만 기존 업체들이 일제히 사회적기업으로 간판만 바꾸고 그대로 활동하고 있어 무용지물이 됐다.

▲ 방과후교육 강사들이 교육부 앞에서 요구사항이 적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방과후강사지부

해마다 방과후학교를 위탁 업체에 맡기는 학교는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1년 2386개에서 지난해 3406개로 5년 사이에 42% 증가했다. 위탁업체 전환이 늘면서 기존 개인 강사들의 계약이 위협받는 일이 생겼다. 업체들은 개인 강사들에게 업체 소속 근로자로 들어올 것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계약 갱신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업체 소속 강사가 되면 고용 불안과 임금 등 처우가 더 나빠진다. 바로 최저가입찰제 때문이다. 교육청은 최저가입찰제를 도입하면서 업체의 과다한 수수료 떼기를 방지하기 위해 수강료의 80%를 강사 인건비로 보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체는 여기서 또 두 가지 꼼수를 부린다.

"입찰할 때 강사 인건비 20%를 먼저 빼놓고 입찰을 들어가요. 그리고 최저가로 낙찰이 되면 그 금액에서 다시 20%를 더 떼는 거예요. 그리고 4대 보험을 가입시켜주는데, 전액 강사 부담이에요. 여기에 다시 3~10%를 학교에 수용비(교실 사용료, 전기, 복사기 사용 등)로 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이 없어요."

강사는 강사대로 열악해지고 수업의 질은 떨어지며 업체와 학교 간 비리가 끊이지 않는 데도 학교는 왜 방과후학교를 민간 위탁하려고 하는 것일까? 방과후학교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할 전담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체에 맡긴다고 해서 강사 지원이 된다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다. 최 씨가 말한다.

"출석부도 강사가 체크하죠, 발달 상황도 학생마다 체크해서 지도계획안 쓰고요. 교재 개발도 자체적으로 하고요. 업체는 우리보고 '수강생 관리한 보고서 내시오, 주 몇 회 문자했는지 문자 확인서 내시오' 하는 거밖에 없어요."

일부 의식 있는 교장들은 개인 강사들과만 계약을 하고 학부모 참여를 높여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나 업체는 복장이던 언행이던 교사와 똑같이 하라고 요구해요. 하지만 막상 복사기 하나 사용하려고 교무실 문 열고 들어가는 건 굉장히 눈치 보이죠."

내년에도 계약을 맺으려면 교장과 교직원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전용 교실도 없어 나머지 업무를 하는 교사와 교실을 같이 써 본의 아니게 공개수업(?)을 하게 된다. 교실 사용료가 포함된 수용비를 내고도 말이다. 한 씨는 교무실에서 교재를 복사하다 황당한 일도 겪었다.

"교감 선생님이 '여기는 선생님 같은 사람이 복사하라고 복사기 있는 거 아니에요. 앞으로 복사하지 마세요' 했어요. 사용료도 내는 데 말이죠."

억울하고 화나는 일들은 더 있다.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나고 뒷정리를 다 하고 나왔는데, 실무사에게 전화가 왔어요. 의자 하나 안 집어넣었다고 다시 집어넣고 가라고. 저를 잡상인 취급하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그 사건이 최 씨에게는 방과후학교강사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한 씨 역시 복사기 사건이 그랬다. 업체의 횡포와 학교의 차별적인 시선에 점차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이 인터넷 카페에 모여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부조리를 바로 잡고 강사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느낀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모여 2014년 '전국방과후학교강사연합회'를 조직한다. 그리고 2016년 12월 연합회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를 결성해 노동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했다. 노조는 '방과후학교 운영 및 지원에 관한 법안' 제정을 요구하며 교육청 면담, 토론회, 간담회, 1인 시위 등을 해 오고 있다. 노조에서 요구하는 법안의 주요 내용은 민간 위탁 폐지, 전담 실무사 채용, 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 등 노동조건 개선, 공공성 보장 등이다. 방과후학교를 공교육으로 흡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최 씨는 이렇게 말한다.

"방과후학교는 정규 교육에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도입한 거예요. 엄연히 공교육 영역인데 사교육 시장이 들어오는 것은 취지에 어긋나죠. 우리 월급을 주는 사람이 학부모들이라는 이유로 저희를 애들 상대로 돈 벌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위치가 한정되고 축소되어 있죠. 그래서 우리끼리 말해요. 우리는 '학교 안의 유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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