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유무를 둘러싼 공방도 여전히 이어진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선고를 하루 앞두고 압수수색을 벌여 논란을 빚은 소위 '신건' 수사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도 주목의 대상이다.
그러나 법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은 정치적 여파나 한 개인의 유, 무죄를 떠나서 여러 가지 간단치 않은 쟁점을 안고 있다. 전직 총리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건의 중요성과 피고인의 신분, 그리고 때마침 다가온 선거로 인해서 이 사건의 재판은 철저히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리고 피고인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도 최대한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현상들을 통해서 우리 형사절차의 현 실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모든 쟁점을 한편의 기고에서 전부 다룰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쟁점들을 짚어본다.
1. 수사과정은 전부 기록 되는가
▲ 지난 달 31일 마지막 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한명숙 전 총리 일행ⓒ연합뉴스 |
판결문에 의하면 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뇌물액수와 관련해서 적어도 다섯 번에 걸쳐 진술을 바꾼다.
그는 먼저 구속되기 전 수사검사로부터 미국에 송금한 10만 달러의 행방을 추궁 당하자 한 전 총리에게 10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을 한다(첫 번째 진술).
그 후 부장검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검사가) 무서워서 10만불 주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돈을 준 일이 없다고 부인한다(두 번째 진술).
그러다가 2009년 11월 6일 검찰에 구속이 되자 이번에는 한 전 총리에게 3만 달러를 준 사실이 있다는 진술을 한다(세 번째 진술).
그러나 그 며칠 후인 2009년 11월 19일 그는 검사에게 "구속되기 전에 변호사들로부터 다른 범죄 행위에 대해 제보를 하면 아무래도 검찰이 저에게 선처를 해주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들을 하게 되었고, 사실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라고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말한다(네 번째 진술).
닷새 후인 2009년 11월 24일 곽 전 사장은 다시 태도를 돌변해서, 이번에는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준 것이 사실이라고 말을 한다(다섯 번째 진술). 검찰은 이 중 마지막인 다섯 번째 진술을 토대로 한 전 총리를 기소한 것이다.
그런데 수사기록에는 위와 같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진술 중 마지막 두 개의 진술만 기록이 되어 있다. 재판부나 변호인들이 이러한 진술 변경 과정을 알게 된 것은 법정에서 곽 사장이 증언을 하면서 밝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솝의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조사를 받으면서 날마다 진술을 바꾼 사람의 말을, 그 과정은 떼어놓고 결과만을 보여주면서 믿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과거 강압적인 수사가 문제되던 시절에는 진술의 신빙성 문제는 주로 임의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달려있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은 곽 전 사장이 아무런 강요 없이 스스로 자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술 과정을 녹화한 영상 녹화물을 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의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곽 전 사장의 말이 반드시 신뢰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반드시 강압에 의해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곽 전 사장이 최초에 한 전 총리에게 10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한 진술이나, 3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 진술은 거짓말이다. 설마 검찰에서 곽 전 사장이 검사의 강요에 못 이겨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곽 전 사장은 강요를 당하지 않더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최종적으로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 진술이 임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거짓말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수사의 전 과정은 기록되어야 하고, 적어도 재판 단계에서는 피고인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용산 참사 재판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검찰은 '검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증거로 사용하려는 자료'만 법정에 제출하겠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 사건에서도 검찰은 곽 전 사장의 진술 일부를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판부가 곽 전 사장의 진술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제출을 요구한 증권거래법 위반 사건 내사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이 결국 재판부로 하여금 곽 전 사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수사 과정의 기록 문제와 피고인의 접근권은 이 사건 이후에도 반드시 다시 검토해보아야 한다.
2. 야간수사의 문제
곽 전 사장은 2009년 11월 16일 월요일부터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까지 9일 동안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조사를 받았다(그 전후에도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지만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이 이 기간이다).
월요일인 11월 16일에는 아침 9시에 검찰청에 나와서 조사를 받고 새벽 1시45분에 구치소로 돌아갔다. 다음날인 11월 17일에도 아침 9시에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다가 밤 12시10분에 구치소에 갔다. 수요일인 11월 18일에는 오후 1시에 소환되어 저녁 7시10분에 구치소로 갔지만 목요일인 11월 19일에는 다시 아침 9시에 불려 나와서 새벽 3시10분이 되어서야 구치소로 돌아갔다. 이날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진술을 한다.
금요일에는 오후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토, 일요일을 쉰 뒤, 월요일인 11월 23일에는 오후 1시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다가 밤 12시35분에 구치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1월 24일 곽 전 사정은 마침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진술을 하게 된다. 그 다음 날과 다음 날도 곽 전 사장은 밤 10시, 밤 11시30분이 되어서야 구치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02년 서울지검 피의자사망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무부는 인권보호수사준칙을 만들어서 심야조사를 금지했다. 당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퇴근 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 사건 관계자들을 조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일선 청에서는 부장검사들이 야간 조사가 없도록 감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며칠씩 쉬지 않고, 아침부터 심야에 이르기까지 조사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인권보호수사준칙에도 예외 규정이 있다. "조사받는 사람이나 그 변호인의 동의가 있거나, 공소시효의 완성이 임박하거나, 체포기간 내에 구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신속한 조사의 필요성이 있는 등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인권보호관의 허가를 받아 자정 이후에도 조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사건의 경우 한 전 총리의 뇌물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의 완성이 임박한 것도 아니고 곽 전 사장은 이미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심야조사를 한 근거는 조사받는 사람인 곽 전 사장의 동의 밖에 없다. 물론 검사가 곽 전 사장이 거부하는데도 강제로 심야조사를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동의를 받아서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구속이 되어서 검사의 수사를 받는 입장에서 밤에 조사 좀 하자는데 누가 거부를 할 수 있겠는가.
인권보호수사준칙에 위반하지는 않았다거나 혹은 피의자의 동의가 있었다는 이유를 들기에는 위에서 본 조사 시간은 그 자체로 우리의 수사 현실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한 전 총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자 검찰은 "17세기 영국에서 진술거부권은 힘없고 박해받는 종교적 소수자의 보호를 위해 출발했는데 21세기 우리나라에서 사회지도층의 진술거부권 행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 "적어도 공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지도층은 진실을 주장한다면 당당히 검사신문에 응하는 것이 정도"라고 강조했다.
같은 말을 검찰에도 해주고 싶다. 과거 심야에 조사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21세기의 검찰이라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왜 아직까지도 진술의 임의성이 문제가 되고 공개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님이 너희들 전주고 나온 놈들 대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정치인 대라고 그랬고… 대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버렸잖아요."라고 하는데 대해서 검사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 하는 것일까.
1심 재판부는 '이와 같은 중요한 수사과정'에 관하여 검사가 아무런 기록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질책하면서, 그 상태에서 곽 전 사장이 뇌물공여 사실을 자백한 부분만을 녹음·녹화한 영상녹화물을 틀어본다고 하더라도 그 자백진술의 임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하고 있다. 설사 검사가 어떠한 반박 자료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심야조사의 필요성이 없는 상태에서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조사 시간을 놓고 볼 때 곽 전 사장의 진술의 임의성에 대해서 시비가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3. 피고인의 진술거부권과 검사의 신문권
한 전 총리는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사의 신문에 진술을 거부했고, 법정에서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서 검찰은 설사 피고인이 진술을 거부하더라도 검사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대검찰청이 성명을 발표해서 "진술거부는 피고인의 방어를 위한 것이지 검사의 입을 막을 권리가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피고인에게 질문을 못 하게 한다고 해서 '검사의 입을 막는' 것은 아니다. 검사가 입을 열고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재판 첫 머리의 모두진술과 마지막 단계에서의 의견진술(구형)에서 이루어진다.
이 기회를 통해서 검사는 범행의 입증, 죄질의 경중 등에 관하여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통해서 검사가 어떠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재판진행에 익숙하지 못한 검찰이 '신문'의 성격에 대해서 오해한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피고인에 대한 신문이나 증인에 대한 신문에서 수집되는 증거는 피고인 혹은 증인의 답변 내용이지 그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 그 자체는 법관에게 어떠한 심증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검사나 변호인의 질문은 증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술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한 피고인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증언거부권이 있는 증인이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할 때 검사나 변호사가 증인신문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자신의 가족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을 때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싸움을 해서 폭행죄로 재판을 받는데 마침 아내가 현장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증언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증인이야 답변을 하건 말건 '검사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질문을 계속 하겠다고 하는 것은, 설사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법에 의해 진술거부권이 보장된 피고인이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답변을 하건 말건 수십 개의 질문을 하겠다는 것은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증인에게 어쨌든 질문을 퍼붓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문'의 성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법정에서 주신문과 반대신문을 통한 공방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검찰의 문제는 증인신문과정을 통해서도 여러 번 드러났다. 증인신문은 기본적으로 증인이 '경험한 사실'을 묻는 것이지 증인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다.
재판과정에서 검사는 "한 전 총리가 재직하는 동안 공무수행 목적으로 한 해외출국일이 100일이고 출장비 200달러를 받아서 쓰지 않고 모았다 해도 2만 달러에 불과하다."면서 "아들 1년 유학비용 10만 달러에 턱없이 모자라는 것 같은데"라는 질문을 증인에게 했다.
이 질문은 증인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증인이 '경험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내용은 그야말로 '검사의 입'을 통해서 나와야 하는 것으로서 재판을 마무리할 때 검사의 의견으로서 진술해야 하는 것이다.
수사검사야 '확신'했겠지만
이 글은 한 전 총리의 유, 무죄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모처럼 최대한 공판중심주의에 충실하게 이루어진 재판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드러났는지 짚어보자는 것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난 후 몇몇 신문에서는 취재기자들의 소회 형식으로 "평범한 피고인이라면 이렇게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공판중심주의에 충실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사건 재판이 과거에, 그리고 현재도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재판 현실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재판은 보다 이 사건 재판에 가까워질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번에 문제된 쟁점들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검토가 있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간에 적어도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한 전 총리를 기소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확신했다면 치밀한 수사와 흠 잡기 어려운 공판 수행을 통해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이 사건은 피고인의 신분이나 사안의 성격상 정치적 시비가 일어나기 쉬운 사건이다. 재판부에서 공판중심주의에 충실한 재판을 하고 집중심리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에서도 마찬가지의 예상을 해서 교과서적인 수사와 재판 관여를 했어야 한다. 위에서 본 수사과정의 기록 누락, 조사 시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피고인에 대한 장외에서의 비난 등을 생각해 볼 때 검찰이 과연 이 사건을 교과서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1심 판결 이후 검찰에서는 <한명숙 前 총리 사건 판결의 문제점>이라는 문건을 배포하면서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검찰이 정말 이 사건 1심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 남의 탓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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