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험 발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먼저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를 사실상 마치고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공식화한 상황이다.
4일 전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재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대화의 필요성도 강조하던 터였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 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온 힘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보유국'을 향한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둘째는 기술적 특성이다. 북한은 "이번 시험발사는 위력이 강한 대형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새형의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의 전술 기술적 제원과 기술적 특성들을 확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실시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곤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최대정점고도 2천111.5㎞까지 상승비행하여 거리 787㎞ 공해 상의 설정된 목표 수역을 정확히 타격하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형 로켓 엔진의 신뢰성은 물론이고 대기권 재진입 시 요구되는 최종 유도 특성과 핵탄두 폭발체계의 정확성을 확증하였다고 밝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한층 다가섰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
셋째는 ICBM과 관련해 북한이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번에 시험발사된 미사일을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로 명명했다.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2111km의 정정고도와 787km의 비행거리는 정상발사 시 5000km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즉, 북한이 ICBM의 최소 사거리인 5500km에는 아직 못 미치고 있거나 그 언저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 본토와 태평양작전지대가 우리의 타격권 안에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할 때까지 고도로 정밀화, 다종화된 핵무기들과 핵 타격수단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라고 명령했다.
이는 곧 북한식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있는 ICBM을 공식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문턱에는 도달했다는 점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에 '양자택일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즉, "제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든지" 아니면 '북한의 ICBM 보유를 비롯한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감수하던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시험발사는 협상의 전제 조건 및 협상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북미 간의 치열한 기 싸움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를 명확한 목표로 제시하면서 이러한 조건에 동의할 때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독자적인 제재와 유엔을 통한 제재뿐만 아니라 중국을 설득·압박해 중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도 크게 높여왔다. 핵 항공모함 칼빈슨과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근육 과시도 '최대의 압박'의 일환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명확해진 것 같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는 한 비핵화란 있을 수 없고, 중국의 제재와 압박에 대해서도 북중 관계의 악화를 무릅쓰고 자신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한-미-중의 대북정책은 중대한 시험대에 서게 됐다. 세 나라는 공히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그 목표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높다. 일종의 '제재와 압박을 통한 협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 것이 아닐까 한다. 우선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대북 제재와 압박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향상도 전례 없이 강화되어왔다.
더구나 이 사이에 북한의 경제 사정도 일정 부분 호전됐다. 이러한 북한식의 성과와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김정은 시대 들어 한층 강화된 북한의 결기가 결합되면, 한-미-중이 추구하는 '제재를 통한 협상'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협상의 성공은 고사하고 협상의 문조차 여는 데 실패할 공산이 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길은 '제재 모드'에서 '협상 모드'로의 전환이 아닐까 한다. 한-미-중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재를 강화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조건 없는 대화', '모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접근으로는 협상의 문을 열 수 없었다. 북한의 전략적 판단을 바꾸기 위해 강화해온 대북 제재 역시 "굴복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강화된 결기로 이어졌다. 전략 무기를 동원한 대북 무력시위는 "핵 억제력 증강으로 맞서겠다"는 북핵 고도화의 빌미로 작용했다.
이제 이러한 실패한 정책과 결별해야 할 때이다. 한미동맹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은 북한의 무모한 핵 공격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이러한 대북 억제력을 건실하게 유지하면서도 이제는 조건 없는 협상, 지금까지 없었던 협상다운 협상을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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