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러하다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에서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빈볼 항의를 할만도 하다. 그러나 그 항의의 내용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사법부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식이라면, 주도권을 둘러싼 기 싸움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국민은 그런 식의 주도권 싸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기왕 힘들게 칼을 뽑았으면, 핵심을 칠 일이다. 권력에 예속된 법원은 최소한의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고, 예속된 법원에 의한 판결은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뿐이라고.
10개 항목, 단조로운 구질과 빈볼효과
▲ 대법원이 한나라당의 '사법개혁안'을 정면으로 반박했다ⓒ프레시안 |
그중 핵심은 법무부장관 등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로 법관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의결기구로 하는 안이다.
이 안은 사법부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빈볼이다. 이에 비하여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옮기고 별도의 양형기준법을 제정하는 안은 말하자면 고의사구 정도다.
두 안의 의도는 행정부에서 법관 인사에 개입하고, 입법부에서 형사 판결의 내용까지도 규격화하겠다는 것인데, 이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발상이다. 수많은 오욕과 희생을 통해 조금씩 진전되어온 사법 60년의 역사를 다수결의 오만으로 간단히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권력이 법관의 인사에 개입함으로서 재판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는 방안이 통과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하다. 순진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다른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복화술은 아마도, 루스벨트의 경험에서 배워 온 것일 게다. 70세가 넘는 고령법관의 수만큼 연방법관 정원을 늘리는 법원재편법안(court packing bill)을 제출하며 으름장을 놓았던 루스벨트는 여론의 질타를 맞고 법원 재편 계획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연방대법원의 판결 변화와 협조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결과론에 치우친 해석일 수 있지만, 루스벨트의 무리한 시도가 처음부터 연방대법원의 자발적 협조와 변화를 의도한 포석이었다는 것이 하나의 해석이다. 안정적인 템포와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빈볼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대법관 증원이라는 유인구
대법관 수를 기존의 14인에서 24인으로 증원하겠다는 안의 정치적 계산도 분명해 보인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이 다수인 현재 대법원의 구성에 물타기를 하고, 새로운 자리에 정권의 코드에 부합하는 대법관을 임명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면에 대법관의 과도한 판결 부담을 완화해 국민의 재판권을 충실히 보장한다는 명분도 있고, 변호사 직역의 이해와도 부합해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에도 쉽다. 게다가 논의의 폭발력도 있어 관심이 집중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법관 증원 안에 대하여는 깊은 선구안이 요구된다.
정치적 의도의 천박함을 들어 바로 맞받아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사안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른 가능한 대안들과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고등법원 상고부, 상고허가제, 대법원 2원화, 대법관 증원 등 대안들 모두가 1장1단이 있는 만큼, 법원 개혁의 기본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에 부합하는 형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급심 강화, 법관의 서열구조 폐지, 재판권의 충실한 보장이라는 사법개혁의 기본 방향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지혜를 모을 수 있는지, 끈기를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법조일원화, 판결문 공개라는 변화구
대법원 개혁이라는 어려운 사안에 논의와 관심이 집중되어, 논의의 균형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이번 법원 개혁의 성패는 경력법관제를 통한 법조일원화와 판결문 공개, 이 두 가지를 실현할 수 있는지에 있다.
한나라당의 10개 항목 중 색깔이 다른 안이 있다면, 바로 이 두가지다. 법원 개혁을 말하는 어떠한 논의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법관의 독립에 족쇄를 채우려는 노골적인 개악안도 사법개혁의 본질에 부합하는 변화를 담아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력법관에 의한 법관 선발제도가 사법 불신 해소를 위한 시작이라면, 판결문 공개는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독립된 법관이 판결문을 통해 자유로운 논증을 행하고, 그 논증의 공정성에 대하여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구조야말로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의 원리가 조화를 찾아가는 출발점이다.
국민들은 오래 기다려온 이 변화구를 멋지게 받아쳐주길 원한다. 여당은 검찰개혁 없이는 법원개혁 없다는 뻣뻣한 논리로 맞설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에 법원 개혁의 승부를 걸겠다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투수가 빈볼 던졌다고 타자가 승부를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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