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치러지는 촛불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선거당일에는 어떤 사람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다. 후보 본인조차 그랬다. 그러나 올해부터 선거당일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7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선거당일에도 문자메시지나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특정후보를 연상시키는 어떤 투표 인증샷도 선거법에 걸려 처벌받는 행위였다. 오로지 투표 인증샷은 투표독려를 위한 것으로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관련 인증샷이나 이메일 발송 등이 가능해졌다. 이미 이틀 간 치러진 사전투표에서 지지후보의 번호를 상징하는 투표 인증샷이나 지지후보 벽보 앞에서 찍은 투표 인증샷들이 넘쳐나고 있다.
투표당일 선거운동 제약을 푼 공직선거법 개정은 환영할 일이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자유가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투표 전날 밤 12시까지 허용되었던 선거운동을 당일에는 금지했던 명분은 너무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23일간의 각종 선거운동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유권자들이 선거당일 하루의 특정 행위나 사안으로 그것을 뒤집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투표일 선거운동을 금지시켰던 기존 선거법에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력을 저평가하는 관점이 깔려있는 것이다. 설사 투표당일 선거운동이 영향을 끼친다 할지라도 유권자는 기표행위 직전까지 충분히 판단할 정보를 제공받고 기회를 가질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맞다.
그런데 선거법 개정으로 확대된 이런 정치적 자유에서 교사와 공무원은 여전히 제외된다. 올해 5.9 대선에서 다른 모든 이들이 누리게 된 선거당일 SNS와 인터넷, 문자 등에서의 정치적 자유는 교사와 공무원의 것이 아니다. 교사와 공무원은 여전히 지지후보를 표시하는 투표 인증샷도, 문자메시지도 날릴 수 없다. SNS에 '좋아요'를 누르기만 해도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 된다. 선거당일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마찬가지다. 교사는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금치산자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손이 있어도 쓰지 못한다.
최근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그러나 그런 세상을 바꾸고자 나섰던 홍길동처럼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할 당사자인데도 시민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를 회복하고 학교민주주의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모인 교사들이 있다. 이들이 만든 교사모임이 홍길동교사당이다. 홍길동교사당에서 교사의 정치적 자유에 관한 교사들의 인식조사를 위해 전국을 범위로 교사 설문을 실시했다. 1140명의 초중등 교사가 응답했다. 설문결과는 아래와 같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교사가 학교교육활동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을 금하는 대신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모든 정치적 활동을 보장받고 있다. 오히려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적극적인 정치활동이 권장되고 있기까지 하다.(☞관련 기사 : "교사는 왜 '국민경선'에 참여할 수 없나?")
교사의 정치적 자유 박탈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의 박탈일 뿐 아니라, 학생들을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시켜야 할 교사의 책무이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직선거법, 국가공무원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온갖 법적 수단들로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수업시간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까지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 한 달에 정당후원금 1만 원씩 18만 원 냈다고 재판정에 서고, 처벌받고 해직이나 징계를 당하는 현실에서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교사들의 정치적 입과 손을 꽁꽁 묶어버리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는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 인터넷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어마어마한 정보들 속에서 학생들은 무엇이 올바른 정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더욱이 일베는 말할 것도 없고 가짜뉴스까지 판을 치고 있는 때니 말해 무엇 하랴.
청소년들이 올바른 관점에서 정보를 찾아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고력과 판단력, 세상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이 학교여야 하고 교육이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정보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SW교육보다 더 중요한 미래교육이다. 그러나 교사들이 정치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는 조건에서는 이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위 설문결과를 보면 96.5%의 교사들이 교사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93.8%의 교사들이 교사의 정당 후원이나 정당가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또한 84.9%의 교사들이 최소한 교육감 선거운동 이상의 교사의 선거운동 참여를 요구하고 있으며, 73.5%의 교사들이 선출직에 출마하기 위해서 교직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응답교사들의 의견은 이미 선진국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실현되고 있는 일들이다. 설문결과는 우리의 법·제도가 교사들의 의식을 따라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근무시간 외'의 단서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응답교사 스스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우려하는 것처럼 교육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편향적인 정치교화에 대해 교사들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 선거법에는 민의를 왜곡하지 않는 공정한 선거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독소조항들이 많았다.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때 민의왜곡은 최소화된다. 국민의 정치적 자유는 가장 엄격한 기준에서 최소한으로 제한되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정치공학에 찌든 정치꾼들의 정치가 아니라 본래의 의미에서의 정치야말로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별 짓는 가장 고도의 특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선거법은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제한하는 방식으로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유권자를 잠재적 선거사범으로 보는 지극히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 관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선거의 공정성은 '유권자의 권리 제한'이 아니라 선거를 관리하는 공적기관인 '정부의 의무 강화'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 맞다.
비근한 예를 몇 개 들어보자. 사후 약방문으로 선관위의 해명이 있었다지만 유권자들이 기표를 하면서 무효표가 될까 걱정할 정도로 불친절한 투표용지 양식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민의 왜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권력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보다 엄격한 제도와 장치를 만들어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것이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 민의왜곡을 방지하고 공정한 선거를 구현하는 일이다. 이번 사전투표의 경우에도 관외투표용지 관리의 허술함이 여러 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이러니 실은 거꾸로 유권자들이 선거관리 주체인 정부의 민의왜곡을 걱정해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 되어 버렸다. 주객전도도 이런 주객전도가 어디 있으랴.
정부의 선거관리 의무를 강화하고 국민의 정치적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라. 당연히 교사의 정치기본권도 되돌려주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과 교사들의 정치의식 수준이나 민주주의 지수는 현행 선거법과 현실 정치인들 수준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선거일 선거운동 보장에 교사와 공무원의 자리는 없다. 현실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현실을 이끄는 것이 법이기도 하다. 법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는 못할망정 이토록 뒤쳐져 있으면 안 된다. 국회와 정치권은 교사들 스스로 실시한 설문결과를 통해 현실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점검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마땅히 현실에 맞는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