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의 대립으로 미궁에 빠진 세종시문제에 대한 출구전략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중대결심'을 할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 중대결심의 실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계가 술렁이고 있는데 그 유력한 가능성으로 국민투표론이 대두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안이 실제로 검토되고 있는지, 국면회피용 명분축적이나 언론플레이용 애드벌룬에 불과한지, 호가호위하는 측근의 '오버'에 불과한지, 혹은 친박 압박용 카드인지는 시간이 답해주겠지만 이런 류의 국민투표가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듯 하다.
헌법 72조 적용이 유력하겠지만 위헌론 어찌할텐가?
현행 헌법상 세종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은 세 가지 방향이다. 첫째는 대통령이 헌법 제72조에 의거해 국민투표를 붙이는 방안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헌 소지가 있지만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방향이다.
둘째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통해 세종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단순히 기존 세종시법의 수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수도이전론을 위한 방식이므로, 정황상 청와대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방식이라보긴 어렵다.
셋째는 별로 논의되고 있지 않지만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여 법률상 국민투표제를 도입하고 그에 따라 세종시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쪽이다. 이 방법 역시 현행 헌법하에서 위헌 여지가 있는데다가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국회의 정치력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진지한 검토의 여지가 있는 것은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방안이다. 그런데 이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선 위헌론을 극복해야 한다.
문리적으로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 헌법요건이므로 결국 세종시 문제가 이에 해당하느냐가 관건이다. 세종시 문제를 수도분할로 보는 입장이라면 수도를 이전함으로써 외교나 국방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헌법재판소가 현행 세종시법이 수도분할이 아님을 확인한 바 있어 설득력이 약하다.
헌재, 盧 탄핵심판 당시 국민투표부의권 축소해석
더구나 일부 행정부처의 장소적 소재와 같은 사안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미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을 통해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은 대통령의 정치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엄격하게 축소해석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만일 대통령이 국민투표부의권을 남용하여 위헌인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것도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헌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탄핵사유가 된다고 못박았다.
이 결정으로 현행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적인 결정으로 국정과제가 결정될 수 있는 여지는 극도로 축소됐다. 헌법해석권을 가진 대통령도 탄핵의 위험을 무릅써야만 국민투표부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헌법학도인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헌재의 이러한 엄격한 국민투표부의권에 대한 해석론과 탄핵사유에 대한 확장된 해석론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헌법학도의 해석론과 차원이 다른 헌재의 해석론이 가지는 헌법적 무게감을 고려할 때 세종시법의 국민투표제안은 중대한 헌법적 부담감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국민투표 결과가 국회를 강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헌법해석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설령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상 입법권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입법에 대해 국민투표를 붙일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에서부터, 가령 입법사항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따라 (국회의) 입법권을 구속할 수 있느냐는 구별되어야 한다.
헌법상 입법권은 국회에 있으므로, 국민투표가 정치적 효과를 넘어 입법을 개폐하는 효력을 가지거나 입법을 강제하는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게 될 때는 역시 위헌론이 제기될 소지가 있다.
사실 이에 대한 학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하지만 다수의 입장은, 입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부정하거나 그 정치적 효력이외에 입법권을 강제하는 효력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이다.
나의 경우엔 입법사안이라하여 국민투표대상에서 무조건 배제하기보다 특별한 경우에 입법사안도 국민투표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만일 국민투표에 의해 입법사안에 대한 국민의 직접적인 의사표시가 있다면 헌법적으로 국회의 입법의무가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소수설을 지지한다.
그 이유는 헌법이 정한 정치제도 운용의 기본원리는 국민주권주의이며 대의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국회에 부여하여 대의제를 국민주권 실현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하고 있지만 헌법이 예외적으로 명문으로 인정한 직접적 국민의사표현에 국민대의기관이 기속되지 않는다면 국민투표제도를 둔 취지는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소수설도 세종시 국민투표론자에게 별 도움이 될 성 싶진 않다. 세종시법의 해결을 위한 국민투표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국민투표의 결과와 입법권간의 충돌문제에 대한 논란이 불을 보듯 뻔해서다.
결국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국민투표는 헌법해석을 둘러싼 갈등을 포함하여 극심한 국론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치적으로 쓸모가 없다.
'관습헌법' 내세웠던 헌재, 이번에도 뒤처리 담당?
이 참에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세종시법을 둘러싼 국정혼란이 초래된 현재의 상황은 바로 헌법재판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은 헌법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것임에도 현재의 사안에 관한한 극심한 헌법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시대착오적인 관습헌법론에 기해 위헌결정했던 헌재의 결정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세종시 논란은 애당초 재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종시법 수정론자들이 '만트라(眞言)'처럼 들먹이는 '행정효율성' 문제가 애당초 이 관습헌법에 의한 헌재결정의 후속조치로 탄생한 '세종시법'에 의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당시의 헌재재판관들이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였더라도 헌법사에 오점이 될 관습헌법론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참칭하였을까?
더 큰 아이러니는 세종시법의 처리방안으로 국민투표가 시행된다면 헌법소원이든 탄핵심판이건 헌법재판소가 그 뒤처리를 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국민투표논란을 계기로 사법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헌법이 부여한 자신들의 권한의 행사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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