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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싸우지 않고 투표 잘하는 방법

[이관후 칼럼] 딱 두 가지만 기억하자

어떻게 해야 투표를 잘 하는 것일까요?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투대문(투표해야 대통령 문재인)', '심찍안(심상정 찍으면 안철수 당선)', '홍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당선)', '심알찍(심상정을 알면 심상정 찍는다)' 등. 참 신조어가 많은 선거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었는데 결국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될까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 없이 투표를 하면 되겠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투표를 잘 하는 것일까요?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하면 좋을지 저에게 묻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하십시오'하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두 번째는 '나의 대표자는 누구인가' 입니다.

▲ 5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통령 선거에는 총 1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연합뉴스


전략적 투표는 유권자의 권리

어떤 사람들은 소신대로 찍으면 되지 뭐가 복잡하냐고 합니다. 그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누가 뭐래도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는 중요합니다.

우리 헌정체제에서 한 명뿐인 최고권력자를 뽑으면서, 내 표를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은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전략적 투표를 나무랄 이유는 없습니다.

전략적 투표의 가능성은 단순다수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의 몇 안 되는 장점입니다. 이 선거제도는 영어로 First-past-the-post, 약자로는 앞 글자들을 따서 FPTP라고 불리는데, 말 그대로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 사람이 1등이라는 뜻입니다.

과반여부 같은 것 따지지 않고, 단번에 승부를 결정합니다. 열 명이 나와서 골고루 득표를 하다가 15%로 당선자가 나온대도 별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이 승자입니다.

이 제도의 첫 번째 장점은 선거제도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장점은 선거의 흐름을 보아가며 내 표를 누구에게 던져서 소위 사표를 방지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자기 표가 사표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생에서는 최선도 좋지만 차선을 선택해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선거라고 예외가 될 리 없습니다. 내 맘에 꼭 드는 후보를 찾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반대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면, 최선이나 차선을 버리더라도 그 사람의 당선을 저지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할 권리,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1등이 될 가능성이 적다면 차선을 골라서 그 사람을 1등으로 만들 권리가, 유권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심상정 지지자에게 어차피 당선될 가능성이 적으니 문재인을 찍어달라고 말하는 사람과, 유승민 지지자에게 문재인이 싫으면 안철수나 홍준표를 찍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투표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이들에게 대해 뭐라 할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할 이유도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전략적 투표를 하고, 남에게도 권하는 것이 좋습니다.

투표는 정치적으로 나를 재현하는 것

두 번째는, 선거를 단순히 당선자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유권자의 의사를 표시하는 과정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선거는 정치적 대표자(representative)를 뽑는 과정입니다만, 동시에 나를 정치적으로 재현(represent)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의 정치적 의사를 '직접 표현(present)'하는 것이 민주주의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어렵거나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투표를 통해 '간접 표현(re-present)'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를 뽑아서 하는 민주주의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보면, 나를 정치적으로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선거의 결과가 중요하니 그걸 감안해가며, 나를 조금이라도 대표하는 사람에게 투표하고 싶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정치에서 당장의 선거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그것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선거해서 영원히 통치하는 대표를 뽑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정입니다. 왕을 선거로 뽑을 뿐이지요.

그래서 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의 정치적 대표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기각시키기도 합니다. 당장 이번 대선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가장 유력했던 두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도 가장 앞서 나갔지 않습니까?

이번에 꼭 당선되지 않더라도 나를 잘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게 투표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이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더 전략적인 투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처럼 당선자가 과반 득표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되는 상황이라면, 누가 2등이나 3등이 되느냐, 혹은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가는, 당선자가 정책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잡아가느냐에도 당장 영향을 주게 마련입니다.

심상정이나 유승민이 더해서 15%나 20%의 득표를 하게 된다면, 그 표는 다른 2위나 3위의 득표율에 육박하게 될 것입니다. 당선자는 2위나 3위보다 이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정치세력을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이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소수로서 자신을 정치에 효과적으로 재현(re-present)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투표에 정답은 없습니다

어? 앞에서 한 이야기랑 뒤에서 한 이야기가 다르다고요? 이것도 맞다고 하고, 저것도 맞다고 한 것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것이 선거가 가진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선거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시험문제가 아닙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정답이 따로 있는 그런 문제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그것이 정치의 속성입니다. 단칼에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것, 정치에서 그런 것은 없습니다. 확실한 것도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겠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바로 그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려는 목적으로 투표하시는 분, 잘하시는 겁니다. 누군가를 통해 나를 정치적으로 표현하기를 원하시는 분, 잘 하시는 겁니다.

누가 누구에게 더 잘했다 못했다 나무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꼭 맞다고 우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비난하고 우기는 사람이야 말로 자기 표를 하나씩 잃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찍기나 하라는 것, 결코 아닙니다. 누가 몇 등을 하는 것이 우리 정치에 좋은지, 누가 나를 정치적으로 잘 대표하는 사람인지, 나는 이런 생각으로 누구에게 투표할 테니 당신도 잘 생각해보라든지 하는 말, 우리 선거에 꼭 필요합니다.

대신, 선거에서는 1등이 무조건 중요하다든지, 선거에서는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을 찍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말은 사실도 아니고, 도움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날입니다. 투표하러 가기 전에 우리 아이들 얼굴을 한 번 떠 올려 보십시오. 아마 거기에 정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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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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