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지인 한 분이 연락을 해왔다. 일찍 결혼해서 출산을 하고 늦깎이 새내기로 대학에 진학한 데 이어 5년 여 간의 해외에 나가 학업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한, 슈퍼우먼이었다. 목소리가 어두웠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눈 후 먼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지인은 가정법원에서 아동학대 관련해서 통지서를 두 개나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물었다.
"아동학대? 누구를?"
지인은 남편과의 사이에 고등학교 1학년 된 딸이 하나를 두고 있었고, 아동 관련 일을 하는 이도 아니었다. 딱히 법을 어길 일 없이 살아왔고 경찰서 한 번 갔다는 얘길 들어보지 못했던 이라 의아했다.
"OO이가 신고를 했어, 지금 지 할머니네 가 있어."
사연인 즉, 친딸이 지인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지인은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후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새어머니는 지인을 구박하거나 홀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터울이 있는 이복 동생과도 딱히 차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새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장사를 하느라 바빴던 탓에 자라는 내내 외로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는 나이차이가 열 살 가까이 났지만, 자상하고 따뜻했다. 자라는 내내 채워지지 않았던 가슴 한구석이 따뜻하게 채워질 것만 같았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고 임신을 했다. 그 즈음 남편은 대학원 진학을 원했다. 지인은 맞벌이를 하며 남편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왔다. 남편이 공부를 마칠 무렵이 되자, 지인도 하지 못했던 공부가 아쉬웠다. 남편과 상의해서 그 때부터 일과 살림을 병행하며 수험준비를 했다. 모자란 잠을 쪼개 동영상 강의를 돌려보며 공부를 했다. 다행히 딸이 초등학교에 진학한 이듬해, 지인도 집에서 멀지않은 인근 대학에 진학했다. 지인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공부를 하고 살림을 하면서도 부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을 마칠 무렵이 되니 아쉬웠다. 실질적으로 나이 차별이 있는 한국사회에서 전공분야의 취업의 문턱을 넘는 것도 오래 버티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늦게 시작해 재미를 느낀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아이는 조금 있으면 6학년이 되는 상황이었고 엄마 손이 덜 필요한 시점이었다. 남편과 다시 의논을 했다. 남편은 지인의 이런 속내를 이해하고 격려했다. 남편은 수도권 중소도시에 거주 중인 시어머니께 딸아이를 맡기고 남편이 주말에 돌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지인의 유학길이 열렸다. 그리고 처음 3년을 기약했던 시간이 5년 가까이 되서야 끝이 났다.
지인은 학위를 땄고,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실용학문인 덕에 여러 학교에 어렵지 않게 자리도 생겼다. 문제는 아이였다.
지인의 눈에는 엄마가 부재한 딸에게 미안한 어른들의 지나친 오냐오냐로 아이의 학업도, 생활도 문제가 많아 보였다. 딸의 성적은 거의 최하위권이었고, 화장을 하고 다녔다. 교복치마도 줄여서 깡뚱했다. 저녁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늦은 귀가가 잦았다. 지인의 입장에서는 어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부류였다. 고민 끝에 시어머니의 집과 뚝 떨어진 서울 강북에 집을 얻고 아이를 전학시켰다. 그런데 딸의 반발이 거셌다.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먹히지 않아 TV 콘센트 줄을 보는데서 잘랐는데 역효과만 났다. 그러면 안되는데 화를 내다가 물건을 바닥으로 던지거나 들고있던 프라스틱 바가지 같은 것으로 아이를 때리는 일도 생겼다. 딸은 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은 딸의 휴대폰을 뺏어 그 안의 SNS를 보게 됐다. 그 속에서 딸이 흡연을 하는 것을 알게 됐고 친구들과 지인을 욕하는 것도 보게 됐다.
딸의 일상을 들여다 보니 예상을 뛰어 넘었고, 어느 틈엔가 너무 멀어져있는 딸과의 거리가 막막했다. 머릿속이 노랬다. 그러다가 딸이 친구에게 문자로 남긴 "언제부터 자기가 엄마 노릇했다고 엄마질이야"라는 말에서 폭발했다. 맞는 말인 것 같아 더 속이 상했다. 그 날 정신없이 화를 내다보니 처음으로 아이의 뺨도 때렸다. 핸드폰도 화장실 변기에 던져버렸다. 그 일로 딸도 상처를 받았고 지인도 당황이 컸다.
그렇지만 지인은 엄마 된 입장에서 그렇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딸이 어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친구들과 떨어져 공부에 집중할만한 학교를 알아보기로 했다. 유학기간 동안 떨어져있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떨어져버린 마음의 거리가 걱정스러웠지만, 당장은 지인과 딸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딸을 기숙하는 대안학교에 보내고 부부는 학교 인근으로 이사를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선 학교를 알아봤고, 괜찮아 보이는 학교를 찾았다. 학비가 비쌌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괜찮지 싶었다. 딸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6개월만 다니고 결정하라고 강권했다. 딸에게 새 핸드폰을 사준 다음날 남편과 함께 딸을 새 학교에 데리고 갔다.
지인과 딸의 갈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공교롭게도 학교에서 일어났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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