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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집권세력, 엄벌과 혹형 내세운 '법가'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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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집권세력, 엄벌과 혹형 내세운 '법가'의 후예

[법치의 표리(表裏)]<27>계급 법치·당파 법치의 발호

최근의 한 공개강연에서 권태신 국무총리실 실장은, 우리나라에는 민주주의는 충분히 이루어졌지만 법치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전이 없다는 말을 했다.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경제개발협력기구 소속국가의 수준이 되었음은 사실이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현실은 한심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권 실장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법치관(觀)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원리인 법치주의는 권력을 규제·통제하기 위하여 정립된 원리이다. 이 원리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각종 시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이를 법으로 제약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최소한의 수준과 범위에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요컨대, 법치의 핵심은 "법을 도구로 사용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 정신을 충실히 준수하는 지배"(rule of law)이다.

권력이 아닌 시민을 향한 이 정부의 법치

그런데 정부와 여당 등 집권세력이 목청 높여 외치는 법치의 대상은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다. 집권세력은 시민에 대하여, 존재하는 실정 법률에 대해서 의문을 품거나 비판을 하지 말고 무조건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어기는 시민은 쇠방망이로 내려친다. 특히 그 시민이 반대 당파 성향이라면 내려침은 무지막지해진다. 근래 무죄판결이 내려진 여러 사건에서의 수사와 기소 외에도, 문인에게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시위불참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는 정부의 행태는 치사스럽고 야만스럽다.

막스 베버의 유명한 정의에 따르면, '권력'은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타인이 원하건 말건, 자신의 지위나 세력을 동원하여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모든 국가와 사회의 권력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근래 이명박 정부의 권력 행사를 이 보면서 이 베버의 정의가 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통합위원회'에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민의 4분의 1은 사회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법치의 대상일 뿐이라고 발표하였던 바, 이는 권력층의 법치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집권세력이 주창하는 '법치'란 엄벌과 혹형을 주창한 고대 중국의 '법가' 사상의 실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중잣대'

한편 집권세력은 자신의 불법은 숨기거나 축소한다. 환경관련 법규를 다 위반하고 진행되는 '4대강 사업' 등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불법은 제쳐 놓자. 집권세력에 속하는 개인의 불법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안마 서비스가 주어진다. 수사는 약하게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며, 기소가 이루어지더라도 가벼운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다.

증거가 너무 분명하여 자기편을 처벌해야 할 때면, 반대파 중 몇몇을 골라내어 '물 타기'를 행한다. 권력자의 편에 선 자의 경우 형량이 가볍게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유죄판결 이후에도 바로 사면이 이루어진다. 중한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고도 두 번이나 사면을 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예를 생각해보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의 비유를 빌자면, "성문법은 거미줄과 같아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감아 붙잡지만, 부자와 강한 자는 그걸 쉽사리 찢고 나와 버린다."

권력자는 법률가를 자신의 참모나 부하쯤으로만 여긴다. 자신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는 법적으로 정당화되고 치장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권력자의 요구에 충실히 응하는 '법률기술자'나 '법비'(法匪)는 자리와 부를 얻는다. 이러한 권력자의 행태에 제동을 거는 법률가는 불량한 국가관을 가진 자, 반대 당파에 속한 자, 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자로 취급된다.

우리는 87년 헌법의 자식들이다

이상의 모습에서 필자는 한국 사회의 법치가 지배 계급과 당파의 이익만을 수호하는 법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1987년 헌법의 자식들', 즉 민주, 인권, 공정의 의미를 배우고 호흡하며 자라난 '능동적 시민'과 'G20' 나라 수준의 법원칙만큼은 지키고 실현하려는 법률가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오만하고 뻔뻔한 권력에 의한 법치주의의 왜곡은 벽에 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임기가 있고 민심은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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