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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작은책]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것, 이것이 모두의 권리"

호사가라면 요즘 분위기를 보고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주는 현금'인 기본소득은 사실 1년 전만 해도 너무나 낯선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오는 반응은 '좋은 소린데, 그게 되겠어?'라든가 '일도 안 하는데 돈을 주는 게 말이 돼!'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다시 말하면, 불가능하다든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공약으로 내거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가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실감 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본소득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남시의 청년배당, 스위스에서 있었던 기본소득 국민투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BIEN Congress) 등이 머리에 떠오르는 일들이다. 나라 안팎에서 기본소득이 마치 시대의 흐름인 것처럼 이야기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의 일을 거의 전부 대신할 경우에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일자리가 없어지면 돈은 어떻게 버나 등이 우리에게 밀어닥친 질문이었다. 이와 함께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왔다.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만 24세 거주자에게 1년에 100만 원을 지역상품권으로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상의 범위나 지급액 수를 보면,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어쨌든 오늘날 청년들의 삶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청년과 관련해서 이제까지 나온 정책은 창업 지원이라든가 구직 지원 등 경제 활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와 달리 청년배당은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년배당은 기본소득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것은 이것이 모두의 권리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이런 생각은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한 것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국민투표의 내용은 다음 세 개 조항을 헌법에 넣자는 것이었다. △정부는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인간을 존엄하게 하고 공적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기본소득의 액수와 재원 조달 방안은 법률로 정한다. 이 국민투표 안은 찬성 23퍼센트, 반대 76.9퍼센트로 부결되었다. 하지만 소득을 권리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보고 사람들이 놀란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복지 제도가 잘 완비된 선진국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다는 것 때문이다. 다시 말해 '뭐가 부족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거지?'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렇다. 복지국가가 잘 돌아간다면 기본소득 같은 것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자리 잡은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표현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다. 이런 복지국가의 기본 설계를 제시했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베버리지는 이것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할 수 있는 모두(사실은 남성 가장)가 적절한 일자리를 가지며, 이들을 사회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에는 자신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퇴직 후에는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할 수 없는 경우에만, 국가가 공공부조를 통해 생계를 책임지면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적절한 일자리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그러했다. 흔히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이 시기에는 거의 완전고용이 달성되었고, 그렇게 올린 소득으로 대량 소비를 해서 경제가 잘 돌아갔다. 이는 베버리지가 구상한 대로였다. 그래서 이 시기를 복지국가의 황금기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완전고용은 계속 가지 않았다. 1970년대 초부터 자본주의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실업은 늘었고, 이에 따라 복지 수요는 늘어났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과도한 복지가 나라를 망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복지국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해서 기여를 할 때만, 즉 사회보험료를 낼 때만 돌아갈 수 있는데, 실업이 늘어나면 일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복지제도에는 '복지 함정'이라는 것도 있다. 실업 급여를 받는 경우 일자리를 구하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실업 급여 정도의 소득만이 생기는 일자리는 사람들이 구하려 하지 않게 된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낙인 효과'라는 것도 있다. 이는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불거졌던 것인데, 공공부조나 실업 급여를 받으려면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복지국가는 상당한 행정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이다. 누구에게 어떤 복지 혜택을 줄 것인지 조사하고 심사하는 것은 꽤나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기존의 복지제도가 아니라 기본소득이 더 나은 정책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것 빼고는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현금을 주는 게 모두에게 자유와 자율성을 증대시키며, 행정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는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리어 대부분의 복지국가는 복지 수급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하는 방식으로 복지국가의 문제를 풀어 가려 했다. 혹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켄 로치 감독, 2016)를 본 사람은 이게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어떤 사회의 중심적인 쟁점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좋지 않은 것이었는데, 2008년의 경제위기 같은 것이다. 물론 좋은 것도 있었다. 나미비아나 인도 같은 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현금을 주었을 때 이들의 자활력이 더 커졌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 소식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기본소득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나온 게 지금 실시되고 있는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다. 실업자 2000명에게 기존의 실업급여 대신 매달 560유로(약 71만 원)를 지급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아무런 조건이 없으며, 일자리를 구해 소득이 생기더라도 계속 지급한다. 이 실험의 목표가 기본소득이 실업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제한적인 성격의 실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와 달리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만약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맞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득을 올리고 어떻게 자유 시간을 써야 하는가? 기본소득이 이 문제 전체에 대한 대답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에는 대답을 한다. 그저 돈을 주면 된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좀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건 아마 '기본소득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청년배당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배당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적, 사회적 자원은 모두의 소유, 즉 공유이며, 모두는 여기에 일정한 몫이 있다는 것이다.

유령은 '시대가 제멋대로 돌아갈 때' 나타나는 법이다. 기본소득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면, 그건 우리 사회와 시대가 바로 그렇게 제멋대로이기 때문 아닐까? 물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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