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대선에서 거대 담론과 장기 트렌드가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 대선에서 굳이 새로운 쟁점을 찾자면, 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로 모든 후보가 동의하는 것 같다. 비록 정도 차이가 있더라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정부 위원회 신설, 인재 육성 및 학제 개편, 20조 펀드 조성, 생태경제고속도로 건설, 4차 산업혁명 특별시나 전진기지 추진 등.
물론 이 네 번째 산업혁명의 실체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차 산업혁명이 대세였다. 그때까지는 제러미 리프킨 교수가 한국에서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 이제는 또 다른 산업혁명의 전도사,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으로 거론되는 기술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3D프린팅, 사물인터넷(IoT) 등이다. 굳이 4차로 새로 호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들 높이 받드는 걸 보니 뭔가 있긴 있나보다.
그동안 산업혁명의 '차수 변경'은, 1차는 증기기관과 기계화, 2차는 전기화와 대량생산, 3차는 디지털 혁명과 자동화 정도였다 . 제러미 리프킨은 3차가 산업혁명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3차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새로 개척한 4차는 3차까지의 모든 특장점을 다 끌어와 융합을 시도한다. 차수 변경과 무관하게 최근 부상하고 있는 신기술이나 이미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업을 거의 다 망라했으니, 딱히 3차와 4차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물-에너지-식량 넥서스(WEF Nexus) 따위의 중범위 접근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처럼, 국가 정책으로 이미 내장된 사례가 있으니,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4차 산업혁명은 스마트, 네트워크, 자율성 등이 강조되는 초연결, 초지능 사회를 지향한다고 한다. 다른 한 축으로 공유, 협력, 개방 등의 가치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제4의 물결로 언급되기도 하니, 이 정도면, 어쩌면 인간-기계, 인공-자연, 생산-소비, 노동-자본, 신체-정신, 정치-기술, 이 모든 쌍의 기존 경계가 허물어지는 심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낙관론, 신중론, 비관론이 적당히 배치된다.
당장의 관심사는 기회가 무엇이고, 위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진술은, 기회는 기술 혁신이고, 위기는 일자리 감소, 이 정도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대선 국면에서 유통되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의 명암이 밝혀진 것처럼, 또한 정보통신 혁명, 바이오 혁명 등 그동안의 혁명 과잉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장밋빛 전망을 경계하는 학습을 해왔다. 실제 추진되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으며, 재탕 삼탕 우려먹는 폐단을 비판하기 바빴다. 특히 꾸준히 발굴되는 신성장동력은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한계를 반복해왔으며, 기술 중심의 혁신은 사회와 자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에너지만 하더라도 그렇다.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였던 에너지신산업에는 이미 3차 혹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의 방향을 일정하게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공과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다른 이름의 목적지를 강요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구성요소가 되는 '에너지 4.0' 시대의 출현을 예측한다. 에너지 4.0은 인더스트리 4.0에 맞춰 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신규 에너지원 간의 융·복합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수평적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혁명의 대상은 있으나, 혁명의 철학은 없다.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은 산업혁명이 발생하는 분야이면서, 동시에 산업혁명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일례로 독일 함부르크 시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NEW 4.0을 추진하고 있다. NEW는 에너지 전환(Norddeutsche Energie-Wende; Northern German Energy Transition)을, 4.0은 4차 산업혁명을 뜻한다. 이것은 독일 전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에너지 전환, 그리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조합주의적 노사정 맥락에서 선도하고 있는 인더스트리 4.0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NEW 4.0은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디어가 아니다. 2010년, 칼 페히너 감독은 <4차 혁명: 에너지 주권(The Fourth Revolution: Energy Autonomy)>을 개봉했다. 무하마드 유누스 등 유명 인사가 등장하지만, 단연 으뜸은 헤르만 셰어다. 공교롭게도 그 해에 작고한 헤르만 셰어는 2006년에 본인이 구상하고 실천하던 에너지 전환의 정수를 담은 <에너지 주권>을 출간했다. 책 제목이 다큐멘터리의 부제로 사용될 정도로, 이 영상은 에너지 전환을 바탕으로 바뀔 새 세상을 꿈꿨다. 그곳에는 모두가 기꺼이 동참할 미래의 희망이 있다.
산업 4.0, 노동 4.0, 에너지 4.0이라는 복합적인 혁신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우리가 부딪혀야 할 도전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제 노동, 소득, 환경의 민주화를 위한 혁명적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보편적 기본소득과 공동체 활동이 서로 만나면, 이야말로 질적으로 다른 혁명이 되지 않을까. 대선하고는 먼 이야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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