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현장
썰물이 남긴 웅덩이마다
구름의 눈두덩이 붉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도 녹녹치만은 않은가보다
새들은 부리를 뻗쳐들고 서로 경계하듯 두리번거린다
새가 발을 들어 올리면
몇 식구의 삶을 붙였던 의자가 사라졌듯
발자국에 검은 물이 들어차고 흙이 메워진다
어디서든 현장에 부리를 깊이 묻는 것들은 날쌔고 맹렬하다
갯벌을 집요하게 물고 새들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내달리고 날아오른다
뜨겁고 찰진 손이 새들의 부리를 쥐고 있는 듯
날아올랐다가도 서둘러 다시 내려앉는다
실업의 갯벌은 막막하고 역하고
발가락과 부리로 펄을 헤쳐 나가는 새들의 울음만 귀를 찢는다
무리에서 밀려난 새 한 마리
일몰의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목을 꺾어
흙탕물 속 제 그림자를 골똘히 들여다본다
시작노트
물이 빠진 서해 갯벌을 걷다가 문득 검은 새들의 무리와 마주 쳤다. 새까맣게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다시 내려앉아 달리고 주억거리며 부리로 갯벌을 헤치고 먹이를 잡는 새들에게 갯벌은 맹렬한 삶의 현장이다. 방금 시청 앞 해고 노동자들의 쟁의를 목도하고 온 후라서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거칠고 쉰 음성으로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음성과 먹이를 차지하려고 서로 경계하고 밀치고 내달리며 지르는 새들의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들이 겹쳐 들렸다. 모든 전쟁의 역사가 분배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지만 대량해고 사태로 실업자들로 넘쳐나는 이 시대에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식솔하나 건사하기가 이렇게 팍팍한 때가 또 있었던가 싶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이 다시 발걸음을 옮겨 딛을 곳은 어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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