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교 건너는 길. 다리 아래 보이는 바다 위로 해무가 짙게 깔렸다. 희뿌연 연기 사이로, 옆으로 조심스레 누운 세월호가 보였다.
버스 기사 시선이 자꾸만 옆으로 향하더니, 이내 내게 말을 건다.
"실제로 보니 어때요? 생각보다 조그맣죠? 목포에서 제주 가는 배들은 저거보다 너댓 배는 커요.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가 저렇게 조그만해서는 수백 명을 태웠다고 하는 게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TV에서 보던 것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세월호는 작았다. 목포신항에 도착해 가까이서 보아도 그랬다. 세월호를 육지로 옮긴 반잠수식 선박 옆에 있으니, 더더욱 작게 보였다.
지쳐 보였다. 움켜쥐면 부서질 듯 성한 데 하나 없는 세월호는 고단한 항해를 마친 뒤 긴 잠을 청하는 듯했다.
"바닷속에서 저 상태 그대로 3년을 그렇게 누워있었어. 저렇게라도 배는 건져올렸으니까, 이제 가족들만 꺼내면 되는데...."
3년 전 단원고등학교 학생들 인솔차 수학여행길에 오른 남편은 저기 어딘가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 아내 유백형 씨의 시선이 세월호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지금은 선수(배 앞머리) 쪽이 보이잖아, 원래는 갑판 쪽이 보이게 옮기려고 했어. 그런데 변형이 너무 많이 돼서 못 건들겠다고 하더라고. 배 겉면 다 손상된 거 보이지? 안쪽은 더 심각하대. (코리아살베지)업체 사람들이 그러는데, 들어가 보면 객실 벽이 다 무너져있대. 우리 아홉 명 가족들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이야. 우리 남편 있겠지? 있을 거야."
"'마지막 아홉 분까지 가족 품으로'. 이게 제일 마음에 드네."
15일 오후 목포신항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유 씨는 "배 올라온 날(3월 31일) 이후로 오늘이 제일 많이 왔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지만, 서울이나 안산에서처럼 추모제는 하지 않았다. 유 씨를 포함한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가족의 죽음은 아직 확인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와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미수습자 컨테이너 앞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우리 은화를 찾아 주세요', '우리 다윤이를 찾아주세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난치병의 일종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박 씨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박 씨 말고도 미수습자 가족 모두 안 아픈 곳이 없다.
"우리 가족들 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어. 아플 땐 아프더라도 가족 나오는 건 보고 장례는 치르고 아파야지. 배 앞에다가 안치실, 분향소 이미 다 마련해놨어."
매일 오후 다섯 시에는 미수습자 가족 회의가 열린다. 이날까지 사흘째 이어졌던 선체 세척 작업이 끝나고, 하늘로 솟아있는 선체 오른쪽에 안전 난간을 설치하는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배가 작아 보이긴 해도 우현 맨 위까지 높이가 22미터, 아파트 9층 높이야. 저번에 동물 뼈 나왔을 때 나도 올라가 봤거든. 세월호 반잠수식 선박 위에 올려져 있었을 때였는데 아찔하더라고. 부두에 거치하고 나서도 몇 번 주변을 둘러봤는데 좀만 잘못하면 옆으로 쿵 하고 넘어질 것 같아서 무서워. 작업하시는 분들도 고생일 거야."
그토록 바라던 선체 수색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아직 선체 수색 계획안을 받지 못 했다.
"아직 뭘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말은 없어. 근데 일단 우현에서 들어가서 찾아본 뒤에 좌현 바닥에 내려갈 거라고 하더라고. 지금 좌현이 바닥이라 그쪽에 벽이며 물건이며 다 쏟아져 있잖아. 시신이 거기 묻혀있으면 작업하시는 분들이 손으로 일일이 짚어보면서 찾아야 한대. 지금 시신 상태가 어떨지는 가늠이 안 되니까. 뼈라도 온전하게 있어야 할 텐데...."
3년, 그것도 육지도 아닌 바닷속에 침전해있던 유해의 모습을 상상하긴 어렵다. 흔적을 찾더라도 DNA 분석하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누가 제일 먼저 나오려나. 누가 먼저가 되든 아홉 명 다 나왔으면 좋겠어. 다시 수색을 하게 됐으니 나올 거라고 믿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엔 없잖아."
해가 떨어지는 저녁, 목포신항엔 제법 축축한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유 씨는 펜스 안에 설치된 미수습자 숙소로 돌아갔다. 경비원을 부르자 미수습자 가족임을 확인하고 펜스를 열어줬다.
"감옥이야 감옥.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해. 밤이 너무 길어."
철제문이 닫히기 전 인사를 건네는 유 씨의 눈가가 촉촉했다.
"이제 언제 보나? 남편 찾으면 봐. 우리 다음엔 여기 말고 안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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