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아들 한 번 꼭 보고 싶다. 니가 그렇게 갈 줄은 꿈에도 몰랐어. 우리 아들…. 불러도 답도 없는 아들아…."
얼마나 울어야 눈물을 멈출 수 있을까. 남상옥(84) 씨는 팽목항에 마련된 분향소에 놓인 아들 사진을 보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아들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자식을 바다에 놓아두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노모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자식을 앗아간 바다를 향해서는 한참 대거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이내 아들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상옥 씨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었다. 남 씨의 아들은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교사 양승진 선생이다.
가슴에 품은 아들, 꿈에서 보다
남 씨가 23일 정오께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남 씨의 집은 안성. 아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 6시에 출발했다. 남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는 TV에서 배가 나오면 꺼버린다고 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바닷속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가슴에 못이 된 아들이 다시 뭍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전날 접했다. 아들이 바다에 갇힌 지 1071일 만이다. 남 씨가 노구를 이끌고 안성에서 팽목항까지 온 이유다.
아들은 존경받는 선생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제자를 돕기 위해 단원고 뒷산에 천년호를 재배해 '천년호 장학금'을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늘 학교에는 새벽 6시 40분에 출근했다. 그리고는 제자들의 '통학 지킴이'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인 남 씨에게는 둘도 없는 효자였다. 늘 예의 바르게 어머니를 잘 모셨다. 그런 아들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남 씨다.
"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기억이 또렷하다. 허허벌판에 잔디밭이 있고 그 위에 의자가 나열돼 있었다. 그 의자 중 하나에 아들이 앉아 있었다. 새카만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시종 웃고 있던 아들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이쁘던지…."
"미수습자 9명 모두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길"
남 씨는 그 꿈이 일종의 예지몽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가 인양돼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간 남 씨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시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품는 법. 가만히 있다가도 아들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났다. 그런 모습 보이기 싫어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도 수없이 울었다. 아들이 조금만 더 일찍 바다에서 빠져나왔다면 조금은 편했을까.
남 씨는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면서 "이제라도 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 씨는 "우리 아들만이 아닌 미수습자 9명 전원이 모두 구조돼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남 씨의 바람이 이뤄질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래 남 씨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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