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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단설 유치원' 발언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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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단설 유치원' 발언이 불편한 이유

[기자의 눈] 국공립 시설 문턱도 못 밟는 학부모들은 허탈하다

배우자가 지난 4월 1일 자로 회사에 복직했다. 둘째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낸 지 7개월 만이다. 사실 이보다는 빠르게 복직하려 했으나 잘 안 됐다. 아이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올해 다섯 살이 되는 첫째는 지난 2월, 3년 가까이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사진도 찍었다. 언론에 연일 보도되는 여느 어린이집과는 다르게 아이를 잘 보살펴줬다.

사실 이 어린이집을 더 다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어린이집은 만 3세 이상 과정, 즉 누리과정이 없었다. 3월부터는 누리과정이 있는 어린이집, 즉 좀 더 큰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옮겨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사실 첫째를 낳을 때부터 집 근처에 있는, 누리과정이 포함된 국공립 시설에 지원신청서를 넣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두 자릿수 대기번호는 해를 넘겨도 도통 한 자리로 줄어들지 않았다.

사립과 국공립에는 여러 차이가 존재했다. 국공립이 사립보다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인식도 있지만 현실적인 차이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하원 시간이 문제였다. 보통 어린이집은 저녁 7시 반까지 운영하는 게 의무지만 사실상 4~5시면 데려와야 하는 구조다. 제일 늦게 집에 가는 아이가 저녁 6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저녁 7시 반까지 맡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린이집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꼼짝없이 부부 중 한 명이 일주일이라는 긴 기간 휴가를 내야 했다. 애초 방학은 해서는 안 되지만 부모 동의서를 받으면 가능하다. 슬며시 동의서를 건네며 은근히 압박하면 사인을 안 할 수가 없다. 아이를 잘 보살펴주는 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돌고 돌아 결국 국공립 어린이집

그렇기에 사립 어린이집을 졸업한 첫째를 3월부터 어디에 보내야 할지를 작년 12월부터 고민했다. 이제까지 경험상 국공립 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미친 경쟁률을 확인하고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누리과정에서 돈이 거의 들지 않을뿐더러 눈치 보지 않고 저녁 7시 30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시설은 모든 부모들의 로망이다.

그렇다고 사립 유치원도 쉽지 않았다. 인근 몇몇 유치원을 알아봤으나 종일반으로 할 경우, 추가교육비로 한 달에 최소 3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을 내야 했다. 뻔한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눈을 돌렸다. 유치원이 교육 중심이라면 어린이집은 보육 중심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도 국공립 어린이집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에 '대기'를 걸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도통 소식이 없었다.

도우미를 고용할까도 고민했지만, 하루 4시간(2명) 이용에 100만 원가량 든다는 사실을 알고 깨끗이 접었다.

마지막 방법은 사립 어린이집이었다. 국공립보다 경쟁이 덜했다. 하지만 한 달에 추가로 내야 하는 교육비가 국공립보다 대략 10만 원~15만 원 정도 더 비쌌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사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자리가 비었다며 올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입학금을 내고 아이를 그곳에 등록시켰다.

말하고 보니 간단했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2주 정도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있거나 어린이집 근처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배우자가 두 달 더 육아휴직을 내기로 했다. 배우자가 4월에 복직한 이유다.

안 후보의 발언이 안타까운 이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발언이 현재도 논란이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지난 11일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대회에서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고, 사립유치원에 대해서 독립운영을 보장하고,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안 후보가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입김에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단설유치원을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안 후보는 논란이 증폭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국 초등학교에 병설 유치원 6000개 학급을 추가 설치해 공립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쉽게 진화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전국 유치원 8987개 중 국공립 단설유치원은 3.4%인 308개소이고 공립 병설유치원은 48.8%인 4388개소다. 반면, 사립유치원은 47.7%인 4291개소다. 병설유치원의 경우 반이 2~3개밖에 되지 않아 소규모다. 자연히 이용자 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규모 등에서 사립 유치원의 경쟁상대는 단설유치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 후보의 발언을 두고 보수성향인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발언이었다는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이유다.

첫째 아이는 이렇든 저렇든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지만 둘째는 사립 어린이집에 보낸다. 그나마 이곳은 저녁 7시 30분까지 운영한다는 확인을 받은 뒤, 아이를 등록시켰다. 그래도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가슴이 '쫄깃'해진다.

안 후보가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기자처럼 국공립 시설 문턱은 밟지도 못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대선 유력 후보가 '자제' 발언을 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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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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