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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7년, 룰라의 '끝나지 않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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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집권 7년, 룰라의 '끝나지 않은 숙제'

[대결, 차베스와 룰라] 룰라 집권 7년 ③

룰라 정부는 브라질 사회를 서서히 개선해왔다.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때 브라질에서 하루 한 끼라도 거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대통령의 소망이 충족된 것은 아니지만 빈민에서 중산층으로 편입된 시민 수는 2천5백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4퍼센트에 이른다.

룰라 정부는 작년 말 세계경제위기 이후 서민들의 고용과 소득 유지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올 초에는 5천만 빈민들에게 제공할 서민주택 1천2백만 호를 건설하는 사업이 발표와 동시에 착공됐다. 이 사업은 거대한 빈민굴에서 거주하는 도시 빈민의 주거 복지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인 서민들의 고용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룰라 정부는 정치 세력 다수의 합의, 80퍼센트가 넘는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브라질에서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쉽사리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룰라 정부 아래 이뤄진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좌파정당마저 포로로 만들어버린 신자유주의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파들마저 탈신자유주의자로 만들어야 함을 룰라 정부는 알고 있었을까? 브라질에는 룰라를 계승하겠다는 야당은 있어도 성장이 멈추고 복지가 파괴되던 시장만능주의 90년대로 돌아가자는 우파는 없다.

물론 룰라 정부가 시장만능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정부는 아니다. 룰라 정부는 '시장을 신으로 숭배하는 적의 진영 한복판으로 뛰어든 정부'라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 시대적 제약, 그리고 연정으로 인한 정치적 제약 때문에 룰라 정부는 노동자당(PT) 고유의 좌파 프로젝트를 모두 실현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룰라는 자신의 정부를 "노동자당의 정부가 아니라 브라질 국민 다수를 위한 정부"라고 말한다.

▲ 리오 데 자네이루의 빈민가, 노동자당은 이곳에서 다시 활력을 찾아야 한다.ⓒ박정훈

이번 글에서는 룰라 정부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개혁 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그 가운데는 룰라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례도 있다.

룰라 정부의 개혁이 미완성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우파와의 연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룰라 정부가 '최선을 추구하는 정부'가 아니라 '최악을 막기 위한 정부'였다는 데 있다.

룰라 집권 당시 브라질 경제는 성장을 멈추었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지구상 최악이었다. 정치세력은 30여개 정당으로 쪼개져 있었다. 룰라 정부는 이 모든 과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적인 처방을 제시해야 했다. 룰라는 자신의 선택이 차선인지 차악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야당일 때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 생각하는 것을 얘기한다. 하지만 집권하고 나면 자신의 믿음이나 생각에 대해 눈길을 줄 겨를이 없다.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매순간 결정해야 한다."

브라질의 원죄

룰라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토지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브라질의 심각한 토지 소유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경작용 토지의 절반 가량이 1퍼센트에 불과한 대지주 손에 놓여 있는 반면, 3천1백만 명의 농민들은 고작 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500년 전 포르투갈 식민지배자들이 브라질 땅을 나눠 가졌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농민운동가 주앙 뻬드루 스테질레는 토지 문제를 '브라질의 거대한 원죄'라고 부른다.

▲ 대지주의 땅을 점거하여 판자촌을 짓고 사는 사람들 ⓒ박정훈
라틴아메리카 최대 사회운동조직인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은 이런 상황에서 탄생했다. 이 단체에는 1백50만 명의 빈농이 속해 있는데, 생산적인 용도로 활용하지 않는 대지주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해 직접 토지를 분배하는 토지점거 운동을 벌여왔다. 가난한 농민들이 돌멩이와 낫을 들고 토지 점거에 나서면 대지주들이 고용한 사병집단들은 기관총을 난사하기도 한다.

취임 뒤 룰라 대통령은 MST 집회에 참석해 "이제 더 이상 토지를 점거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룰라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약속의 '일부'만을 지켰다. 무토지 농민들은 100만 가구에 땅을 나눠줄 것을 요구했지만, 2008년 말 현재 약 40만 가구에만 토지를 분배했다.

룰라 정부가 토지 분배 정책을 더디게 추진해온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호황에 크게 기여해온 농업 기업들과 대지주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콩, 사탕수수, 소고기, 사탕수수 추출 에탄올 등이 지난 5년간 브라질 경제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농업 자본은 브라질 연방 의회 내에 강력한 정치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룰라는 부분적으로는 이들 농업자본의 대변자들과 연정을 구성했다.

또 다른 이유는 재원 부족이었다. 초긴축 재정정책은 사회정책에 소요될 재정의 부족을 야기했다. 토지 분배를 위해서는 국가가 토지를 유상으로 매입해야 함은 물론이고,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농업기술교육, 신용제공 등 다양한 농촌 진흥책이 동반돼야 했다. 하지만 룰라 정부는 그동안 예산 부족으로 이를 미루다가 최근에서야 본격적인 진흥책을 추진했다.

그간 룰라 정부는 대규모 수출농업의 육성과 빈농을 위한 토지분배를 동시에 추진해왔다. 즉 대지주와 빈농을 모두 만족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지주의 탐욕도 채우고 빈농의 생계도 해결할 수 있는 마술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러는 사이 지금도 무토지 농민들의 토지 점거는 계속되고 있다.

룰라의 최대 딜레마

아마존 문제는 '룰라 정부의 최대 딜레마'로 불린다. 아마존 외부 지역의 경우 토지 소유의 심각한 불균형을 시정해가는 것이 정책 목표이지만, 아마존 내부의 토지분배 문제는 환경파괴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

지난 6월 말에 룰라 정부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 지역을 무단 점거한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 면적에 육박하는 6740만 헥타르의 토지를 최대 1500헥타르까지 나누어 무단 점유자에게 분배할 계획이다.

1제곱킬로미터 이하 소규모 토지는 무상 분배하고 중간규모 토지는 상징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며, 최대 1500헥타르까지의 대농장은 시장경매가로 유상 분배할 예정이다. 분배 토지는 농경과 목축을 위한 용도이며, 소유권 획득일로부터 3년 뒤에는 토지를 매매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을 놓고 브라질 정부와 의회 안팎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환경운동가들은 물론 여당 노동자당(PT)조차도 이 법안을 '아마존 사유화 정책'에 불과하며 산림파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30년 동안 대규모 목축과 농경에 따른 벌목으로 열대우림의 15퍼센트가 파괴되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국(제4위)이 된 브라질에서 이산화탄소의 75퍼센트가 배출되는 곳이 아마존이다. 지구의 공기청정기에서 오염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 빈민가 풍경을 그려 파는 소년 ⓒ박정훈
그러나 룰라 정부는 또 다른 문제를 고려해야 했다. 아마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했던 것이다. 브라질 영토의 61퍼센트를 차지하는 아마존 지역에는 현재 9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이 점유하고 있는 토지 가운데 4퍼센트만이 합법적인 소유이고, 나머지는 모두 불법적인 상황, 즉 '법적 카오스 상태'인 것이다.

룰라는 "아마존 주민들을 아마존 침입자라고 부르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을 침입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마존은 대지주(대기업)와 소농, 환경운동가, 토착 원주민들의 분쟁으로 인해 유혈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온 폭력의 온상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아마존 거주 소농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겠다는 룰라 정부의 법안이 의회 협상 과정에서 개악됐다는 점이다. 이에 룰라가 대통령으로서 부분적인 거부권을 행사해 아마존 지역 거주자가 아닌 제3자의 소유, 개인이 아닌 기업의 소유 가능성을 막았다.

그러나 소유권을 획득한 후 10년이 지나야 토지 매매를 가능하게 했던 원안의 조항은 3년 후로 개악됐다. 투기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또한 400헥타르 미만 토지의 경우 공식적인 조사를 생략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실소유자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토지 분배와 동시에 룰라 정부는 소유권을 얻은 농민들이 산림파괴지역을 복구할 경우 매달 약 50달러(100헤알)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환경보호 정책도 발표했다. 환경보호 규제제도를 도입해 산림 파괴행위에는 토지소유권을 박탈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아마존 정글의 환경보전과 그 지역 거주 주민들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아마존 문제는 룰라 정부의 성장 정책과 환경 정책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한 사례다. 토지 분배 논쟁 이전부터 아마존 문제는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었다. 룰라 정부가 2007년에 발표한 성장촉진계획에 따르면, 아시아 수출 길을 대폭 단축시켜줄 아마존 관통 운송로를 건설할 계획이 담겨 있다. 또한 아마존 지역의 주민 공동체와 브라질 나머지 지역을 연결할 교통망 확충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한 항의로 2008년 5월 아마존 보호운동의 상징이었던 마리나 실바 환경부 장관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아마존 법안이 통과된 뒤에는 주무장관이었던 '전략문제 장관' 망가베이라 웅거가 자진 사퇴했다. 웅거 전 장관은 1990년대 말 노동자당(PT)이 현실주의 노선으로 방향 전환을 할 때 이론가로서 활약했다.

세계적 여성 환경운동가 마리나 실바 전 장관, 브라질 좌파의 방향 전환을 주도한 망가베리아 웅거 전 장관의 충돌과 사퇴는 룰라 정부의 딜레마를 보여주었다.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선 성장 정책을 철회해야 했던 것이다.

노동자당의 위기

이번엔 룰라 정부의 성공에 가려 잘 보이지는 문제에 대한 언급해보겠다. 바로 노동자당(PT)에 대한 것이다. 룰라 정부의 성공은 노동자당의 성공이기도 할까?

세계사회포럼의 창설을 주도한 브라질의 좌파 지식인 에미르 사데르는 "정부의 성공이 노동자당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룰라 대통령이 위기에서 무사히 벗어난 것은 당이 위기를 떠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당은 창당 이래 2003년~2005년까지 위기를 맞았다. 29년 당 역사에서 최악의 시기였다. 노동자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2003년의 출당사건, 둘째는 2005년 부패사건이었다.

2003년 엘로이자 엘레나(Heloisa Helena)를 비롯한 당내 급진파들은 룰라 정부의 정책을 '탈레반 신자유주의'로 비판했다. 이들은 연금개혁안을 비롯한 정부개혁안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연합 정부에 참가하는 우파를 상원위원장으로 선출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이에 노동자당 지도부는 2003년 말 연합정치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판단해 이들을 출당시켰다. 축출된 좌파들은 2004년 '사회주의와 자유(PSOL)'를 결성하였고, 2005년에 '월급 추문' 사태로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이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비판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노동자당(PT) 내부의 정치 논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980년 창당된 노동자당은 전통적인 좌파 정당과 달리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노조, 농민조직, 카톨릭 공동체, 전직 게릴라 집단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이념에 있어서도 카톨릭 박애주의자에서부터 온건파 사민주의자는 물론이고, 극좌파까지 두루 참가했다. 늘 다양한 정치적 경향들이 서로 논쟁을 벌였다. 그래서 정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출당 조치가 취해진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당이 그간 표방해온 사상적 다양성의 가치가 훼손될 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논쟁 구도가 '룰라의 연합 정부 대 노동자당 내 급진파'로 짜였다는 점이다. 정부는 급진파가 연합 정부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비판했고, 급진파는 정부가 우파와의 연합으로 우경화되었다고 비난했다. 이 논쟁 과정에서 노동자당 지도부는 아무런 주도적인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출당 조치에 무기력하게 서명했다.

당은 룰라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정부 정책을 좀 더 진보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비판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당 내부의 활발한 논쟁을 통해 정치적 활력을 유지하는 데도 실패했다.

▲'룰라의 오른팔'로 불리던 전 노동자당 당수 주제 지르세우, 그는 부패 사건을 책임지고 사임했다. ⓒ박정훈

2005년 부패 사건은 노동자당에 큰 도덕적 위기를 불러왔다. 룰라 대통령은 "측근들로부터 배신당했다"고 고백하며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하지만 룰라의 '오른팔'로 불리던 주제 지르세우 전 노동자당 대표를 비롯해, 내각과 당 지도부에 포진하고 있던 룰라의 '측근들'이 사임했다. 브라질 국민들은 "잘못은 노동자당이 저질렀는데 룰라 정부를 연루시켰다"고 생각했다. 청렴하고 도덕적이었던 노동자당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두 사건으로 중남미의 '좌파 도미노' 현상으로 활력을 되찾고 있던 사회운동진영과 청년들은 노동자당에서 이탈했다. 당은 어느새 중년과 노년층의 정당으로 변해버렸다. 당원들의 생물학적 노화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을 강타한 정치와 윤리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치적 노화 현상'도 겪고 있다.

노동자당은 22년간의 투쟁으로 룰라 정부를 탄생시켰지만 룰라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동자당은 '희생'되었다. 룰라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감으로 지목했고 노동자당의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여성 정무장관 질마 호우세피도 노동자당에서 배출된 지도자가 아니다.

노동자당은 2010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룰라 정부의 진보적 성향을 더욱 심화시킬 정부가 탄생할지, 아니면 과거의 우파-중도파 연합으로 브라질이 회귀할 것인지는 노동자당의 정치력 회복에 달려있다. 중간층의 지지 확보를 위해 오른쪽을 자리를 옮겨 중도파가 된 노동자당은, 이제 여전히 존재하는 거대한 빈민대중을 조직하기 위해서 왼쪽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정치 개혁

룰라 정부는 정치개혁도 이루지 못했다. 룰라정부가 연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패 스캔들은 브라질 정가의 고질적인 부패문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브라질 정당정치의 수준 역시 보여주었다.

현재 브라질 정계에는 30여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대표적인 여당 노동자당(PT), 대표적인 야당 사회민주당(PSDB)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당은 좌파니 우파니 이념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로비 집단'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국 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이 정당들의 다수는 지역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정당들이다.

지역주의 정당 현상은 이른바 '벨린디아(제1세계 벨기에와 제3세계 인도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브라질의 불균형적인 발전에서 비롯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남동부의 부유한 지역인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는 번갈아가면서 대통령을 맡아 브라질을 통치했다. 룰라의 집권은 바로 북동부 낙후한 지역 출신 대통령의 탄생을 의미했고, 브라질의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룰라 정부가 브라질 정당들을 지역 정당, 로비 정당에서 전국 정당, 정책 정당으로 발전시킬 정치 개혁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거공영제를 강화하고 인물보다는 정당을 보고 투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고심을 해왔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룰라 정부가 집권 초기에 무리하게 정치개혁을 추진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룰라 정부는 연합 정치를 통해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정치 세력들의 손익계산을 분주하게 만들고 이해관계를 대립시킬 정치개혁을 뒤로 미루었다. 대신 민주적 수단을 통한 서민 생활을 개선하는 현실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또한, 정치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민주적 수단으로 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면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개혁은 정치인끼리의 이해가 얽힌 문제에서 벗어나 브라질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는 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룰라 정부의 성공이 노동자당의 성공이 아닌 현실은 정치개혁의 앞날이 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룰라 이후의 브라질

▲노동자당은 지지자들을 다시 열광시킬 수 있을까?ⓒ박정훈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룰라 후보는 자신의 현실주의 좌파 노선을 요약한 적이 있다.

"노동자당은 사회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유토피아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장기적인 전망이다. 다른 이들에게 유토피아는 생애 처음 먹어 보는 강낭콩 한 접시이고, 난생 처음 갖는 직장이고, 처음 받아보는 진료이며, 처음 가보는 학교이다."

브라질 민중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원하고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시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룰라 정부 아래서 적지 않은 서민들이 그 소박한 '유토피아를' 이뤘다.

그리고 이제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 누가 이 민중들에게 더욱 새로운 것을 제시할 것인가? 누가 이 민중에게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제공할까?

룰라보다 업그레이드 된 비전을 제시하는 노동자당(PT)일까? 노동자당을 비판하며 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와 자유당(PSOL)일까? 아니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반성하는 우파들일까?

2010년 대선에서 브라질 시민들이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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