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에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측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1) 000의 사건 세 가지, 2) 000을 만든 세 사람, 3) 000이 바꿀 미래 세가지.
후보들이 보내온 답변에 맞춰 한 후보당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안철수 후보의 '세 가지'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달라졌습니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대선후보 5명의 후보 수락 연설을 전문가 5명에게 물은 결과, 안 후보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과거 '조용한 부장님 스피치’에서 정치인의 힘이 실린 스피치로 진화했다는 평"입니다. '소몰이 창법'이라며 아직은 어색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의 말과 태도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4월 첫째주를 기점으로 각 당의 후보들이 정해지면서 2017년 대권 경쟁이 본격화됐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로 굳어지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던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집니다. '박근혜의 몰락'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적 유권자의 표심이 안 후보에게 일정 부분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안 후보 역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는 명확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문 후보와 달리 안 후보의 정체성은 모호합니다. 5년 전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20-30대 청년층의 지지를 받던 그가 이젠 50대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지지하는 후보가 됐습니다. 이처럼 '모호성'은 안 후보에게 보수세력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자 동시에 숱한 의심을 낳는 약점입니다.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은 안 후보에게도 '세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의 인생 세 가지 사건 중 첫 번째는 'V3백신 프로그램 개발'입니다. 의사 안철수를 IT전문가이자 사업가로 변신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안 후보는 "1988년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 시절 '브레인'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한 후부터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들어 밤을 지새웠다"며 "백신 개발 과정은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발생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오직 열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 V3 백신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회고합니다. 당시 서울대 의대 박사 과정이었던 그는 컴퓨터에 푹 빠진 뒤 새벽 시간을 이용해 백신 개발을 했다고 합니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 했지만, 결국 본인이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선택했습니다. 그는 1995년 컴퓨터 백신 전문 기업인 '안철수 연구소'를 창업하게 됩니다.
이후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살아가던 그에게 정치인으로 전환점이 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안 후보가 두 번째 사건으로 꼽은 '2011년 청춘콘서트'입니다. 청춘콘서트는 안 후보(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와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사이자 경제평론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이사장 법륜 스님)이 공동 주최했던 강연회를 말합니다. 안 후보는 이를 통해 20대들의 '멘토'로 떠올랐고, 당시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할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도 올라갔습니다. 안 후보는 "저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청년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공감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좀 더 나은 미래, 좀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위해 정치를 시작한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습니다.
그는 "5년 전 저를 정치로 불러내주신 국민들 역시, 정치를 배우라고 불러낸 것이 아니라, '정치를 바꾸라'고 불러내셨다. 그 초심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욱 더 간절해졌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 후보가 꼽은 세 번째 사건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국민의당 창당과 4월 총선 결과에 대한 안 후보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광야에 혈혈단신 나온 지 채 두 달도 안 돼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지지율 2위, 38석이라는 기적 같은 3당체제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거대 기득권 정당체제를 송두리째 뒤흔든 녹색태풍이었다.
국민의당이 만든 3당체제는 박근혜 게이트를 폭로한 출발점이었으며, 234명의 압도적 탄핵 가결의 견인차였다. 국민의당은 소모적인 대결로 일관하던 양당체제의 한계를 깨고 협치의 길을 열었다. 국회 개원을 앞당긴 것도, 탄핵을 이끈 것도, 정상적인 예산국회를 만든 것도 국민의당의 힘이었다."
안 후보는 당 대선 후보로서 "국민의당 중심의 정권교체 이루고, 국민을 위해, 개혁을 위해, 미래를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안 후보가 꼽은 세 사람은 부모님, 부인, 국민이었습니다. 특정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민'을 꼽은 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대목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에게 부모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의 부친은 '범천동 슈바이처'로 불릴 정도로 부산에서 상당히 존경 받는 의사였다고 합니다. 그가 의대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모친은 안 후보에게 어린 시절부터 존대말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안 후보는 부모님을 꼽으며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분"이라고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안 후보는 두 번째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를 말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후배였던 김 교수는 안 후보가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연구가이자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양 갈래 길에서 고민하던 안 후보에게 부인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격려하고 지원했다고 합니다. 안 후보는 부인에 대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소울 메이트"라고 표현했습니다.
안 후보는 마지막으로 국민을 꼽았습니다. 정치 이력은 짧지만,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인 그가 이번 대선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답변으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안 후보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에게 정치를 배우지 말고, 정치를 바꾸라고 불러내신 분들도 국민이다. 외롭고 두려운 광야에 홀로 섰을 때, 손 잡아주신 분들도, 국민이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분들도 국민이다. 그래서 경선 후보 수락연설에서도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대통령 되겠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2017년 대선의 정치적 지형도와 안철수라는 인물이 만나 형성한 독특한 지지층 때문에, 그가 말하는 국민의 범주는 매우 넓고 다양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지지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모두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 정치의 속성입니다. 때문에 2012년의 '새 정치'와 마찬가지로 2017년 '국민'은 그가 채워 넣어야할 빈칸으로도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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