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한국 사회에 숙제를 안겼다. 국가 고위 공직자의 능력이나 비전 못잖게 그의 정신 상태, 혹은 성격도 중요했다. <프레시안>은 세 차례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의 심리 상태 분석을 한 바 있다. (☞관련기사 : "박근혜는 연산군…대통령 하기 싫다", "박근혜, 박정희·전두환보다 더 배신당할 것", "정신 파괴된 박근혜, 폭주가 두렵다")
큰 화제를 모은 이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심리 상태를 예언 수준으로 진단한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이 신간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원더박스 펴냄)을 냈다.
이 책에서 김 소장은 박 전 대통령 심리 분석에 활용한 방법론을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유승민에게 도입한다. 그간 이들이 낸 책이나 언론 인터뷰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김 소장은 이들의 유년기 무의식을 파헤치고, 그 결과 대권에 도전한 이들의 동기를 분석한다.
김 소장의 분석은 일견 '그럴 듯하다'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흥미로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책에서 나타난 각 주자의 심리분석 결과를 간략히 정리했다. 누구보다 대선 주자들 본인이 이 책에 흥미를 가질 것 같다. 참고로 높은 지지율을 받는 안희정의 심리분석은 이 책에서 진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하다.
문재인 : 착한 아이 컴플렉스
문재인은 착하다. 착해서 문제다. 김 소장은 문재인의 무의식 근원을 파헤쳐, 그가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는 착한 아이와는 다르다. 혼나기 싫고, 버림받기 두렵다. 김 소장은 문재인이 실제로는 대통령 하기 싫었음에도 대권 도전에 나선 이유를 여기서 꼽는다. 문재인이 좀처럼 날선 투쟁 용어를 꺼내지 않는 이유도, 화합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가 착한 아이 컴플렉스 상태라고 김 소장은 주장한다.
문재인의 유년 시절이 키워드다. 문재인은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문재인은 이 과정에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자아와 반항하려는 자아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난제에 처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을 때, 그리고 판사가 아닌 인권변호사가 되어 사람을 도왔을 때 기쁨을 느낀 원인이 동일하다고 김 소장은 강조한다.
이런 문재인은 결코 전면에 나서 운명을 개척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강조한 바다. 문재인은 착한 사람이기에, 다른 이의 기대에 어떻게든 부응하려 애쓴다. 애초 정치에 그토록 뜻이 없었음에도 2012년 대권에 도전한 이유는 국민의 기대 때문이었다. 문재인에게 '국민의 기대'란 진심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2017년에 다시 대권 무대에 소환되길 자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다. 착한 문재인은 어떻게든 이 빚을 갚아야만 한다. 진심과, 혹은 무의식과 관계없이 말이다.
따라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여론이 문재인 정부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재인은 국민에게 빚져서 대선에 나왔다. 시대가, 운명이 그를 소환했다. 그는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말 대로 문재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그 호랑이가, 즉 국민 여론이 그를 버린다면? 국정 추동력은 순식간에 바스러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중요한 이유라고 김 소장이 강조하는 이유다.
이재명 : 이명박의 정반대 인물
이재명은 노동자 출신이다. 소년공 출신이다. 심상정이 한국 노동 운동을 최전선에서 이끈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대학생 출신이다. 이재명은 초등학교 졸업 후 70년대 내내 공장을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6급 장애인이 됐다. 우리네 노동계급의 삶 이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후 그는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고 살았고, 변호사가 되었다가 대선 후보로까지 오르는 벼락출세를 경험했다. 하지만 노동자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의 대부분 형제가 지금도 노동자다. 여동생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중 과로사했다. 이재명이 대선 출마 선언을 공장에서 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김 소장은 이 점에 주목한다. 이명박도 가난한 시절을 버텼다. 하지만, 이명박은 출세 후 노동계급을 배반했다. 김 소장은 이재명과 이명박이 이 지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명박의 성공 원동력은 자기혐오다. 반면, 이재명은 출마 선언에서 "내 행복을 위해 출마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나'는 곧 '노동자', 즉 일반 시민이다. 철저히 자신의 노동계급성을 자각하는 이만이 할 수 있는 대권 선언이다.
김 소장이 이재명의 계급성을 설명하며 끝없이 이명박을 소환하는 이유다. 이재명은 가난한 시절 형성된 자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를 뜨겁게 사랑한 이재명의 부모 덕분이다. 이재명은 자서전에서 어머니를 하늘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영원히 노동자 정체성을 유지할 이재명에게 선악은 뚜렷하다. 그는 결코 기득권의 선의에 호소하지 않는다. 타협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는 투쟁하는 정치인이다. 이재명은 다른 이들이 사회의 불합리를 책으로 배울 때, 어린 시절부터 뼛속 깊이 직접 체험했다. 그는 타협하지 않을 정치인이다.
이 점이 대권후보 이재명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내 행복'을 위해 대권 가도에 오른 이재명은 절박하다. 세상이 변해야 내 삶, 곧 노동자인 내 가족의 삶, 민중의 삶이 변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이재명은 노동계급에 속한 자이기에 결코 세련된 정치인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 이재명에게 강력하게 추동하는 이를 제외한 유권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나'가 아닌 다른 이는 그에게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산은 상상 이상으로 높을 수도 있다.
안철수 :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긴다
안철수는 본래 정치를 꿈꾸지 않았다. 그가 정치인이 되려 한 이유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낙마로 이어진 무상급식 파동이었다. 안철수는 더는 새누리당과 같은 세력이 세상을 주물러선 안 되겠다는 다급함이 그를 정치 무대로 이끈 원동력이었노라고 후술했다. 그런데, 그는 세상을 위하는 삶을 이야기할 때 "제 인생에서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언어로 보이지는 않는다.
안철수 역시 문재인과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복종하는 수동적 삶을 견디며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갖게 됐다고 김 소장은 지적한다. 반항조차 제대로 못하고 큰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사업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부모에게 반항한다. 참고로, 김 소장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유년기를 설명하며 아이의 순종을 바라는 부모, 아이와 마찰을 빚는 부모를 매우 부정적으로 그린다. 부모의 뜻에 따라 꿈을 꺾은 아이는 결코 행복하지 못함을 강조한다.
반항을 통해 안철수에게는 성취해야 할 목표가 생긴다. 명예다. 이는 의미네트워크 분석기업 트리움이 지난 2012년 <시사IN>과 행한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안철수가 정치에 도전해서 명예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반항의 끝에 다다른 길, 곧 정치의 인생으로 부모에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철수 역시 문재인과 마찬가지로 여론 지지율에 민감하다. 부모에게 자신 반항의 결실을 입증하는 근거의 하나가 지지율이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안철수가 이 욕구를 버리고,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지 말기 바란다고 강조한다.
유승민 : 주류 무대의 거친 반항아
유승민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대구 태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에서 유학했다. 한국 주류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가 황교안, 우병우 등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얼굴 표정이 편안하다는 것. 김 소장은 유승민을 '좌클릭한 보기 드문 엘리트'라고 정리한다. 왜 그는 주류 보수주의자로 자랐으면서도 좌클릭했을까. 그는 반항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평생을 주류로 살아왔지만, 주류 무대 안에서는 반항을 자주 했다. 김무성이 박근혜에게 항복할 때도, 유승민은 항복하지 않았다. 유승민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재직하던 당시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빌 클린턴도 비판했다.
이 반항심은 그가 성인이 되어서도 권위에 반항하는 형태로 내면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는 결국 통제 불가능한 반항으로 확대되었다. 이회창에게, 박근혜에게, 이전에는 김대중에게 쫓겨나는 등 그의 반항은 항상 권위자와의 갈등으로 끝났다.
김 소장은 이 대목을 바탕으로 권력 실세의 2인자가 유승민에게 맞는 옷이라고 설명한다. 일인자는 그에게 어울리는 옷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인자인 대통령이 되면 정신적으로 그에게 큰 압박이 되리라는 이유다. 김 소장은 부모에게서 비롯한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는 데서 유승민이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반항의 정치인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 정치인의 길로 나아갈 것을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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