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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날, 선비의 향기 흐르는 계곡과 새재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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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날, 선비의 향기 흐르는 계곡과 새재 옛길

2017년 4월 두발로학교 <선유동계곡과 문경새재>

4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56강으로, 경북 문경으로 떠납니다. 우리 국토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한 문경은 산수가 아름답고 선비의 전통이 잘 남아 있는 고을입니다. 선유동계곡은 신라의 최치원이 머물다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길이 평탄하고 풍광이 빼어나 느긋하게 걷기 좋습니다. 벚꽃 피고 연둣빛 가득 머금은 4월의 선유동계곡에서 봄의 생명력을 한가득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문경에서 새재를 빼놓으면 섭섭합니다. 우리나라 옛길의 대표격인 문경새재는 ‘길의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전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가지듯, 문경새재 역시 오래된 길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로 가득합니다. 4월의 두발로학교는 따스한 봄날, 정말 걷기 쉽고 멋진 길입니다.

▲봄의 생명력이 가득한 선유동계곡. 선비의 풍류와 수려한 자연이 어우러진다.Ⓒ김혜영

진우석 교장선생님은 저명한 여행가이자 여행작가이십니다. 스스로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라 하며 ‘걷기 달인’, ‘길의 탐미주의자’로 통합니다. 히말라야, 카라코람, 알프스, 백두대간 등 국내외 굵직한 트레일을 걸었으며, <서울신문>에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연재를 시작으로 국내외 ‘날 것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으로 있으며, 삼성 SERICEO‧여행작가학교 등에서 여행강사로 활동합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4월의 걷는 길, 문경 <선유동계곡과 문경새재>에 대해 들어봅니다.

두 개의 선유동, 퇴계와 고운
괴산과 문경에 걸쳐 있는 대야산(931m) 자락에는 빼어난 경관으로 유명한 계곡이 두 곳이나 있다. 충북 괴산군에 속한 선유동계곡과 경북 문경시에 속한 선유동계곡이 그것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괴산선유동을 외선유동, 문경선유동을 내선유동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문경선유동이 대야산 가까이 있지만, 괴산선유동은 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양쪽 선유동은 가까운 거리인데
지금은 그 사이에 구름이 한가롭고
어느 곳이 뛰어난지 평하기도 어렵도록
하늘의 장수가 있어 수석 고루 나눴네
(정경세 <조선환여승람> 중에서)

정경세의 시구처럼 괴산과 문경 선유동의 경치는 막상막하로 아름답다. 괴산선유동이 스케일이 크다면, 문경선유동은 아기자기하다. 선유동처럼 아름다운 곳을 선인들이 그냥 놔뒀을 리 없다. 괴산선유동에는 퇴계 이황의 흔적이 남아 있다. 퇴계는 송면 송정마을에 있는 함평 이씨 댁을 찾아갔다가 괴산선유동 계곡의 절묘한 경치에 반해 아홉 달 동안 머물며 9곡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문경선유동은 고운 최치원이 신선처럼 거닐었다. 고운은 봉암사에 드나들면서 가까운 문경선유동의 아홉 절경을 찾아 ‘선유구곡’을 새겼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복 정경세, 도암 이재, 손재 남한조, 병옹 신필정 등이 즐겨 찾아 자취를 남겼으며, 근세에 이를 발견하고 시를 남긴 유학자는 외재 정태진(1876~1956)이다.

선유동천 걷기는 이강년기념관에서 출발한다. 걷기에 앞서 기념관을 둘러보자. 안으로 들어서면 칼을 빼들고 위풍당당하게 선 운강 이강년의 동상이 눈에 띈다. 운강은 한말의 의병장으로 동학농민운동과 을미사변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주‧가평·인제·강릉·양양 등지에서 큰 전과를 올린 명장이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추서됐고, 최근 활발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동상 앞에서 꾸벅 절을 올리고 길을 나선다. 기념관 앞쪽으로 선유동천을 알리는 큰 비석이 서 있다.

비석에서 30분쯤 걸어 오르면 풀에 묻힌 칠우폭포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이 선유칠곡(칠우칠곡)의 현장이지만 공사 중이라 알아볼 수 없다. 한말, 문경 가은의 선비 7명은 서로 깊은 우정과 학문을 나누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의 호에 ‘어리석을 우(愚)’자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의친왕 이강은 ‘칠우정(七愚亭)’이라는 이름을 정자에 내렸다. 칠우정을 중심으로 수려한 계곡 풍경 7곳 즉, 칠우대(七愚臺)‧망화담(網花潭)‧백석탄(白石灘)‧와룡담(臥龍潭)‧홍류천(紅流川)‧월파대(月波臺)‧칠리계(七里溪)를 선유칠곡이라 부른다. 그중 1곡 칠우대와 2곡 망화담의 공사가 끝나고 칠우정이 복원돼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겠다.

작은 다리 아래의 크고 흰 바위가 3곡 백석탄이다. 이후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서 4곡 와룡담, 5곡 홍류천, 6곡 월파대, 7곡 칠리계가 차례로 나타난다. 선유동천의 진짜 절경은 선유칠곡이 끝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선유구곡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1곡은 안개에 싸인 바위, 옥하대(玉霞臺)다. 신선놀음의 시작점으로 절묘한 이름이다. 이어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희고 큰 반석 위에 올라선다. 수십 명이 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여기가 2곡 영사석(靈槎石)이다. ‘신령한 뗏목바위’라는 뜻으로 반석을 뗏목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선유구곡 중 8곡 난생뢰와 9곡 옥석대는 선유동천의 최고 절경으로 꼽힌다.Ⓒ진우석

선유구곡의 절정, 난생뢰와 옥석대
영사석을 지나면 시멘트 도로를 만나는데, 그곳 길섶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붙잡는다. 큰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쿡 찍어 놓은 듯하다. 이것이 ‘장군손바위’로 선유구곡에서 수련하던 선인의 자취라고 한다. 다시 계곡을 따르면 거대한 펜션 건물이 나타나 눈이 휘둥그레진다. 펜션 앞의 계곡이 3곡 활청담(活靑潭)이다. 긴 암반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휘파람을 불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활청담 앞에서 다리를 건너 다시 계곡을 따르면 넓은 잔디밭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반석인 4곡 세심대(洗心臺)가 나온다. 발 담그며 잠시 쉬었다가 가기 그만이다. 바위에 전서체로 쓰인 ‘洗心臺’ 글씨는 춤을 추듯 아름답다.

다시 길을 나서 우람한 소나무 앞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5곡 관란담(觀爛潭), 6곡 탁청대(濯淸臺), 제7곡 영귀암(詠歸岩)이 차례로 나온다. 이어 오솔길이 끝나면서 다시 만나는 계곡은 온통 암반이다. 여기가 선유구곡의 하이라이트인 8곡 난생뢰(鸞笙瀨)다. 여울 흐르는 물소리가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생황(笙簧)이 연주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8곡 위로 보이는 바위가 9곡 옥석대(玉舃臺). ‘옥 같은 돌’이란 뜻이 아니라 ‘옥으로 만든 신발’을 말하며, 이는 득도자가 남긴 유물이라고 한다. 옥석대 위쪽에 도암 이재(1680~1746)를 기리는 학천정(鶴泉亭)이 자리한다. 학천정 뒤 바위에 새겨진 산고수장(山高水長) 글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학천정을 끝으로 선유동계곡 걷기가 마무리된다.

▲전서체로 쓴 ‘세심대’ 글씨가 춤을 추는 듯하다.Ⓒ진우석

조선시대 새로 뚫린 길, 문경새재
문경새재가 특별한 것은 다른 옛길과 달리 길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험준한 백두대간 사이로 뻗은 흙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활기가 넘친다. 우리나라처럼 도로 닦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라에서 문경새재가 흙길로 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새재는 문경 쪽 주흘관(제1관문)에서 고갯마루의 조령관(제3관문)까지 6.5㎞가 비포장이고 반대편 충주 쪽은 포장되었다.

나는 새도 쉬어 넘는 고개라는 뜻인 새재는 조선 태종 때에 새로 뚫린 길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려면 새재 외에도 죽령과 추풍령, 계립령(하늘재) 등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선호했다. 죽령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은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선비들조차 새재를 넘었다고 하니, 새재는 곧 소망의 길이란 믿음이 조선 팔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셈이다. 새재에는 관문이 세 개 있다. 문경 쪽에서 출발하면 주흘관 현판을 단 제1관문, 조곡관 제2관문, 조령관 제3관문이 차례로 나타난다.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 3.0㎞, 제2관문에서 제3관문까지는 3.5㎞ 거리다.

▲울창한 소나무가 일품인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진우석

두발로학교가 4월에 걷는 제56강 <선유동계곡과 문경새재>의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4월 22일(토요일)>
07:00 서울 출발(0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56강 여는 모임
-문경 선유동계곡(학천정) 도착
-선유동계곡 걷기
(학천정~옥하대:선유구곡 찾아보기, 총 4㎞)
-식당으로 이동(버스)
-점심식사 겸 뒤풀이
-문경새재 입구 도착
-문경새재 걷기
(1관문~2관문 왕복 총 6㎞)
-서울로 이동. 제56강 마무리모임
*현지 상황에 따라 코스가 축소‧변경될 수 있습니다.

▲<선유동계곡과 문경새재> 걷기 약도 ⓒ두발로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모자, 선글라스, 식수, 윈드재킷, 우비,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두발로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학습자료]
[문경 선유동계곡]
괴산 선유동계곡보다 계곡의 길이가 더 길고 계곡미가 빼어나며 문경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거대한 암석 사이로 맑은 옥계수가 흐르며 굽이마다 옥하대·영사석·활청담·세심대·관란담·영규암·난생뢰·옥석대 등의 경승지가 있다. 곳곳에 석각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 최치원이 쓴 <선유구곡>이 유명하다. 학천정은 조선 후기 도암 이재가 후학을 가르치던 자리에 지역 유림들이 그의 덕망을 기려 세웠다. 이재(李縡, 1680~1746)는 조선 숙종, 경종, 영조 때의 학자로 참판과 도승지를 지냈다. 학천정 뒤에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글이 눈을 사로잡는다. ‘산고수장(山高水長).’ 그만큼 아름다운 심산유곡이라는 뜻이다.

[문경새재(조령)]
문경새재는 문경의 대표적 명소로 영남과 충남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경상도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중요한 통로였다. 새재는 하도 험하고 높아서 대낮이라도 혼자서는 넘지 못하고 반드시 사람이 모이길 기다렸다가 넘었으며, 날이 저물었을 때에는 밑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에야 다음날 낮에 넘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험준함 때문에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뜻에서 이름이 ‘새재’(鳥嶺)가 되었다고도 하고, ‘새로 난 고개’의 뜻으로 ‘새재’로 부른다고도 한다.
새재는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중요성이 높아졌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신립 장군은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왜군은 죽령·새재·추풍령 세 갈래로 나뉘어 북상했다. 그중 주력부대는 새재 방면으로 길을 잡았는데, 새재에 이르러 그 험준함에 놀랐으나 정작 방비가 전혀 없었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그곳을 통과하였다. 탄금대에 이르러서야 신립 부대와 접전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신립 장군은 목숨을 바쳐 싸웠으나 결국 대패하였고 왜군은 곧장 서울로 진격하였다. 이 새재가 뚫리지 않았더라면 임진왜란에서 수도가 함락당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새재는 한양을 사수할 수 있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것이다.

두발로학교를 여는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의 시대입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도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 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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