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영환 후보와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임종인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최종적으로 결렬된 25일 안산 상록을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단일화 기대치가 낮아서이건 '그럴 줄 알았다'는 냉랭함이건, '단일화'라는 의미있는 변수가 사라진 선거구의 공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김영환 후보 캠프의 이신남 공보팀장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임종인 후보 캠프의 노세극 공동선대본부장도 "4월 울산에서야 우리 지지자냐 진보신당 지지자냐를 떠나, '단일화 안 하면 확 엎어 버린다'는 식이였지만 안산은 '되야 할 텐데' 정도인 게 현실이다"고 털어놓았다. 지역 여론조사에서 단일화 찬성 의견이 50% 정도였지만 그 강도가 4월 울산 만큼은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야권 단일화 무산, 한나라당 후보가 웃는다?
▲ 민주당 김영환 후보 ⓒ프레시안 |
김영환 후보 캠프는 여유로워 보였다. 이 공보팀장은 기자를 향해 막 작성을 마친 보도자료를 하나 내밀었다. '김 후보, 당선 가능한 후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실질적 단일화 이루어 달라. 무소속 후보 찍으면 한나라당 도와주는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안산판 대세론인 셈이다. 이 팀장은 "주말부터 천정배 의원이 움직이면서 호남표도 재결집하고 있고, 생각보다 단일화 결렬의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선은 아니더라도 한나라당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안산 표심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후보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규의 민주당 부대변인도 "승부는 났다"고 강조했다.
이 공보팀장은 또 '단일화 책임 공방'이 확산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공당에서 정정당당한 경선을 통해 공천을 받고, 여론조사에서도 1위를 달린 후보다"면서 "그런데 (임 후보 측은) 처음에는 무조건 '접으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화 협상에 적극 임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일화를 압박하는 입장을 냈을 뿐 선거 운동에는 그다지 관여치 않았던 천정배 의원이 주말을 기해 김 후보 지원활동에 나선 것도 김 후보에겐 천군만마다. 사실 천 의원과 김 후보는 미묘한 관계다.
두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 속에 나란히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김 후보가 만 43세의 나이로 과기부 장관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계가 엇갈리면서 원외인사가 됐고 천 의원은 법무장관을 지내며 대권주자 반열에 까지 올랐다.
천 의원 입장에서는 김 후보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 성향에도 차이가 있지만 공식적 절차를 거쳐 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를 모른 체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김 후보는 사석에서 "안산이 배출한 두명의 장관"이라고 천 의원과 자신의 상징성을 강조한다.
민주당 김 후보 캠프에서 직선 거리로 100여 미터 떨어져있는 임종인 후보 사무실은 분위기가 밝지는 않았다. 단일화에 '올인'하다시피 했던 임 후보 입장에선 원인제공을 누가했건 간에 결렬의 타격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 무소속 임종인 후보 측은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임종인 후보 홈페이지 |
노세극 공동선대본부장은 "임종인 찍으면 임종인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사표 방지' 논리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구호의 복사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분위기다.
노세극 공동선대본부장은 자체 여론조사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적극 투표층의 지지율은 임종인, 김영환, 송진섭 세 후보가 엇비슷했고 지지층의 충성도는 임 후보가 가장 높았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의 특성상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산 상록을의 유권자수는 11만 8000여 명이다. 투표율이 25%를 넘는다고 가정해도 3만 명 정도가 투표소로 나온다. 일곱 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세 사람의 후보가 앞서나가는형국이니 1만2000~1만3000 표면 당선을 자신할 수 있다.
누가 자기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내느냐 싸움인 셈이다. 노 공동본부장은 "단일화 결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집중적으로 알려내면서 진보성향의 지지자들을 끌어내면 승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감에서 신안산선 이야기 나오지 않더냐"
단일화 결렬을 가장 반긴 곳은 임종인, 김영환 후보 사무실 가운데에 위치한 한나라당 송진섭 후보 사무실이다.
송 후보 측 관계자는 "사실 단일화가 됐으면 손 털어야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우리 쪽사람들이나 김영환 쪽이나 10년 전부터 다 잘 아는 사이다. 단일화 무산에 실망한 표심이 일부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송 후보가 평민당 출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될 수도 있다는 독특한 논리다.
사실 송 후보 입장에서는 야권 단일화만이 난제는 아니다. 안산의 유일한 한나라당 재선의원인 박순자 최고위원과 미묘한 관계, 이진동 당협위원장과 불협화음이 여전하다. 뿐만 아니라 세가 만만치 않은 한국노총 안산시지부는 민주당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송 후보 쪽은 "조직이라는 것이, 결국 후보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이진동 위원장은 뿌리도 깊지 않다. 공조직이 이제는 완전히 다 넘어와서 가동되고 있다"면서 "한국노총도 대의원들이야 영향을 좀 받겠지만 조합원들은 여전히 우리 쪽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경남 양산에서 박희태 후보가 '지하철'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는 것과 흡사하게 안산에서 송 후보는 '신안산선'을 입에 달고 다녔다. "국정감사장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언급했다"는 레퍼토리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과천, 광명, 시흥, 군포, 의왕 등 이웃 도시보다 서울과 거리가 더 먼 안산에서 신안산선에 대한 요구는 높다. 송 후보 쪽은 "안산일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송진섭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이건 아마 다른 후보 쪽도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이기면 논란도 끝날까?
안산 시민들의 마음은 복잡해보였다. "고향은 안양이지만 이 쪽에서 이십 년 살았으니 토박이나 마찬가지다"고 말한 택시 기사는 "여기야 호남 출신 표가 최고고 그 다음이 충청도 출신 표"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작년 총선 때 (한나라당) 화끈하게 밀어줬지만 변한 것도 없고 이번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표심이 야권 쪽으로 돌아섰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야권 단일화에 대해선 "결국 안 됐다고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고만 냉소했다.
한국노총 소속 택시회사 소속이고 대의원도 지냈었다는 그는 "사람들이 김영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면서 "표가 갈리면 안 될텐데"라고 덧붙였다. 사표 심리가 작동하면 김 후보가 유리하다는 관측과 일치하는 이야기다.
호남 사투리를 쓰면서 "나는 임종인 지지"라고 자신있게 말한 50대 초반 남성도 "사표 심리가 문젠"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부인은 "김영환, 임종인 둘다 나오면 나는 투표 안하겠다"고 말했다.
사표 심리가 확산되느냐 아니면 잦아드느냐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한나라당 송진섭 후보 쪽도 촉각을 세우고 있는 문제다.
4월 울산 북구에선 '일반 유권자'들도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속사정을 구체적으로 짚으면서 결렬시 울산 정치판의 중장기적 전망을 내다봤었다. 하지만 6월 안산은 '되면 좋은데' 정도다. 결국 이같은 차이는 민주당 쪽에 단일화 결렬의 부담을 덜하게 만든 요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안산에서 '1석'을 얻은들 야권 연대를 둘러싼 논란과 논쟁은 더 격화될 수밖에 없다. 임종인 후보 캠프에 나와있는 민노당 관계자는 "나는 전략적 연대연합을 강조하는 사람이지만 당내에선 민주당과 같이 하는데 기본적으로 불신감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면서 "이번 일로 그런 분위기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공식 발표 보다 세 시간 먼저 합의 도출 사실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사인까지 한 합의서를 뒤집는 민주당이 앞으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며, 또 그 이야기를 누가 믿겠냐"고 덧붙였다.
"중앙당에 협상을 위임했다"는 주장과 달리 '적합도 조사'를 용인하지 않은 김 후보 때문에 단일화 협상이 결렬됐다고 생각하는 임 후보 측은, 전권을 위임받은 협상대표들이 서명했던 합의문을 26일 일반에 공개해 판을 흔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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