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틸러슨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 전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북한의 고조되는 핵과 미사일 위협에 평화에 대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면서 "분명히 말씀드린다.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지난 20년간 노력했지만 이는 실패했다. 미국은 1995년 이후 13억 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했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면서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최고 수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나라가 동참해야 하고, 또한 구체적인 제재 바깥에 있는 사항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핵 동결을 고리로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결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가 (북한과) 다시 대화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달라져야 한다"며 "5자회담이든 6자회담이든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군사적인 선택지도 고려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틸러슨 장관은 "우리는 군사적 갈등까지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만일 북한이 한국과 미군을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혀 선택지에서 빼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틸러슨 장관은 한미 양국은 방어적인 조치로 사드를 결정했던 것이라며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 조치는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이러한 행동(경제적 제재)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며 "중국이 사드가 필요하게 만드는, 고조되는 북한 위협에 대해 (행동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혀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이른바 '중국역할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이고 방어적 조치에 대한 부당한 압박에 대해서는 양국 정부가 양자 차원에서,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분명하고 당당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사드 배치가 추진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윤 장관은 "한반도에서 당면한 북한의 위협이라는 엄중한 상황은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는 객관적 진실"이라며 "차기 정부가 어떠한 정부가 되더라도 엄중성과 긴박성을 염두에 두면서 현명한 판단을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뒤이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한국의 정치 상황과 관련해 틸러슨 장관은 “한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 그리고 또한 민주제도의 힘에 치하를 드린다"며 "한국인들이 선출하는 차기 대통령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했던 만찬, 한국에서는 없다
앞서 16일 틸러슨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만나 남중국해 문제,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 일본이 한국‧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일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틸러슨 장관이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센카쿠 제도(尖閣諸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일‧미 안전보장 조약의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다"면서 "일방적인 행동으로 일본의 지정권을 위협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위안부 합의와 관련 통신은 "기시다 대신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에 일치한 일한 합의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틸러슨 장관은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나기도 했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틸러슨 장관과 회담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 환경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방문이 적기에 이뤄졌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틸러슨 장관은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기시다 대신과 만찬을 가지며 양국의 관심 사항에 대해 심도 깊은 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틸러슨 장관의 이같은 행보는 한국에서의 일정과는 대조적이다. 틸러슨 장관은 기시다 일본 외무상과 회담과 기자회견, 만찬까지 함께 했으나 한국에서는 회담을 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었고, 회담 이후 양국 장관은 별도의 만찬도 갖지 않았다.
이를 두고 탄핵 정국으로 접어든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 선택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든, 틸러슨 장관 입장에서는 카운터 파트가 바뀌기 때문에 굳이 만찬과 같은 일정을 넣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이에 사드 배치를 비롯해 한미 간 풀어가야 할 현안과 관련해 한국 차기 정부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김동엽 교수는 "사드를 비롯해 향후 한미 간 협의해야 할 사항들은 미국이 알아서 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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