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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하늘에 매달다

[문학의 현장] 빛(光)이 된(化) 적 없는 광화문을 향하여

바람을 하늘에 매달다
ㅡ2017년 2월 11일 노동자 행진을 위해 국회 앞에서 대나무 깃발 작업을 함께 하신 분들께
경찰과 함께
일은 길바닥에서 시작되었다
비린내 가득한 저 밑바닥
미천과 비루가 질펀하던 곳
영하의 바람 부딪치는 아침에 시작되었다
수직으로 나부끼던 대나무를
수평으로 눕히며 바람에 묻는다
봄은 어디쯤 오는가
하얀 천을 펼치자
거기 방향 없는 여백
짐승의 털을 모아 만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쓴다
봄이 온다고 쓴다
산맥을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온 문장들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를
쓰면서 바람에게 묻는다
우리들의 바람은 무엇인가
대나무의 배후는 우리들의 마을
대나무를 자를 때마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누가 우리의 수직을 부러뜨리는가
털어낸 댓잎들이 마을로 떨어졌다
천은 서둘러 펄럭이고 싶다
좀 더 기다리라 다독거리며
대나무에 깃발을 단다
헝겊 쪼가리가 깃발이 되는 순간
바람을 푸른 하늘에 매단다
하늘의 명을 흔들기 위해
몸부림을 매달며 하늘을 본다
깃발을 세운다
촛불이 수평으로 나부끼고 있다
평등으로 흐르는 강
펄럭이는 불꽃이 피어나자
숲이 완성되었다
낫을 숲에 버려두고 왔지만
마디마디 스쳐간 낫질을 기억하며
사람들 깃발 들고 나아간다
바람을 모으며 나아간다
한걸음 한걸음
평등의 보폭으로 한강을 건넌다

빛(光)이 된(化) 적 없는 광화문을 향하여
썩은 권력의 중심을 향하여

ⓒ프레시안(최형락)

시작노트

현장을 스케치하는 시는 생동감을 노리다보니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날 함께했던 분들과 오래 간직하고 싶어 욕심을 냈다. 역사의 현장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회 앞 노동자 대회 현장에서 천에 붓글씨를 쓰고 대나무에 깃발을 매다는데 어찌 가슴이 벅차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 대나무는 최시형이 동학혁명 2차 봉기를 명령했던 옥천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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