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주 들어 일부 보수 성향 언론에서는 '혼란'과 '불안'에 대한 우려에 지속적으로 지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정치적 혼란? 사실 당연하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가 비었는데, 그런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혼란'이 일까?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어딘가에 불을 지른다든가, 특정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공격한다든가,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든가 하는 범죄 행위를 모의한다면, 이는 무슨 '혼란' 같은 게 아니라 '테러'라고 명명돼야 할 일이다.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경찰의 경비와 수사가 필요하다.
그럼 만약 역시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법적인 집회를 벌이면서 헌재를 비난하고 무효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사회 혼란'일까? 나아가 우려할 만한 '국론 분열'일까?
아니. 이 경우에는 경찰의 경비나 수사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닌 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다.
먼저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고 해서 '태극기 집회'를 촛불집회와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언론의 그간 보도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9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76.9%에 달한 반면,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이 기관의 앞선 조사에서도 탄핵 찬성 의견은 대략 80% 전후다. 다른 기관인 '한국갤럽'의 지난 3일 조사에서 역시 탄핵 찬성이 77%, 반대가 18%로 나왔다. 통상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의견이 다른 의견을 앞서는 비율이 2:1 정도가 되면 '압도적'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도 절대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본다. 응답자의 과반이나 2/3 등 절대 다수를 형성하지 못한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조사 수치로 보더라도 '절대적 소수'에 불과하다.
(아, 혹시 실제로는 탄핵 반대 의견이 훨씬 높은데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혹시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공론장에서 같이 논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당신의 건강을 빌지만, 더 읽거나, 아니 보거나 댓글은 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창을 닫아 주기 바란다.)
참고로 지난 2009년 교육방송공사(EBS) 여론조사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가운데 무엇을 믿느냐는 조사를 했을 때 30.6%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2년 한국갤럽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진화론은 45%, 창조론은 32%가 나왔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 18~20%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보다도 낮다.
물론 소수 의견이라고 박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모든 공민에게 천부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다. (불행히도 이 원칙이 때로는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사태다.) 따라서 박근혜 씨에 대한 헌재의 대통령직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실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는 허경영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이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씨가 결백하고 무죄라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무슨 형사 처벌을 받거나 적법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물론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적합한 자리'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정치권에서는 사회 통합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포용'과 '이해'를 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탄핵 불복 세력은 어떤 공인된 사실도, 합리적 근거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박근혜 씨가 결백하다고 앞뒤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의 토양이 '똘레랑스(관용)'이라도, 이걸 어떻게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인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불필요한 일이다. 그냥 하게 놔두면 된다. 다만 '그게 공론장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좀더 엄중히 판단하면 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무관심이 최선의 해법이다.
비교해 보자면, 오늘 이 순간에도 국회 앞이나 법원 앞, 검찰청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1인 시위는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 가치, 이른바 '뉴스 밸류(news value)'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기국' 집회는 왜 달라야 하나?
보통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상은 둘 중 하나다. 다수에 의한 지배적 현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거나. 촛불집회는 둘 모두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운동이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탄핵 불복 집회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탄핵 불복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사회 혼란'이 아니며, 단지 '소수의 불만'일 따름이다. 그나마 소수자 인권 운동 등과는 달리, 이 불만에는 합당하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소수의 불만'을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크게 받아 울릴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는 물론 각 언론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평가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이른바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면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모든 한국민은 (원칙적으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고, 따라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든 이른바 '대선 불복'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다만 우리 언론과 정치권이 이런 주장에 시민권을 부여해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봤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당시 발휘됐던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성이, 탄핵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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