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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랑 비슷하게 생겼냐. 재수 없다"

[작은책]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디르셰 디탈(36세) 씨는 네팔 람중이 고향이다. 그는 고국에 아내와 어머니, 동생을 두고 2010년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 수많은 나라 중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이미지가 좋고 다른 나라에 비해 월급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우다야 라이(46세) 씨 역시 네팔 사람이다. 라이 씨는 2001년에 처음 한국에 왔고 이곳에서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디탈 씨와 라이 씨를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라이 씨의 외모는 한국인과 흡사하다. 같은 네팔 사람인 디탈 씨와 외모가 많이 다른 것은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 씨가 말했다.

"저는 한국에 오는 순간부터 무시를 당했어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주제에 왜 우리(한국인)랑 비슷하게 생겼냐고, 재수 없다고 했어요."

라이 씨는 서울 창신동 봉제 공장에 취직했다. 한국인들은 한 가지 고정된 일을 하지만, 이주 노동자에게는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시켰다. 미싱질하는 사람에게 옷감 등 자재 갖다 주는 일도 하고, 구인찌(바지에 허리띠가 들어갈 수 있게 만든 고리) 박음질도 했다. 한국인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했고, 고된 노동이었지만 견뎠다. 하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한국인 동료들에게 네팔에서 왔다는 이유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얘네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어.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게 행운이지, 하하하하' 하고 비웃었어요. 심지어 노조 상근자들 중에서도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게 로또 당첨된 거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디탈 씨 역시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첫 일자리는 경기도 포천의 한 섬유 공장에 들어갔는데, 그곳 반장이 식사 시간마다 이렇게 말했다.

"'야! 너희 나라에 김치 있어?' '없어요. 김치 있지만 달라요.' '너희 나라에 김 있어?' '우리나라에 바다 없어요. 어떻게 김이 있어요.' '밥 있어?' '밥 있어요.' '밥 있으면 여긴 왜 왔어?' 했어요. 그럼 제 마음도 안 좋아요."

뿐만이 아니다. 일을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욕부터 했다.

"처음 하는 일이니까 모르잖아요. '반장님 이거 어떻게 해요?' 하면, '야, 씨발. 너 그것도 몰라?' 하고 너무 나쁜 말 써요. 그래서 다른 사람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 했어요."

▲ 네팔 노동자 우다야 라이 씨(왼쪽)와 디르셰 디탈 씨(오른쪽). ⓒ작은책(정인열)

한국인들이 이주 노동자를 차별하는 이유로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만져 볼 수 없는 돈을 한국에 와서 벌기 때문에 어떤 부당함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식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도 노동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존재로, 더 나아가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며 혐오를 조장한다.

라이 씨는 입국한 순간부터 차별을 당한 뒤로 앞으로는 절대 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기업이 필요해서 사람을 썼으면 사람답게 대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신동 봉제공장 거리에서 '당신들도 우리도 이런 권리가 있다' 하고 알려 주는 게 제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라이 씨는 지금 이주노조 위원장이다.

디탈 씨는 네팔로 돌아갔다 작년 8월에 재입국했다. 그리고 포천의 한 석공공장에 취직했다. 디탈 씨는 건축 자재로 쓰이는 대리석을 연마하는 일을 했다. 기계로 돌 평면을 매끄럽게 깎으면 평면을 기계에 흡착시켜 이동 후 층층이 쌓는다. 엄청난 무게의 돌이 흡착 기계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위험이 높다. 돌가루와 소음도 문제고 하루종일 서서 힘을 많이 써야 한다. 이 일을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주 6일을 했다. 게다가 한 달 중 절반은 밤 9시 반까지 연장 근무를 했다. 그러니 몸이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일한 지 두 달 만에 오른쪽 팔에 통증이 생기고 팔이 부어올랐다. 너무 심한 통증에 일을 못 할 지경이 되어 병원에 가니, 의사는 힘을 덜 쓰는 일을 하라고 했다. 이럴 경우 보통 그냥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중국 동포는 제외)들은 사업장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사업주의 이직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용허가제'인데,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업주의 폭행, 차별, 임금 체불, 산업 재해, 성폭행 등이 발생해도 이주 노동자의 뜻대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허가 없이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불법 체류자(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되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회사로도, 길에도 검문 검색하러 나와요. 단속에 걸리면 감옥 같은 외국인보호소에 갇혀요. 비행기 표가 마련되면 추방되는데, 비행기 표는 자비로 구해야 돼요. 돈이 없는 사람들은 더럽고 좁은 방에서 감시받으며 지냅니다."

이주 노동자는 최장 4년 10개월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데, 최초 3년 체류 후 사업주의 허가가 있어야 1년 10개월을 더 체류할 수 있다. 이렇게 체류 권한과 이직 권한까지 모두 사업주가 갖고 있으니 사업주는 더욱더 이주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괴롭힌다.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이직 허가다. 라이 씨가 말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이주 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저희는 주장하는 거예요."

▲ 디탈 씨가 석공공장에서 대리석 연마를 하고 있다. ⓒ디탈
디탈 씨 역시 몸이 아파 사업주에게 이직 허가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최소 6개월은 일해야 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했다. 디탈 씨는 의사의 진단서를 사업주에게 제출하려고 포천의 여러 병원들을 방문했지만, 진단서 발급도 거절당했다. 환자이기 전에 이주노동자라서 차별을 당한 것이다. 결국 그는 의정부의 한 대형병원에 가서야 겨우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주는 완고했다. 일을 그만두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디탈 씨는 진통제를 먹으며 2개월을 더 버티고 일했다. 그러나 약속한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이 되어도 사업주는 허가를 해 주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사업주에게 다시 이직 허가를 요구했다.

"한 달 일한 돈으로 병원 가고 약 사고 그렇게 하면 돈도 없어요. 돈도 없고 나중에 나 죽으면 어떡해요. 그런데 사장은 네 마음대로 해, 하고 사인 안 해 주고 있어요."

실제로 이 공장의 또 다른 네팔 노동자가 4년간 진통제만을 먹고 일하다 전신이 마비됐다.

"그 사람 이제 스물아홉 살인데, 침대에 누워서 비행기 타고 네팔로 돌아갔어요. 병원비만 1000만 원 나왔는데, 한 푼도 보상 못 받았어요."

사업주의 악행은 캐도 캐도 끝이 없다. 디탈 씨가 저렇게 한 달 일해 받는 월급은 연장, 휴일 근무수당을 포함해 월 210만 원. 수당 등을 다시 법정 최저임금에 맞추어 계산해 보니 사업주는 다달이 70만 원을 덜 지급했다. 게다가 이주 노동자들과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같은 일을 하는 한국 노동자에게는 80만 원이 더 많은 290만 원을 지급했다. 기숙사 환경도 열악하다. 숙소에 화장실도 마련해 주지 않아 노동자들은 대소변을 근처 뒷산에 가서 해결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부당함에도 이들이 호소할 공적인 기관은 있으나 마나다. 디탈 씨가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려고 하니 담당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거는 사장님이 사인해야 다른 데 갈 수 있어요. 안 그러면 죽으나 사나 일해야 돼요."

정부가 운영하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빈번한데, 이주 노동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 사건을 접수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라이 씨는 설명한다.

이런 한국의 현실 속에서 디탈 씨에게 행복했던 순간은 있었을까?

"처음 이직 허가받았을 때요."

겨우 그 정도라니,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다. 라이 씨는 내게 한 이주 노동자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농담이 아니에요. 이것 보세요. 사장한테 이직 허가받은 날 우리는 파티하고 춤춰요."

한국의 이주노동자 수는 약 100만 명이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이니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는 그 전권을 한국인 사업주들에게 주었다.

"돈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매도하지 마세요. 이주노동자 무시하지 말아요."

라이 씨는 인터뷰 내내 화가 나는지 가슴을 치며 몇 번이고 말했다. 노동자의 성별, 국적,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노동조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6조는 있으나 마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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