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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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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정운찬

[법치의 표리(表裏)]<23>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정운찬씨에게 버림받은 민주당의 모습은 대한민국 민주세력의 비참한 현주소다.

수년 간에 걸친 간절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중도보수를 향한 민주세력의 소프트랜딩을 상징하는 방향타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인물은 의외로 중도실용을 몇 번 언급했을 뿐인 이명박 대통령의 총리직 제의를 덥석 수락하고야 말았다.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광야가 아니라 궁정으로 나아가는 일견 배반에 가까운 선택을 하게 한 것일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비명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리고 있다. 용산참사도 그렇고, 시국선언도 그렇고, 미디어법도 그렇다. 특히 황망하게 세상을 등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 민주세력 전체는 광장을 메운 비명소리에 자발적으로 함몰되기까지 했었다.

정운찬, 트로이 목마?

그러나 그러는 동안 정운찬씨와 그로 상징되는 세력의 마음속에는 전혀 다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비명소리가 시대를 보는 그들의 정치적 감각을 20년 전으로 후퇴시켰던 것이 아닐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20년 전에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해 기득권세력과 손을 잡는 일종의 트로이목마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수구적인 관료주의세력이 다시 준동하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그나마 시장주의라도 지향할 가능성이 있는 보수적 집권세력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 ⓒ프레시안
3당 합당을 받아들였던 YS도 그러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YS의 청을 받아들였던 박세일씨나 이회창씨도 그러했다. YS의 구호였던 '문민(文民)정부'나 박세일씨의 구호였던 '세계화', 그리고 이회창씨의 구호였던 '법치주의'는 그들이 나름대로 트로이목마작전을 펼치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국민대중에게 전달하는 공개된 암호였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정운찬씨의 선택을 배신으로 몰아붙이면서 신경질적인 흠집내기에 집착하는 것은 민주세력의 진로설정에 별로 유익하지 못하리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이제 권력의 분기점에 서게 된 정운찬씨가 자신의 정치노선을 어떻게 구호화 하는가이다. 그리고 특히 그 구호에 입각하여 박근혜씨로 상징되는 집권여당 안팎의 경쟁세력을 무어라고 호명하는지가 분석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YS처럼 성공할지, 다른 사람들처럼 실패할지는 전적으로 일생일대의 정치적 도박을 시작한 정운찬씨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

DJ의 경우

물론 호기롭게 거리로 나갔다가 황급히 국회로 돌아온 민주세력에게 정운찬씨의 정치적 미래를 가늠해 보는 것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기습적인 3당 합당 이후 사면초가에 몰린 DJ가 느꼈을 법한 정치적 고립감이 지금 민주세력 전체를 휘감고 있다. 아니 현재의 위기감은 20년 전보다 더욱 극심한 것일 수도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는 2등이라도 했었지만, 자칫하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는 그것마저 놓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세력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서도 1990년대의 DJ가 3당 합당 이후에 선보였던 정치적 행보는 상당히 유력한 참고자료가 된다. ① 치욕을 무릅쓰고 단기적인 세력축소와 패배를 감수하는 것 ② 그러면서 꾸준히 야당통합, 재야흡수 등을 통해 정치적 외연을 넓히는 것 ③ 그리하여 종내는 집권세력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지지블록을 형성하는 것 ④ 결정적인 승부처에 가서는 집권세력의 분열을 역이용하여 과감한 협상을 통해 수권세력을 구성하는 것 등등. 서거하기 직전까지 DJ가 진보정당까지를 포함하는 민주세력의 대통합을 거듭 주문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오랜 정치역정에서 몸소 체득했던 정치적 생존방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민주세력은 DJ의 전범을 따를 수 있을까? 문제는 정운찬씨에게 버림받은 민주당이 보여 주는 것처럼 현재의 민주세력은 1990년대의 DJ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정희씨에 당당히 맞섰던 40대 대통령후보의 신화도 없고, 군사독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납치, 연금, 수형, 사형선고, 망명을 감수해야 했던 인동초의 역경도 없다. 고작 DJ 밑에서 한 몫을 했었다는 경력만을 가지고 어떻게 감히 국민대중에게 앞으로 닥칠 고통스런 시간들을 함께 견뎌내자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현재의 민주세력은 지리멸렬 그 자체다. 지난 정부에서 자신들이 추진하던 개헌논의에서 주도권을 상실해 버린 것도 그러하고, 행정구역개편과 같은 핵심적인 정치적 의제에서 한 발을 빼고 있는 것도 그러하다. 최근의 세종시 문제에서 보듯이,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의 대의까지 훼손되고 있는 마당에도 처절하게 맞서겠다는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 내부에 존재하는 고만고만한 정치인들 사이의 경쟁은 서로를 견제하는데 모든 기력을 소진해버리는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의 씁쓸한 경연일 뿐이다. 민주세력은 국민대중의 외면을 받았던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의 당내경선을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누군가가 정운찬씨에게 그 나름의 트로이목마작전을 시작한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영입해서 불쏘시개나 흥행카드로 쓰려던 민주세력의 허접한 집안사정을 거론하기 십상일 것이다.

DJ는 어떻게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나?


▲ 1971년 40대 대선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김대중도서관

이처럼 곤혹스런 상황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뚜렷이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1970년대 초의 젊은 DJ이다. 지금 민주세력 내부에서 옥신각신하는 정치인들에 비하여 당시의 DJ는 더욱 내세울 것이 없는 정치인이었다. 비록 장면 전 총리의 후원을 받던 민주당 신파의 촉망받는 신인이기는 했으나, 고졸 학력에, 정치경력도 오래지 않았고, 정치적 성취에서도 비교우위를 보장할 수 없는, 그리하여 40대의 기수들 중에서도 언제나 이철승씨와 김영삼씨보다 후순위로 호명되는 것이 당연했던, 분열에 익숙한 만년 야당의 소장정치인들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러던 그가 단박에 박정희씨의 다음 시대를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시운(時運, fortuna)과 용기(virtus)를 제외하고 말하자면, 나는 단연 그의 정치적 상상력(imaginatio)을 꼽고 싶다.

경제개발계획의 성공과 3선 개헌으로 거칠 것 없이 내달리던 박정희씨에게 젊은 DJ는 시대를 더욱 앞서가는 정치적 상상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박정희씨가 3선에 성공하면 총통제로 나갈 것이라는 예측, 대북대결노선을 과감히 수정하여 평화통일노선으로 나가야 한다는 선언, 관료와 재벌이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이 중심이 되는 대중경제론의 제창 등. 직감과 순발력이 탁월했던 YS에 비하여 젊은 DJ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미래의 청사진을 국민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승부하는 상상력의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객관식 개헌논의를 뛰쳐나가는 상상력이 정답

이렇게 보자면,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지금도 민주세력 안팎의 누군가에게는 극적인 도약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가 젊은 DJ처럼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청사진을 가지고 승부를 벌이기로 한다면, 그 정치적 상상력을 적용할 정치적 의제들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 여러 방면으로 집권세력이 추진하기 시작한 개헌문제를 생각해 보자. 민주세력이 취하고 있는 것처럼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장이 스스로 만든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 개헌안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개헌논의를 방관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래 가지고는 그들 자신이 추진했던 3년 전의 원포인트 개헌론까지 진정성을 조롱받게 될 뿐이다. 오히려 전향적으로 개헌논의의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단, 그 경우에는 반드시 젊은 DJ와 같은 정치적 상상력이 개헌논의의 전선 확대에 수반되어야 한다.

개헌논의에 있어서 정치적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할 핵심 논점은 4년 중임제 대통령제와 이원정부제, 그리고 현재의 5년 단임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객관식 문제풀이는 철저히 박근혜씨와 정운찬씨, 또 정몽준씨와 포스트 DJ를 노리는 누군가의 정치적 샅바싸움에 객체가 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핵심 논점은 개헌논의와 평화적 통일방안 또는 한반도를 통일한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을 연결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내놓은 양자택일 또는 3지선다형 해법이 한반도의 평화적인 재통일이라는 우리 시대 최대의 정치적 이벤트를 수용할만한 준비를 담고 있는가를 과감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DJ와 같은 정치적 상상력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와 같은 개헌논의의 전선확대는 젊은 DJ와 같은 정치적 상상력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현재와 같은 초집권적 단일정부체제로 한반도의 평화적인 재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한반도의 재통일과 관련하여 또 한반도를 통일한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로서 다수주의적 권력제도와 합의주의적 권력제도 가운데 무엇이 더 바람직한가? 그 권력제도를 실제로 운영할 정당체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다시 그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선거제도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그 각각에 대하여 국민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미래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민주세력의 정치적 인물들 가운데 누군가가 젊은 DJ와 같은 정치적 상상력을 품는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민주세력을 버리고 나름의 트로이목마작전을 시작한 정운찬씨의 선택이 도리어 정치적 호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적인 재통일과 연결시켜 개헌논의의 전선 확대를 추진하는 정도의 정치적 상상력이 있다면, 경제문제, 국방문제, 외교문제, 교육문제, 주택문제, 환경문제, 사회보장문제 등등에 대해서도 그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에 비하여 지금 스스로를 목마 속에 가둔 정운찬씨에게는 정치적 상상력이 아니라 정치적 책략으로 승부하는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상상력이 아니라 책략에 관해서라면 그는 어디까지나 상아탑을 막 벗어난 정치적 아마추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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