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원생에게 "우리는 천황(일왕)의 충량한 신민이 되겠다"는 군국주의 시절 '교육칙어'를 암송케 하고, "아베 힘내라"는 용어를 가르친 한 유치원의 엽기적 교육 방식이 화제 된 바 있다. 아이들에게 협동 정신을 고양한다며 사실상 얼차려를 체육 시간에 시키기도 한 이 교육 시설은 오사카의 쓰카모토 유치원이다. 한국 언론에도 학부모에게 혐한 편지를 보낸 곳,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되찾자는 내용의 암송을 원생에게 강요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 유치원 소유자는 최근 학교부지 특혜 분양 논란으로 아베의 정치 생명까지 위협한 모리토모학원이다. 모리토모학원은 초등학교를 설립코자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해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를 명예교장으로 위촉하고, 그 학교명을 '아베 신조 기념 초등학교'로 홍보해 모금 활동을 벌였다.
일본을 발칵 뒤집은 이 스캔들의 조사 결과, 모리토모학원의 이사장은 '일본회의'라는 단체 소속 회원이었다. 일본회의는 어떤 단체이기에 아베라는 특정 정치인을 비상식적 수준으로 지지하고, 혐한 발언을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주입할까.
'군국주의 시절로 돌아가자'
일본에서도 큰 화제가 된 <일본 우익 설계자들>(스가노 다모쓰 지음, 우상규 옮김, 살림 펴냄)은 일본회의의 실체를 파헤친 르포르타주다. '평범한 우익 샐러리맨'을 자처하는 저자는 군국주의 시절까지 회귀해 올라간 후, 최근 일본 우경화의 근원이자 아베 정권의 주춧돌을 놓은 핵심이 바로 일본회의라는 수상한 단체라고 이 책에서 결론짓는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회의의 주요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황실을 중심으로 삼아 우러러보며 동질적인 사회를 창조해야 하지만, 쇼와헌법(현행 일본국헌법)이 이를 방해하므로 개헌하고, 이참에 쇼와헌법의 부산물인 지나친 가족관이나 권리의 주장을 억제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국가의 명예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수행하고, 국가의 명예를 책임질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을 실시하며, 국방력을 강화하고 자위대의 적극적인 해외 활동을 실시해, 각국과의 공존공영을 도모한다.'
간단히 말해, 조선을 식민화하고 아시아를 짓밟은 태평양전쟁 시기 군국주의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목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할 목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회의는 아베 정권 각료의 80% 이상을 지원하는 큰 힘을 지닌 단체다.
일본회의는 기존 진보 시민운동 단체를 모범으로 삼아 그들의 풀뿌리 운동 방식을 고스란히 흡수해 몸집을 키웠다. 이에 더해 종교세력의 힘과 자본력을 덧붙여 단숨에 일본 정치계를 뒤흔드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했다. 일본회의 임원 62명 중 24명이 종교관계자다. 신도와 불교, 기독교를 가리지 않는다. 종교단체가 이들 힘의 중요 원천이긴 하나, 특정 종교색은 사실상 없는 조직인 셈이다.
일본회의는 1974년 출범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를 모체로 1997년 설립됐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논란을 일으킬 때다. 이들이 가장 먼저 바꾼 일은 '원호 법제화'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천황제의 상징인 원호제를 서서히 잊어가기 시작했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이 흐름을 바꿨다. 지방의회의 의견서 채택 운동, 전국 각지의 원호법 채택 요구 시위 등을 조직해 운동 시작 후 불과 2년 만에 원호법 입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원호제는 지금도 많은 일본인이 '2017년' 대신 '헤이세이(平成) 29년'에 익숙한 이유이자,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제다. 당시 이 운동의 주축이었던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핵심이 바로 종교단체였다.
이 무렵 '일본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을 총괄한 이는 훗날 일본회의의 정신적 지주로, '참의원의 교황'으로 불리며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 노동상을 지낸 무라카미 마사쿠니다. 당시 그는 나가사키대학에서 좌파 학생운동권을 몰아낸(학원 정상화 운동) 극우 학생운동 세력을 흡수해 조직을 키웠다. 무라카미 마사쿠니는 헌법 개정(자위권 확보)과 우생보호법(1948년 장애인이나 나병환자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허용한 차별 법안으로 1996년 모체보호법으로 법률명 변경) 개정을 목표로 하는 극우주의자다.
무라카미 마사쿠니와 함께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이끈 이는 나가사키대학 학원 정상화 운동의 핵심 인물 가바시마 유조다. 가바시마 유조는 이후 극우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며 현재 일본회의의 사무총장까지 올랐다.
일본회의는 왜 야스쿠니에 집착하나
고이즈미 정권부터 주변국과 일본 간 외교 마찰의 주된 원인이 야스쿠니신사 참배였다. 아베 정권 역시 야스쿠니를 빠뜨리지 않는다. 지난 2015년 4월 21일 에토 세이이치 총리보좌관이, 23일에는 아리무라 하루코 여성활약담당상, 야마타니 에리코 국가공안위원장,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이 야스쿠니를 찾았다. 지난해 말에도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아베는 2013년 12월 직접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일본 법원 역시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며 국내외 전몰자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연거푸 아베의 손을 들며 극우파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주류 세력이 야스쿠니를 비호하는 이유가 있다. 책은 과거 극우 운동의 실패 경험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일본회의의 전신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원호법 제정 운동으로 큰 성공을 거뒀으나, 실패도 맛봤다. 야스쿠니신사를 국가 시설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야스쿠니신사법 제정 운동'이다. 정교 통합 국가로 나아가자는, 사실상 민주주의의 중요 원칙을 넘어서자는 내용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은 일본회의가 의회를 움직여 야스쿠니를 지속적으로 부각하고, 한국 등 다른 나라와 마찰을 불사하며 '천황국 일본'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야욕을 지속적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논리는 원호법 법제화처럼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한국 극우 세력이 박정희 신화를 현재까지 끌고 오는 것과 다름 없어 보인다. 두 나라 극우 세력이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고 신화화한 민족 국가 신드롬에 빠져 다른 이들을 억지로 그 흐름에 동참시키려는 모습이 같기 때문이다.
일본회의는 아베의 최순실?
극우 관변단체와 특정 극우 세력이 폭력과 시위 등을 통해 극우주의자의 이데올로기를 때론 뒷받침하고, 때로는 강화해 여론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일본회의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책이 어디까지나 연재글을 묶은 결과물이고, 그 덕분에 책으로서 완결도가 조금 떨어짐에도 한국에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아서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극우의 거울이 일본회의라는 심증을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가장 잘 확인 가능한 대목이 개헌 논의다. 개헌 운동은 야스쿠니신사법 제정과 함께 일본의회가 40년 넘게 공들인 운동이다. 더 정확히는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헌법 9조(평화헌법)를 무력화하자는 논의다.
지난 2015년 3월 19일, 일본회의의 산하 조직인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 연차총회에는 차세대당의 히라누마 다케오, 자민당의 후루야 게이지, 민주당의 와타나베 슈, 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 등 거물급 의원이 참석해 세를 과시했다. 이들은 그 해 '1000만명 찬성자 획득 운동 추진' '지방의회에서 의견서 채택 운동 추진' 등을 한해 운동 방침으로 정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운동 목표가 곧바로 자민당의 2015년 당 운동 방침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점이다. 2015년 자민당은 '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하는 보수 정당으로서의 자부심'을 전면에 내세우고 군사국가화 추진을 본격화했다. 일본회의의 방침이 의회를 통해 여론화하고, 이 움직임이 실제 법제화 움직임으로 이어진 셈이다. 책은 여러 대목에 걸쳐 자민당 주류 의원이 일본회의의 압력에 적극 동참하거나, 때로는 등 떠밀려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했음을 설파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몸살을 앓는 오늘날 한국을 실제 움직인 이가 박근혜 대통령의 뒤에 숨은 최순실과 기타 관변 극우단체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책은 이 같은 개헌 움직임이 1965년 극우 학생운동 조직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시작됐음을 짚어낸다. 전문 탐사보도 작가도 아닌 글쓴이가 장기간에 걸쳐 정리한 부분으로, 전공투로 대표되는 일본 좌파 학생운동 전성기에 이미 극우 학생운동 진영의 세력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경우, 군부독재 시기 독재 정부의 지원 아래 관변 백색테러집단이 역사를 흔들었다면, 일본은 민주주의 체제 전환 후 줄곧 천황 중심 군국주의 시절을 염원하는 이들이 사회에 뿌리 깊이 안착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이 책은 현재 일본 각지에 자리한 극우화 움직임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 역사적 실체와 정치적 흐름을 짚어나간다. 오늘날 극우화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일본 정계의 움직임을 거시적 관점에서 짚어볼 통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 정계의 우경화를 일본 사회 전체의 우경화로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잊지 않는다. 2014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이 비록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득표율만 놓고 보면 오히려 야당·무소속 합계 득표율(50.46%)이 자민당·공명당 연립 정권 득표율(49.54%)보다 높았다는 점, 개헌에 반대하는 실즈(SEALD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 국내에는 실즈의 활약상을 다룬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실즈 지음, 정문주 옮김, 민음사 펴냄)라는 책이 출간되었다)의 존재 등을 거론하며 일본회의에 맞서는 일본의 양심이 여전히 단단히 자리하고 있음을 실증한다.
한국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순식간에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하던 나라에서 전쟁 놀음의 한복판에 스스로 들어가는 위험국가가 됐다. 언론의 극우화는 극에 치닫고 있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그에 맞서는 모든 움직임을 ‘빨갱이’로 매도 가능한 수준으로 극성을 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한국 역시 위험한 수준으로 우경화하는 국가임을 확인 가능하다.
<일본 우익 설계자들>은 그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보게끔 돕는 책이자, 그럼에도 공포에 휩쓸리지 않고 오늘날 일본의 현실을 차분히 조망하게끔 돕는다. 한국의 우경화가 일부 권력층과 박정희 신화에 빠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부 단체에 의해 주도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우경화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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