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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론과 개헌안, 모두 다 '주객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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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개헌론과 개헌안, 모두 다 '주객전도'

[법치의 표리(表裏)]<22>국회 자성과 정치개혁이 선행요건

개헌론의 선봉에 선 김형오 국회의장의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그동안 연구한 개헌안을 국회의장에게 보고한다. 보고서 자체가 막 공개되서 그 내용은 언론의 기존 지엽적인 보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전면적 검토는 시기상조다.

특히 사실보도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못한 우리나라 언론의 수준을 고려할 때 언론보도만으로 이 사안에 대해 비평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헌정질서에 중요한 현안에 대해 마냥 정보부족을 내세워 나몰라라 할 수도 없어 언론보도가 대개 일치하고 있는 핵심부분에 대해 헌법학도로서 걱정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부단히 제기되는 개헌론의 원인진단과 처방이 과연 적절하고 합리적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대통령 힘이 세서 문제인가?

▲ 현행 개헌논의는 대체로 대통령의 권한 일부를 국회로 이관하는데 집중되고 있다ⓒ프레시안

국회에서 주로 제기되는 개헌의 필요성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집중되고 있다. 바로 대통령에의 권력집중이 재임중 국정의 안정이나 효율성을 저해하고 퇴임후에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당연한 수순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부형태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연구안의 경우에도 국회에 행정권을 종속시키는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혹은 이원정부제)안과 국회의 위상을 대폭 강화한 순수 대통령제 두 가지가 정부형태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과연 현행 헌법에서처럼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변형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권력을 전횡하는 지위에 있는지, 그것이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에 따른 것인지 개헌론자들의 원인진단이 적절한 것이지 따져보아야 한다.

세 가지 예만 들어 검증해 보자. 첫째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걱정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은 권위주의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개헌을 해야 하는지는 따로 논해야 한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심지어 기무사까지 정치사찰에 앞장서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안통치에 대한 비판여론이 드세지만 이런 현실은 집행권을 가진 행정수반이 권한을 남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지 현행 대통령제에만 고유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 헌법하에서도 국회가 정부통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거나 입법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제도정비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지 현행 대통령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는 두 가지 권력구조안을 보더라도 공안통치를 예방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 않는다. 국회 다수파가 지지하는 총리가 행정수반이 된들 공안통치를 막을 수 있는가? 결국 이명박정부의 반인권 반민주정책이 초래하는 정치현실은 대통령의 제왕적 지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국회가 여대야소이고 국회가 효과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추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화적 현상이다.

국회 탓이 더 큰 것 아닌가?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입법권을 활용하여 얼마든지 대통령의 공안통치의 손과 발로 기능하고 있는 기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검찰과 경찰을 분권화하고 정보기관의 국내정치개입을 막을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국회가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권한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정치현실과 문화가 문제이다. 더구나 이 문화적 문제는 헌법상 대통령의 지위를 약화시킨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제왕적 총리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지만 총리는 국회의 다수당이 선출하므로 국민주권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공안통치라도 더 질이 나쁜 결과이다.

대통령의 권력남용 문제가 현행 헌법상 정부형태의 문제가 아님은 두 번째 예를 들어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현재 정국을 경색시키고 있는 미디어법의 경우를 예로 보자.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파동이 벌어진 것인가? 대통령의 어떤 헌법상의 권한이 문제가 되었나? 대통령의 영향력에 의해 여당이 중심이 되어 미디어법을 밀어붙인 것이 대통령의 헌법상의 권한 때문이었나?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 국회가 못하겠다고 하면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대통령만 문제라는 것인가? 국회의 권한을 확대한다고 입법전쟁이 방지될 수 있나?

혹자는 정치적 역할관계를 들어 국회를 위한 변명을 시도할 지 모른다. 차기 공천을 고려하면 현실적 권력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왜 공천 때문에 대통령의 눈치를 보아야 하나? 특히 대통령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대통령의 권한때문인가? 총리에게 실권은 주는 사실상의 의원내각제로 가면 국회의원들의 위상이 강화되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가? 이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현행 헌법상 국회의원들이 헌법이 부여한 소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의 당내민주주의가 제도로 운영되어 공천권이 민주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임이 드러난다. 문제는 헌법상의 대통령의 권한이나 정부형태가 아니라 정당제도나 국회의원의 무능 때문인 것이다.

또 다른 예는 개헌론이 제기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국회이관론이 나도는 감사원의 경우이다. 회계검사권을 가진 감사원이 국회로 오기만 하면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국회쪽 개헌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국회에 감사권이 없어서 문제인가? 헌법상 국정조사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국정감사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회이다. 그런데 왜 감사원마저 필요한가? 감사원이 국회소속이 되면 행정부는 마음대로 감사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민주주의에 바람직한가?

현실적으로 여당이 반대하는 감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행 제도하에서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한 들 변하지 않는다. 감사원이 이관하더라도 여당이 반대하는 것은 감사하기 힘들다.

더구나 감사원의 회계검사권은 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국회의 예산결정권에 대한 견제권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현대민주주의의 흐름이다. 따라서 감사원의 독립성이 오히려 필요한데 국회로 이관하는 것은 현행의 정치문화하에서 오히려 감사원의 독립성을 저해하거나 업무의 비효율성을 극대화할 뿐이다. 결국 현행 제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현행 제도하에서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무능이나 무지가 문제라는 결론이 된다. 정부형태를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개헌=만병통치약만' 주장은 결국 책임회피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의 개헌론자들이 개헌은 한국형 정치위기의 만병통치약인 것같은 인상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형태의 변경이 관건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형태는 정부구성에 관계하는 선거제도, 정당제도, 그리고 이 모든 제도를 운영하는데 관여하는 행위자들의 의식이나 행태를 포함하는 문화적 요인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은 헌법학적 상식이다. 연구안이 권력구조의 유력한 개선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이원정부제는 무늬만 대통령제이거나 이원정부제이지 사실상 의원내각제안이다.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절충안인데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배분정도에 따라 대통령제에 가깝게 되거나 의원내각제에 가깝게 된다. 그런데 이번 이원정부제안은 의원내각제에 절대적으로 가까운 안이다.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은 평시에는 명목적 지위에만 머물게 되어 있다.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사실상 행정부의 수반으로 국정을 통할한다. 이런 제도를 굳이 대통령제라는 이름으로 혹은 이원정부제라고 부를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변형된 의원내각제라고 부르는 것이 실질에 가깝지 않은가?

국민이 직선의 대통령을 원한다는 이유로 완전한 의원내각제로 가지 못한다고 해서 의원내각제가 기본인 제도를 달리 불러 국민을 현혹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더구나 이런 변형적 의원내각제를 운영하려면 국회의 국민대표성이 강화되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정비가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개헌안이 말 그대로 형식적인 정치개혁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헌안의 전제조건이 아울러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역주의나 사표남발의 위험이 매우 높아 국민대표성이 취약한 현재의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 등으로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지구당마저 폐지되어 있고 공천에 있어 당내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으며 다양한 참정권의 제한이 광범위하게 부과되어 있는 현행 정당제도하에서는 의원내각제중심의 정부형태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핍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병행해서 제안된 정부통령제안 정도는 개헌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던 제왕적 대통령제론에 아무런 처방이 되지 못한다. 그런 개헌안을 전국민적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경제위기의 와중에 있는 지금 추진할 급박한 이유가 없다. 법률안제출권, 헌법기관구성권을 독점함으로써 국회위상을 강화하여 국회의원들의 지위가 높아질 지는 모르지만.

국민 주도가 아니라 국민 동원 구도 속에 전개되는 개헌논의

마지막으로 현재의 개헌론은 시한을 내년 중으로 제한하고 국민이 주도하기 보다 국민을 동원하려는 구도속에 진행되고있는 것이 문제이다. 국가공동체의 기본법인 헌법의 개정은 개정권자인 국민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연구안이 그러한 공감대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 개헌론이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개헌론도 시기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정치세력의 재편에 영향을 주는 미디어법이 날치기처리되고 방송의 정치예속화를 위한 정책이 무자비하게 진행되는 현행 정치구도하에서 개헌론은 또다른 정치적 세력재편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당면한 국정현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탁상공론적 개헌논의의 수혜자가 국민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제안된 권력구조개편안이 국민의 지위를 강화하기 보다는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국회의 지위를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두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권력구조개편안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은 장기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최대한 초월하면서 주권자인 국민이 그 불가피성을 스스로 공감하는 경우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차기 대권주자들만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선진화를 위한 최우선과제인 헌법에의 존중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국회의원의, 국회의원에 의한, 국회의원을 위한 정치를 위해 국민을 동원하기 보다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 국회의 자기혁신이나 국민의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나 정당제도의 개혁이 개헌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선거제나 정당제의 개혁은 헌법개정이 아닌 국회입법으로 가능한 것이므로 민주주의의 진전을 추구하는 것이 국회의 개헌론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라면 개헌보다는 선거제도개편 등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것이 먼저이다. 또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국회와 대통령의 관계형성은 애꿎게 헌법을 탓할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다수가 반대하는 입법전쟁을 불사하는 자세를 반성하고 정파를 떠나 스스로 주어진 헌법상의 권한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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