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정부 핵심 관계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까지 북한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연락을 받은 바 없다"면서 "심하게 말하면 '사설 조문단'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 일변도를 걸어 오긴 했지만 이번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장이면 대통령도 상주인 셈"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조문단을 만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핵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국면 전환을 할 적극적인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이는 이 대통령이 불과 5일 전 8.15 경축사에서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라고 말했던 것과도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고 고인이 남북관계 발전에 남긴 업적 등을 감안해 북한의 조문단은 수용했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 이상의 의미는 부여할 수는 없다는 인식도 드러낸 셈이다.
▲ 이번에 조의방문단 단장을 맡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지난 2005년 8.15 행사 때 서울을 찾아 현충원을 참배한 바 있다. ⓒ연합뉴스 |
이 관계자는 이어 "북한은 김대중 평화센터 쪽에 이야기를 해서 오겠다는 게 아니냐"며 "어떤 인사들이, 어떤 일정으로 온다는 것인지도 공식적으로는 우리 정부는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북한이 조문단 파견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철저히 배제된 대목에 대한 불쾌감도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명의로 정부가 아닌 김대중 평화센터 측에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보내 왔고, 정부는 이를 평화센터로부터 전달받았다.
조문단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다. 김 비서는 지난 2005년 8.18 민족대축전 참가를 위해 서울을 방문해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파격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당시 입원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문병하기도 했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즉각 조전을 보내 오고, 이처럼 비중있는 인사에게 조문단 단장을 맡긴 것은 정부에 보내는 일종의 '대화 메시지'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왔었다.
북한이 조문단 체류 일정을 '당일치기'가 아닌 1박 2일로 통보해 온 대목도 이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양국 당국 간의 물밑대화 여부와 그 내용에 따라 본격적인 관계개선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핵심 관계자가 조문단에 대해 '사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냉랭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이번 서거정국이 남북 대화의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처럼 찾아 온 대화의 계기를 정부 스스로 차버렸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쪽에서는 현재 북한이 조문단 파견을 통해 남남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거나 통민봉관(通民封官. 정부를 따돌리고 민간하고만 대화함) 전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는 정부가 정말로 당국간 대화를 거부했을 경우 쏟아질 비난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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