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같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복기해 보면 그다지 개운치가 않다. 국장은 서거한 전직 대통령의 장례와 관련해 현행법이 허용하는 최대 예우다. 유족 측도 사전에 국장을 강력하게 희망한다는 의사를 정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서거 이틀째가 되도록 말이 없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최고 대우로 장례를 치를 것"이라는 정도로 예의를 차린 정도다. 18일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장례형식 문제는 전적으로 유족 측에 달려 있다"던 청와대도 19일 오후까지 가타부타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었다.
정부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 간의 형평성, 국장을 거행할 경우 영결식 당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하는 점 등을 근거로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민주화와 남북관계 전진에 헌신한 고인의 업적과 무게감을 감안하면 이같은 행정적인 변명은 군색해 보인다. 정부가 '김대중 국장'에 대해 이처럼 적지않은 거부감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 ⓒ프레시안 |
김대중과 박정희, 민주화와 산업화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국장은 단 한차례 거행됐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직 대통령으로서 10.26이라는 뜻밖의 사태로 생을 마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이후 최규하 전 대통령, 최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국민장으로 치렀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유족들은 가족장을 택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관례'로 인식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서거했기 때문에 국장을 치렀지만,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는 경우에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국민장이 맞다"는 정부 측의 논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일단 현행법의 내용을 보자.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할 수 있다"며 그 대상자를 "대통령을 역임했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서거 시점에 재임중이었는지 여부는 국장과 국민장의 형식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형식논리 뒤에 숨은 진짜 이유가 의심을 받는다. 혹시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의 상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산업화의 상징'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등하는, 혹은 그를 넘어서는 현대사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조갑제, 김동길 등 '극우보수'로 분류되는 논객들이 'DJ 국장'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게 방증으로 읽힌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삶 자체는 곧 '저항과 탄압'으로 요약된다.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1년 인제 재보궐 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의원에 당선된 3일 만에 박 전 대통령의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곧바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김 전 대통령은 당선자 선서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가장한 정치테러로 인해 평생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일본에서 유신반대 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되는 등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수년 간의 가택연금과 투옥도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이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의 아이콘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민주화'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는 "장례형식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 두 가지 가치, 민주화와 산업화가 현대 한국 사회를 형성한 커다란 물줄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시 국장이라는 형식을 택하는 게 순리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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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산업화를 '양날개'로 생각했다면
일반적인 인식이 이러한데도, 정부가 장례절차를 확정하지 못하고 고민했던 배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존적인 위상을 지켜내려는 보수 진영의 협애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족 측과 정부의 협의가 '국장+6일장'이라는 절충적인 형태로 봉합된 것도 국장만큼은 안된다며 눈을 부라리는 보수진영과 국민적 추모 분위기 사이에서 나온 다소 기이한 결론이라고 하겠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갈무리해 계승·발전시키겠다며 소위 '선진화'를 표방해 왔다. 하기에 김 전 대통령의 장례 형식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현 정부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 발전의 양날개였던 민주화와 산업화를 얼마나 균형있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시금석이기도 했다. 단순히 서거한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남북화합, 동서화합 등 통합의 욕구가 분출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도 "민주화화 민족화해를 향한 고인의 열망과 업적은 국민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라며 "남북화해와 국민 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장 형식으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지난 이틀 간의 지난한 줄다리기를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의 아쉬움이 더욱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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