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림의 <더 킹>은 지난 1월 18일에 개봉해 2월 21일까지 5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다. 영화 마케팅 담당자들 사이에서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는 말이 나도는 걸 보면, 13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며 출발한 영화가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결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 정도 규모의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흥행 요소를 버무려 넣고 얻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톱스타 조인성과 정우성을 캐스팅하고, 그 동안 제작된 조폭영화와 검사가 주인공인 영화 그리고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인상 깊은 실제 사건들을 이리저리 짜깁기 했다. 여기에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좋은 친구들> 같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참고했다. 주인공 박태수의 고등학생 시절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2004)가 떠오르고, 그의 조폭친구 두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비열한 거리>(2006)가 생각난다. 목포의 조폭인 들개파의 두목이 제거할 대상을 개가 물어뜯어 먹어치우게 할 때는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악랄한 인물인 램지 볼튼의 행각을 보는 것 같다.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병두는 열악한 환경에서 병든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조폭의 일원이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역시 조인성이 연기하는 <더 킹>의 태수는 어머니 없이 사기꾼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권력을 동경해 검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에 매진해 서울 법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법을 어겨야하는 병두와 법을 수호해야하는 태수 사이에 차이는 별로 없다. 조폭과 검사는 성공하기 위해 자기의 자리에서 각각 나쁜 짓을 한다. 조폭이 나쁜 검사가 되고 조폭영화가 이른바 검사영화가 되었다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내부자들>(2015)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더 킹>은 제작되지 않았거나 다른 영화로 등장했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대대적인 흥행작으로 등극하면,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뒤를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은 정치권, 언론, 재벌, 검찰 그리고 조폭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부패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구조를 선정적인 방식으로나마 드러냈다. 그런데 <더 킹>에서는 한강식과 그의 심복인 양동철과 태수, 세 명의 검사가 중심이 된다. 한강식의 배후에는 들개파 두목이 있고 태수에게는 들개파의 조직원 두일이 있지만, <내부자들>의 정치깡패 안상구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더 킹>에는 오로지 검사 세 명이 모든 일을 한다. 한강식과 심복들이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 과정을 그리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적폐인 정치검찰의 타락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들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고 계속 살아남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영화 제목의 '킹'이 마치 한강식인 것처럼, 그를 움직이는 윗선의 존재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산더미 같은 정보 수집을 통해 야당 국회의원의 약점을 잡아 곤경에 빠트리거나, 상대에게 불리한 정보를 넘겨주거나, 이슈를 이슈로 덮는 설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와 같이 인물이 각종 선거에서 실제로 자행했던 진짜 악랄한 공작은 볼 수가 없다. 대신 그는 무당의 점괘에 더 매달리는데, 계속 잘 찍던 무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하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맹활약하는 정치검찰의 행태를 생생하게 그리기가 부담스러웠는지(무서웠는지), 한강식은 부하들과 춤을 추고 굿을 하는 등의 장면을 통해 기묘하게 희화화된다. 한편으로 그가 직접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특정한 현존인물의 악행을 떠올리게 하는 난처함을 피하려고 했는지, 장소는 대공 분실 같은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 들개파의 도살장 같은 아지트이다. 정우성이 연기를 못해서인지, 외모가 너무 수려해서인지, 한강식은 현실에 존재하는 소름끼치는 괴물이 아니라 시종일관 영화 캐릭터로서 비현실적인 인물로 머문다.
태수의 경우에는 부잣집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장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평범한 검찰로 살아간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 불의와 타협함으로써 그는 한강식의 심복이 된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부와 권력의 커넥션이 그려질 여지가 사라진다. 또 그를 전라도 출신으로 설정하고 자대배치 시에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는 장면을 넣었으면서도, 이후 승진 같은 문제와 연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국 사회에서 엄존하는 지역차별이 드러날 여지가 사라진다.
이 영화는 전두환에서 이명박에 이르는 대통령과 대선 과정의 다큐멘터리 화면 등을 계속 삽입하고, 실재 일어났던 사건들인, 여배우의 섹스 동영상 유출이나 공연음란행위로 걸린 검사 등의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가미하면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한 듯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끊임없이 사건을 설명하는 태수의 내레이션은 그것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장면과 장치를 걷어내면,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차고 넘치게 활용하는 조인성과 정우성(심지어 그들은 30년의 세월이 흘러도 항상 젊은 모습을 유지한다), 그리고 조폭과 연관된 과도하게 잔혹한 장면이 남는다. 태수의 아내,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정의의 사도처럼 등장해 한강식과 양동철을 좌천시키는 안희연 검사 등은 여러 번 등장하는데도 별로 존재감이 없다. 영화가 돈과 권력으로 강고하게 구축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차원에서만 비리를 다루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 시대임에도 그 두 명의 나쁜 검사들만 권좌에서 끌어내리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제거되자, 평범한 샐러리맨 같았던 검사가 부장검사가 되고, 안희연이 여성최초의 감찰부장이 되는 시대가 도래 한다!
그런데 태수는? 그는 우여곡절 끝에 한강식에게 버림받고 검사직에서 물러나 인생이 거의 끝장난다. 만취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병실로 실려 가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다. 그는 "신이여, 우리를 용서 하소서"라고 말하지만, 다음 장면의 전개를 보면 그저 영혼 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태수는 한강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야당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이 과정에서 전라도 목포출신이라는 점을 비롯해 모든 경력과 활동이 미화된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한강식 등의 비리를 폭로하고 검찰개혁과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정치는 오로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태수는 차기 대선의 여당의 유력주자이자 4선 의원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도전장을 던진다. 민주투사로 변신한 자신을 향해 "나는 사기꾼이자 양아치였고 권력을 위해 충성하는 개였다"고 조롱하면서, 그는 정치를 드라마와 쇼의 장으로 활용한다(현실이었다면, 태수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는 건 정말 인생이 끝장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태수의 변신과 함께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하면서, 정치에 대한 조롱과 냉소주의를 전파한다.
감독은 태수가 국회의원이 됐는지 안됐는지의 여부를 관객에게 넘긴다. 한재림은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한국 현대사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안희연 같은 검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대신 태수처럼 권력을 추종하며 나쁜 짓을 일삼는 기회주의자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이동시킨 다음, 관객에게 그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 이 때 태수는 "내가 당선 됐는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당신이 세상의 왕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왕이다. 그렇다면 여당의 4선 의원과 야당의 태수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끌어내리고 선택할만한 자들을 그 자리에 세워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결말을 결정하지 않은 채(못한 채),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이 영화는, 결국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시대착오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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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영화평론가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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