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한국영화를 정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흥행작을 중심으로 돌아보면, <내부자들>로 시작해 이와 비슷한 유형의 영화 <마스터>로 이어진 흐름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의 대중영화를 논할 때 재미와 흥행은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일종의 블랙홀이지만,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해보자.
<마스터>는 실화와 <내부자들>의 아이디어를 응용한 영화이다. 따라서 전반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으로 불리는 조희팔의 ‘다단계 사기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전개되고, 후반부는 외국으로 도망간 진현필을 잡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에 발생한 조희팔 사건은 피해자 3만 여명에 피해금액 4조 원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규모의 사기 범죄이다. 그러나 조희팔이 중국에서 죽었다고 발표한 뒤 수사는 중단되었고, 측근이 검거되고 나서도 수사에는 진전이 없었다. 처음에는 금방 해결될 것으로 보였던 사건이 거의 미궁으로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사법 당국, 검찰과 경찰 간부, 지역 정치권이 모두 연관된, 조희팔의 비호세력 때문이다. 특히 검찰 수사관이 거액의 뇌물을 받거나 담당 경찰관이 중국에서 금품수수에 골프접대를 받는 등, 세상에 드러난 검찰과 경찰의 부패 고리는 매우 심각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니, 사건이 해결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그것이 알고 싶다>(2015/10/10)와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크라임>(2016/02/22, 2016/10/16) 참고).
그러므로 조희팔 사건에서 '조희팔과 부패 경찰/검찰 가운데 누가 더 나쁜가'라고 질문할 때, 사기꾼의 범죄를 방치하고 비호한 후자가 훨씬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가능한 빨리 사건을 해결했다면, 피해자들의 피해가 가중되면서 길거리에 나앉거나 자살에 이르는 비극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희팔 사건을 영화로 각색할 때, 어떤 인물이 주인공으로 적합한 것일까?
<마스터>의 주인공은 지능범죄 수사대 김재명이고, 그가 끝까지 수사할 수 있게 독려하는 인물은 경찰청장 이정수이다. 김재명은 경찰대 수석입학, 수석졸업, 사법고시를 패스한 엘리트 형사이다(시나리오에는, 강남에서 재산세를 내는 설정이 있으므로 부유하기까지 하다).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는 배경도 족보도 없어 번번이 승진에서 탈락하자 성공하기 위해 지배층의 부패 고리를 파헤치는 일에 착수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의 하나가 '검찰개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장훈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공마저 뒤로 하고 유력 대통령 후보와 재벌회장과 주류 신문사 주간을 일소하는 설정은 판타지이다.
이 영화는 판타지를 그리면서 미흡하게나마 우장훈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반면 <마스터>의 김재명에 대해서는 가족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으며 알려진 정보는 엄청난 스펙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성공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철두철미하게 정의를 구현하려는 형사이기 때문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진현필을 검거하려는 인물’이라고 설명 할 수밖에 없다. 강동원이 연기한 김재명은 우장훈(조승우)이나 <베테랑>(2015)의 서도철 형사(황정민), 더 나아가 한국영화에 등장한 어떤 형사/검사보다 비현실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한편으로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참고로 해서, 여러 명의 남성 스타를 출연시키면서 슈퍼히어로의 자리에 검찰/경찰 같은 일종의 한국식 영웅을 가져다 놓은 결과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영화에도 나타나고 있는 컴퓨터 게임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재명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다른 주요 인물들인 박장군, 진현필, 김엄마 등에 관한 정보도 거의 알려지지 않고, 모두 단순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영화가 사건을 따라가는데 급급하기 때문인지 인물들 사이에는 이상할 정도로 감정적인 교류가 없다. 또 사기의 피해자들을 언급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부자들>에서 우장훈과 정치깡패 안상구 사이에는 미묘한 우정이 형성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끝난다. <마스터>에서는 박장군이 진현필의 최측근이었다가 김재명의 협력자가 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끝까지 우정 따위는 형성되지 않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박장군과 친구 안경남도 헤어진다. 인물들이 기능적으로 만났다가 뿔뿔이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삶이 없다. <내부자들>이 훌륭한 영화라기보다는 <마스터>가 흥행의 비결을 답습하면서 좀 더 도식적인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식 영웅의 등장과 판타지는 이전의 원고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헬조선의 관객들이 사회의 긍정적인 가치들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지치도록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나마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모습을 보고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영웅이 헬조선의 한 축인 검찰/경찰이라는 설정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마스터>에서, 김재명은 진현필 일당만 잡는 것이 아니라 관련자 전원을 일망타진하겠다는 목표로 진현필의 뇌물 장부를 입수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는 가운데 진현필의 체포가 늦어지면서 사기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진현필 일당과 비호세력을 일소하는 것과 피해자의 확산을 막는 것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결국 김재명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에게 피해를 더 키운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명은 '장부에 있는 인간들을 다 작살내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그 과정의 부수적 피해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퍼퓰리즘'으로 귀결된다. 김재명은 마침내 진현필을 잡고 그가 사기로 모은 자산을 확보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김재명은 '처칠 수상이 탄 자동차가 과속을 하자 경찰이 딱지를 뗐다'는 유명한 일화를 부하들에게 들려주면서, '법과 원칙의 준수'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진현필의 자산이 국고로 환수되고 다시 피해자들한테 가려면 일 년은 걸린다'는 이유로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통장에 돈을 입금한다. 입금된 통장을 보며 환희에 찬 피해자들을 보여줄 때, 김재명의 실수와 범법행위는 ‘퍼퓰리즘’의 우산 속에 가려진다. 아울러 <내부자들>에서도 그랬듯이, 반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논리적인 무리수까지 모두 잊게 만든다.
영화는 김재명과 형사들의 경찰차 대열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우리는 끝내 진현필을 비호한 인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작살나는 모습도 보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판타지를 도입하고 포퓰리즘에 편승해서 한국사회의 적폐에 대해 공격하는 척하지만, 사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장면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부추기는 것 같다.
그러므로 질문하고 싶다. 2016년 한국영화 흥행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내부자들>과 <마스터>는 그럼에도 기존의 지배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위험한(?)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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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영화평론가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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