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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세월호…그것도 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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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세월호…그것도 무스비!

[김경욱의 데자뷔] 애도조차 못하는 우울증 사회의 힐링 <너의 이름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박스 오피스에서 눈에 띠는 영화가 두 편 있다. <라라 랜드>와 <너의 이름은.>. 이 영화들의 흥행 성공이 흥미로운 점은 박스오피스의 정점에 있는 한국영화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마스터>, <더 킹> 같은 영화를 예로 들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모티브로 하면서 음모와 배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매우 거칠고 어둡다. 반면, <라라 랜드>는 할리우드의 주요 장르 가운데 가장 낙관적인 뮤지컬이며, <너의 이름은.>은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다. 두 편 모두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판타지를 선사한다. 현재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정서를 채워주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에 결여된 감수성의 공백을 메워주면서, 관객을 위로해주는 일종의 '힐링 시네마'로서 각광을 받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함께 돌아와 위력을 떨쳤던 퇴행적인 '신파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조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라라 랜드>는 지난번에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너의 이름은.>을 살펴보려고 한다. <너의 이름은.>에서, 도쿄에 사는 고등학생 소년 타키와 이토모리에 사는 동갑내기 소녀 미츠하는 잠을 자는 동안에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어떤 불가사이에 의해 몸이 뒤바뀌는 설정은 이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러 번 반복된 아이디어이다. <너의 이름은.>은 시작하고 30분쯤까지는, 그런 작품들처럼 남녀가 뒤바뀌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그러나 1200년 만에 돌아온 혜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던 날, 그 일부가 이토모리 마을을 덮치는 사건과 함께 이야기는 재난의 드라마로 바뀐다. 더 이상 몸이 뒤바뀌는 현상이 사라지자, 타키는 꿈에서 깨면 사라지는 기억의 흔적을 들고 미츠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녀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타키는 미츠하를 잃어버린 것이다.

▲ 혜성이 다가오는 도쿄의 밤하늘.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상실'이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의 여주인공은 '언제나 무언가를 잃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한다. <언어의 정원>(2013)의 소년은 뒤늦게 여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초속5센티미터>(2007)에서, 그렇게 애틋했던 소년과 소녀는 어른이 되었지만 다시 만나지 못한다. 작품마다 상실에 수반되는 멜랑콜리의 정서가 듬뿍 담겨있어 마음을 흔든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 순정만화와 사춘기의 감수성을 절절하게 녹여내는 솜씨라고 한다면, <언어의 정원>과 <초속5센티미터>의 에피소드 1편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모리타 요시미츠의 <소레카라>(1985) 또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1995)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것 같다. <초속5센티미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장면은 <러브 레터>의 그 유명한 대사 "오겡키데스까?"를 떠오르게 한다.

벗 꽃이 초속5센티미터로 날릴 때, 눈과 비가 하염없이 쏟아질 때, 혜성의 일부가 땅에 떨어질 때, 신카이 마코토의 주인공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상실’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황을 너무나 실감나게 그릴 때,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너의 이름은.>은 여기에 2011년, 일본에서 실재 일어난 최악의 사건, 동일본대지진의 참사를 더한다. '상실'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집단의 경험으로 확대한 것이다. 상실은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지만, 특히 참사에 의한 상실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타키와 미츠하가 문득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건 그 증상이다. 또 상실의 트라우마에는 항상 기억과 망각이 문제가 된다.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고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하는 증상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타키는 미츠하와 얽혔던 일들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잊어버린 채,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찾아야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우울해한다.

▲ 초속5센티미터의 속도로 떨어지는 벚꽃. <초속5센티미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땅 속 깊은 곳의 지각변동으로 인한 지진을 천공에서 빚어진 돌발 상황으로 바꾼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하늘의 이미지는 자주 반복되는 풍경이다. <너의 이름은.>에서도 별이 가득한 하늘, 석양에 물든 하늘, 혜성이 다가오는 하늘 등, 갖가지 표정의 하늘을 볼 수 있다. 하늘은 항상 우리의 머리 위에 있지만, 도시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면 거의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영화 같은 데서 하늘의 풍경을 보게 될 때, 잊어버린 걸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정교하게 그린 하늘의 이미지를 대할 때, 문득 거기서 우주의 비밀 한 조각을 엿본 것 같은 상념이 든다. 하늘뿐만 아니라 눈과 비, 흩날리는 벚꽃 등등, 하늘에서 내려오는 건 모두 어떤 심미적인 감수성을 선사한다.

<너의 이름은.>에서, 혜성이 다가오는 장면은 꿈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나 그 우주 쇼의 마지막은 마을 전체를 파괴하는 재앙이 된다. 그 일련의 이미지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작폭탄을 떠올리게 만든다. 2차대전 이후에 등장한 많은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원폭의 트라우마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영화도 그 자장 아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이 미일연합군과 유니온으로 분단되었다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설정에서, 이런 생각을 확인하게 된다.

▲ 비 내리는 날 아침. <언어의 정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키는 시간을 되돌려 미츠하를 살려내고, 두 사람은 마을사람들을 구해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 그런데 이 완벽한 판타지의 서사에는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도쿄 이미지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타키는 회사의 면접시험에서, '(사라진 이토모리처럼) 도쿄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대사와 함께 그 아름다운 도시 이미지(그리고 반복되는, 밤이 오기 직전의 석양의 이미지)는 절멸의 공포에서 발현된 꿈같은 풍경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 공포는, 이 영화에서는 결코 가시화되지 않는, 동일본대지진을 아직도 진행 중인 참사로 만든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재앙에서 온 것은 아닐까? 만일 후쿠시마의 원전사고가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완결된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피해를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상실의 트라우마에 더해 그것을 감추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마을 사람들을 되살리는 판타지를 선사하면서, 참사를 과거에 완결된 사건처럼 봉인하려고 시도한다.

한편으로 이 영화가 일본과 한국의 많은 관객에게 어필한 이유 가운데는 애도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세월호 참사(감독 자신이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의 몇몇 장면은 이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도, 사건이 완결되지 않았고 진상조차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도작업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분명 상실했는데 애도하지 못한 사회는 집단적인 우울증에 빠져들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회는 불안을 부추기는 나쁜 일들이 차고 넘치는 상태다. 그러므로 힐링이 필요한 우리는 비록 현실에서는 그들을 살릴 수 없었지만 판타지 속에서 살려내는 서사를 소비하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타키와 미츠하의 운명 같은 사랑을 보면서, 위안을 느낀다. 여기에 우리를 스쳐지나간 무수한 인연들에 대한 상념과 함께, 이 또한... 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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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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