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부산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이 이른바 '국제 예양'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놓인 소녀상도 같은 경우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에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 외교공관 앞에 어떤 조형물이 설치되는 것은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도 이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조 대변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서울 소녀상도 현재 위치에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셈이다.
정부가 서울 소녀상 이전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이뤄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외교부는 줄곧 "소녀상은 민간에서 설치한 것으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지면서 정부 기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외교부는 당시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 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정부와 해당 지자체·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본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등 강경한 대응을 보이자 지난 14일 외교부는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그리고 소녀상이 위치한 부산동구청 등 해당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에 맞지 않는 소녀상을 이전하라고 촉구했다.
여기에 23일 브리핑에서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 소녀상의 이전까지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면서, 정부가 일본의 요구를 과도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처음 세워졌던 2011년에만 해도 정부는 민간에서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서울 및 부산 소녀상 이전의 주요 이유로 들고 있는 '외교 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 예양' 문제에 대해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소녀상 설치와 1000회 수요시위가 계획돼있던 전날인 2011년 12월 13일 당시 외교통상부 조병제 대변인은 일본 정부로부터 소녀상(평화비) 설립 계획 중단 요구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일본 정부로부터 우려 표명이 있었고 그 같은 우려를 정대협 측에 전달했다"면서도 "(정부가) 평화비를 취소해 달라, 아니면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계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대변인은 "외교 시설의 안전과 품위 유지에 협조할 의무를 규정한 빈 협약 22조 2항을 유의하고 있으나 평화비가 과연 이런 품위 유지에 어긋나는 사항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가 전 정부 및 스스로 밝힌 입장까지 뒤집어가며 일본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배경에는 결국 지난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박근혜 정부가 당시 이 합의에서 소녀상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합의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혀 일본이 소녀상에 대한 철거‧이전 요구를 할 수 있는 여지 및 명분을 마련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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