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해당 지자체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외교부는 부산광역시와 부산시의회, 그리고 총영사관이 위치한 부산동구에 소녀상 이전에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지난 14일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소녀상 위치가 외교 공관보호와 관련한 국제예양과 관행 측면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입장 하에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오래 기억하기에 보다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방안에 대해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관련당사자들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을 공문으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이후 외교부가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 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정부와 해당 지자체·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입장과 동일하다.
또 지난 1월 13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 참석해 "정부가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릴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반하지 않는 방향으로, 오해를 사지 않는 방향으로 하는(기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제 예양 및 관행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설치하는 것은 대외적으로 우리가 (상대를) 설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하며 소녀상 이전을 종용하기도 했다.
외교부가 부산 소녀상에 대해 '저자세'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일본의 요구에 호응하고 있는 배경을 두고, 부산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의 귀임 명분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가 위와 같은 공문을 내려보낸다고 해도 해당 지자체가 소녀상의 이전이나 철거를 강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5년 한일 간 이뤄진 위안부 합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을뿐만 아니라, 부산동구청이 총영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한 차례 철거 시도를 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 부산 소녀상은 구청의 철거 시도 이후 이틀만에 계획했던 장소에 세워졌다. 이후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은 지난 1월 10일 "외교부가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해야 한다"면서 본인은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외교부의 공문이 발송된 이후에도 부산 동구청은 이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구청 공무원들이 소녀상을 철거하고 농성자들을 끌어낸 이후 대대적인 비난에 직면하면서 지금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데, 이를 다시 반복하라는 것은 구청 공무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 구청의 판단이다.
외교부 역시 지난 2015년 합의 이후 소녀상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민간단체에서 설치한 조형물을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기존 입장을 뒤집고 철거 집행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결국 소녀상의 이전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일본에 보여주면서 위안부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시도로 읽힌다. 하지만 일본은 소녀상 이전 및 철거를 위한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한 나가미네 대사를 한국으로 보낼 뜻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 바 있어, 외교부의 이같은 행보가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과 한일 간 갈등 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