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법정 수사 기한이 닷새 앞으로 다가오면서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절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세균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4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원내대표가 마주앉아 관련 논의를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94석인 한국당(전 새누리당)이 강경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다. 직권상정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정세균 국회의장은 기존 입장을 유지했으나 "직권상정은 의장 권한"이라며 최후의 가능성을 남겨뒀다.
정세균 의장과 민주당 우상호, 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주승용,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약 45분간 회동을 가졌으나 특검법 개정안, 이른바 '특검 연장법'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기동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특검법 직권상정과 (하남시장 보궐선거) 동시 선거 등 부분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회동 종료 직후 브리핑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합의된 것 없다"고 확인했다.
여지 남긴 정세균? "직권상정 하고 안 하고는 내 권한"
회동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회동에서 민주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국회가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직권상정이라도 해 달라'고 정 의장에게 요청했다. 반면 한국당은 야당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며, 직권상정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 원내대변인은 이날 회동에서 우상호 원내대표가 전달한 입장에 대해 "특검법 합의 당시 '준비기간 20일, (1차) 조사기간 70일, 2차 조사기간 30일'에 합의한 것은 김도읍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전체 기간을 120일로 하자고 했을 때 2차 연장을 해 주지 않을 리 있나'라고 한 말을 믿고 합의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한국당이 당론으로 (특검 연장에) 반대하는 것은 합의 정신 위반"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우 원내대표는 "황교안 대행은 특검 연장에 동의하는 게 옳다. 안 되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특검이 수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기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이 반대하자, 우 원내대표는 "(그러면) 국회가 특검법을 만들 당시의 본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4당 원내대표 명의로 황 대행에게 전달하자, 특검 연장에 동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자"고 추가 제안을 했으나, 한국당은 이마저 반대했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만약 황 대행이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으면 정세균 의장이 직권상정이라도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이용호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상황이 준전시상황과 다를게 뭐가 있느냐"며 "이게 국민 여론이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주 원내대표는 정 의장에게 "오늘 정 의장이 황 대행에게 전화라도 해서 국회의 입장을 전하고, 황 대행이 특검 연장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입장을 물어 달라"고 요구했고, 정 의장은 이에 대해 "전화하겠다"고 답했다.
주 원내대표의 직권상정 요구에 대해 정 의장은 "이 사안이 명확하지 않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그러나 직권상정 요구가 많아서 (내가) 전화번호를 바꿔야 할 정도다"라고 했다고 이 대변인이 전했다. 기동민 대변인에 따르면, 정 의장은 "황교안 대행이 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며 "국회가 합의한 정신에 맞게 당연히 연장에 동의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가 황 대행에게) 권유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직권상정 얘기가 나오자,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직권상정은 요건이 안 된다"며 "분명히 반대"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정 의장은 이에 대해 "정의화 의장 역시 직권상정을 한 사례가 있다"며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직무정지된 상태가 국가비상사태 이니냐'는 강력한 주장도 있고, 그것은 일부의 주장이 아니라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학자들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정 원내대표에게 반박했다고 기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기 대변인은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고 말고는 나의 권한이다"라고 말했으나, 직권상정 여부에 대해 특별히 '하겠다', '하지 않겠다'는 식의 확답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 의장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직권상정 가능성에 대해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합의하면 직권상정을 할 수 있지만, 법적 뒷받침이 안 되면 의사결정을 자의적으로 하긴 어렵다"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이에 따라 정 의장이 직권상정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론의 반발 등을 감안해 이날 회동에서는 최후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 기사 : 정세균 압박 시작 "특검 연장, 황교안이 풀어야")
우상호 "정세균에 직권상정 요구하기 난처"…난감한 민주·바른
국회의장과 여야 4당 원내 지도부 회동에서, 정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 국민의당뿐이었던 것도 눈길이 간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직권상정에 대한 민주당이 입장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의 입장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정하지 않았고 '국회의장이 충분히 제반 여건을 감안해 결단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답했다. '오늘 오후에라도 당 차원에서 정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할 것이냐'는 추가 질문에는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이른바 '특검 연장법'으로 불리는 특검법 개정안을, 당론 반대를 내세우고 있는 한국당을 우회해 처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법사위에서 통과를 시키든지, 둘째, 정 의장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 의장은 민주당, 권성동 위원장은 바른정당 소속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제가 며칠 전부터 계속 정 의장과 통화를 했지만, 정 의장도 '나도 하고 싶은데 요건이 안 되는 걸 국회의장이라고 해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이렇게 좀 난감해 하더라"며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참 저도 고민이다. 왜냐하면 지난번(19대 국회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을 때 '비상상황이 아니다'라고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해서 정의화 의장을 공격했던 전례가 있지 않느냐. 그런 입장에서 정반대의 논리로 정세균 의장을 공격하기가 굉장히 난처하다"고 토로했다.
우 원내대표는 대신 황교안 대행을 압박하는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는 "현행법의 취지로는 황교안 총리가 (연장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 분이 재량권이 있는 게 아니고, 수사가 미진하면 반드시 해 주도록 만들어 놓은 그런 법"이라며 "만약에 안 해 준다면 그 분 자체가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재량권 남용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국회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황 대행에 대한 탄핵까지 언급했다.
직권상정이나 법사위 강행 돌파 등의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황 대행에게 '특검 요청을 승인하라'고 압박하는 정도에만 그치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나 바른정당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새다. 바른정당은 전날 정병국 대표가 YTN 라디오에 나와 "자유한국당이 무슨 낯으로 연장을 반대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황 대행도 국민 혼란과 정치적 소모를 막기 위해서 조속히 입장 표명을 해야 된다"고 압박했지만, 자당 소속 권성동 위원장이 '여야 합의 없이는 법사위 통과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당 관계자들이 '본인 소신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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