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달짜리 비정규직이 본 세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달짜리 비정규직이 본 세상

[민미연 포럼] 비정규직 동생과의 대화

"여기 천국이야. 학교 공무원, 교사는 편하게 일하고 연봉도 많고 많이 누리더라."

학교에서 일하는 1개월짜리 비정규직이 한 말이다.

천국은 하늘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상에도, 대한민국에도 많이 있는 것 같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는 대한민국,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개한민국'에서 천국은 어디일까. 모든 사람들이 '헬조선'에 살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일부 계층은 따뜻한 성안에서 살고 있다. 반면 많은 대중은 시베리아처럼 추운 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살지만 온도 차가 매우 심하다.

2015년 11월 30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빠, 나 00중학교 행정실에 한 달짜리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됐어. 모레부터 출근해."

여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과거 공무원으로 재직했다가 사직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여동생은 지난 4월 초,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행정실 비정규직을 그만두었다. 여동생은 자발적 퇴직이라 실업급여도 타지 못한 채 6월 공무원시험에 낙방한 후, 지난 5개월 동안 관청과 학교 비정규직 채용 공고를 보고 10여 차례 자기소개서를 내고 지원했으나, 번번이 탈락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활이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일하려고 하던 중 어느 중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아 1개월짜리라도, 발등에 불이 붙었는데 이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중학교 행정실에 근무하게 됐다. 1개월짜리 학교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 짧아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내 여동생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요즘 관공서와 학교 비정규직 채용공고를 보면 초단기(근무 기간 30일, 50일, 60일, 90일짜리) 비정규 계약직을 뽑는 곳이 많다. 정규직 대체인력으로 비정규직을 소모품처럼 단기간 부려먹다가 버리는 것이다. 비정규 계약직이라도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최소한 6개월은 고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이 소모품인가.

ⓒ연합뉴스

여동생이 집에 놀러 와 말했다.

"나도 과거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요즘 공무원들은 내가 공무원으로 일했던 1990년대에 비해 봉급도 엄청나게 많고 좋더라. 학교 공무원, 교사는 편하게 일하고 많이 누리더라. 여기 천국이다. 이 중학교 행정실 사람들은 좋다.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다. 6급 공무원인 행정실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한 시간 정도 사무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 놀다가 퇴근할 때쯤 사무실에 들어와 퇴근한다. 그분은 내년에 정년퇴직인데,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아. 하는 일 없이 봉급 많이 받는다. 여기는 6급 행정실장, 7급 공무원, 무기계약직 여성, 나, 이렇게 4명 근무한다. 지난번 실업계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때는 남자 정규직 공무원 2명이 비정규직인 나에게 일을 떠넘겨 엄청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여기는 중학교 행정실이라 일도 적고 행정실장과 정규직 공무원이 일도 많이 시키지 않는다. 모두 느슨하게 살랑살랑 일한다. 오전 8시 30분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이다. 방학 때는 더 편하겠더라. 초등학교 행정실은 중학교 행정실보다 더 편하다고 하더라. 내가 학교에서 일을 많이 해봤는데, 교육행정직 공무원과 교사는 직장이 천국이다. 교육행정직 공무원과 교사들은 일은 적게 하면서도 월급과 각종 수당은 많이 받고, 게다가 교사들은 방학 때에는 놀면서도 월급 100% 챙겨가며 해외여행 가고. 모순이야. 비정규직과 민간 직장인, 노동자들은 고생하는데 그들은 누리는 것이 너무 많다. 기득권자야. 나도 생활이 어려워 공무원이 되려고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특권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공무원, 교사의 특권을 줄이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학교가 공무원과 교사에게 천국이구나."

"응, 천국이야. 나는 비정규직이라 한 달간만 천국 생활을 해. 비정규직으로 월 160만 원을 받는 사람도 천국으로 느껴지는데, 월 300~500만 원 이상 받는 공무원과 교사들은 본인들은 민간 직장인 생활을 안 해봐서 천국에서 산다고 못 느낄지 몰라도 천국에서 엄청나게 호강하며 평생을 사는 거지. 반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노비다. 관노비!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야."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관노비 맞다. 모두가 공무원, 교사처럼 누리는 삶을 살면 좋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그것은 가능하지 않아. 그래서 문제인 것이야. 모두가 양반이 되는 세상, 모두가 귀족이 되는 세상, 즉 상향평준화는 우리의 이상일 뿐 현실의 프로그램이 될 수 없어. 그렇다면 종신고용안정을 보장받는 공무원과 교사의 특권은 줄여야 해. 편하게 일하고 높은 연금을 받고 종신고용안정과 공무원연금을 보장받는 공무원과 교사는 고용안정은 보장하더라도 임금이 높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장기근속 50대 공무원과 교사를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해야 돼. 임용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국가에서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것은 공무원과 교사가 새로운 양반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야."

"오빠 말이 맞지만, 세상이 안 바뀐다. 공무원과 교사는 양반이다. 기득권집단이야. 누구도 그들을 개혁할 수 없어. 관료도 정치인도 공무원의 편이야. 관료도 공무원이야. 내가 지금 세상 걱정할 때가 아니다. 여기서 1개월 근무하고 다른 학교 행정실에 가서 몇 개월 더 근무해야 될 텐데, 걱정이다. 비정규직은 사는 게 걱정이다."

공공부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도 심하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가 극심한 현장의 생생한 소리이다. 내 여동생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청년·지인·기혼 여성 수십 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봤는데, 한결같이 여동생처럼 말했다. 재벌만 특권층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