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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섬트레일! 신성한 당숲으로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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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섬트레일! 신성한 당숲으로의 시간여행

2017년 3월 섬학교는 <여수 금오도·안도와 향일암>

‘황금[金]자라[鰲]의 섬’ <금오도(金鰲島) 비렁길>은 바다를 향해 열려있는 한국 최고의 섬 트레일입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져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비렁길(벼랑길). 수직으로 향하는 등산로와 달리 수평으로 이어진 비렁길은 걷기에 더없이 편안합니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비렁길에서는 3월이면 수정을 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정열적으로 피어나는 동백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끝이 결코 끝이 아니다. 대양이 시작되는, 금오도 비렁길 바다. ⓒ섬학교


금오도와 다리로 연결된 안도는 마을 앞 바다가 한반도 모양이라 해서 유명세를 탓던 적이 있는데 작지만 유서 깊은 섬입니다. 수백 년 된 고목들이 가득한 안도의 수호신인 당산은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2017년 3월,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섬여행가) 제57강은, 3월 4일(토)∽5(일)일 1박2일 일정으로 봄기운이 가득한 여수의 금오도와 안도에서 열립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또 일출이 아름답고 한국불교의 4대 해수관음기도처로 유명한 향일암도 탐방합니다. 상춘의 길목, 봄 섬 여행길에 초대합니다.

▲섬은 결코 폐쇄적인 곳이 아니다. 육지보다 오히려 무한을 향해 열린 공간이다. ⓒ섬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인 여수 <금오도>와 <안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봅니다.

황금[金]자라[鰲]의 섬, 금오도와 비렁길

사람은 누구나 태생적 여행자이며 길의 자녀들입니다. 지구는 은하계를 여행하는 우주선.
이 순간에도 우리가 탑승한 지구는 시속 11만 킬로미터의 놀라운 속도로 우주를 항해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의 동구 밖도 나가보지 못한 노인마저 은하 여행자인 셈이지요. 정처 없는 은하 여행자들, 시간 속의 나그네들.

황금[金]자라[鰲]의 섬.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금오도(金鰲島)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호환(虎患) 때문에 주민들이 당제를 올렸을 정도로 골이 깊고 산세가 장엄합니다. 사람과 선녀의 애절한 사랑이 깃든 옥녀봉과 신랑봉처럼 금오도의 산은 골골이 신화와 전설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여수시에서 그 산골짜기와 절벽에 걷기 길을 만들고 <비렁길>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비렁’은 ‘벼랑’의 전라도 여수 말입니다.

그 비렁길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다도해 풍경은 가히 선경이라 이를 만합니다. 금오도 함구미선착장에서 장지까지 18.5km. 비렁길은 가는 내내 청옥빛의 바다와 기암괴석으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길은 하늘로 이어진 듯도 하고 바다로 이어진 듯도 합니다. 가히 금오도의 하늘길이고 바닷길입니다. 산길이지만 비렁길은 잘 정비되어 어린아이라도 능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합니다. 금오도는 그 생김이 금빛 자라와 같다 해서 금오도(金鰲島)란 이름을 얻었다 합니다. 옛날에는 국영 사슴목장이었고 임금의 관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소나무인 황장목을 길러내는 황장봉산이기도 했습니다.

여수시에서는 2012년 세계해양엑스포를 유치하면서 여수 관내의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박물관 사업을 계획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19개나 되는 여수의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고 있거나 연결중입니다. 다리가 생긴 섬들은 육지와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대신 섬의 정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금오도 주민들은 육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금오도를 섬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초창기에는 섬 주민들 대다수가 연육교 공사에 찬성했지만 섬의 정체성을 잃고 몰락한 타 지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끝내 섬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참으로 고맙고 아름답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금오도의 특산물 방풍 ⓒ섬학교

꽃비 내리는 봄날, 금오도 우실마을 할머니들은 방풍밭에 나와 방풍나물을 뜯습니다. 금오도의 밭이란 밭은 방풍과 취나물, 머위나물, 나물들 천국입니다. 방풍을 뜯던 할머니 한 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말을 건넵니다.
"천지가 만지가 꽃이요.”
그렇습니다. 천지가 꽃이고 만지가 꽃입니다! 할머니가 방풍나물 하나를 건네줍니다.
“좀 잡숴 보시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텔레비서 좋다 안 합디야.”
오늘 이 방풍밭에서는 할머니 세 분이 일하십니다. 한 할머니는 밭주인이고 두 할머니는 품앗이를 나왔습니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방풍(防風)은 원래 해변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예부터 맛과 향이 좋아 잎은 나물로, 그 뿌리는 차와 약재로 애용되어 왔습니다. 아이들 머리가 좋아진다 해서 태교음식에 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중풍이나 산후풍 예방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방풍이지요.

금오도는 여수에서 방풍나물 재배가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금오도에 방풍 재배가 본격화된 것은 불과 오륙 년 전. 방풍이 값비싸고 약효가 뛰어난 나물이라는 방송을 본 어떤 이가 해변에 자생하는 방풍 씨앗을 받아다 재배를 시작했고, 그것이 급기야 금오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합니다. 밭주인 할머니는 풍에도 좋지만, 당뇨에도 좋다고 방풍 자랑에 입이 마릅니다. 당뇨가 있는 할머니는 직접 효과를 봤다는군요.
"입이 마르드만 방풍 즙을 내먹으니 입 마른 게 없어져 부러.”

금오도는 섬인데도 어업보다는 농사가 많습니다. 전에는 고구마가 주 작물이었는데 방풍 재배가 시작된 뒤로는 고구마를 거의 심지 않습니다.
“고구마 숭거 봐야 일 년에 몇 십만 원 왔다 갔다 한디, 방풍은 한철에 2년 고구마 농사한 것보다 나서 부러.”
점심시간. 밭주인 할머니의 며느리가 도시락 세 개를 싸왔습니다. 고등어조림과 김치, 도시락에는 계란후라이도 하나씩 올라가 있습니다.
“어서 오씨오. 같이 한술 뜹시다.”
할머니들이 밥을 같이 먹자고 하십니다. 나그네도 염치 불고하고 수저를 듭니다. 다디단 들밥. 점심시간은 모처럼 휴식시간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투기바람이 머나먼 섬까지도 들쑤시고 다닙니다. 서울 사람들이 땅만 나왔다 하면 사재기에 여념이 없다 합니다.
“빈 밭이 나기가 바쁘게 사 불어. 빈 집도 나기가 바쁘게 사 불어. 서울 사람들이 사 불어. 다 사 불어.”

방풍밭은 언덕에 있고 이 언덕에서는 금오도의 중심인 우실마을이 한눈에 다 보입니다. 할머니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동네 돌아가는 일을 훤히 내려다보고 일일이 참견하십니다. 마치 중계방송 같습니다. 눈도 좋으시지.
“두 마리는 밭 매네.”
“저게 뭐 짐승이야. 한 마리 두 마리 하게. 한 사람 두 사람이지.”
우체국 뒷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 차는 야물게 한 차 실었다.”
“돈 벌었다 하고 들고 달린다.”
방풍나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도 내는 것을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리들이 와서 숭어 잡아 자치네. 숭어 덤불이 왔어.”
숭어떼가 몰려든 바닷가로 물오리들이 날아가 숭어를 잡아챕니다. 숭어가 보이기야 하겠습니까. 이즈음에 해변으로 몰려드는 것이 숭어라는 것을 짐작으로 아시는 게지요.

“안 아프고 살다 가야지.”
“팍 죽으면 좋게. 서서히 죽는디야.”
“그래도 죽으면 좋지. 묵고 놀게. 사람 한나 못 친단가. 아이가 아이가 곡소리만 하면 됐지.”
“장사 지내는 건 자식들이 와서 하고 우린 먹어주기만 하면 되지.”
노인당에는 구순이 넘은 할머니들이 네 분이나 계십니다.
“문길 어메가 구십여섯. 검바구 함씨가 문길 어미 담이고.”
“젤로 나이 많은 함씨나 하나 죽으면 좋겠네.”

▲금오도의 봄은 떨어져도 다시 피어나는 동백꽃으로 황홀경이다. ⓒ섬학교

고령의 할머니들을 위해 일흔 넘은 ‘젊은’ 할머니들이 날마다 가서 밥을 해 드린답니다. 그래서 하시는 푸념이지요. 자식들이 모시지 않으니 고령의 할머니들은 날마다 노인당에 나와 밥을 드시는 것이 편하지만, 당신들 또한 봉양 받을 나이에 꼬박꼬박 밥을 해드려야 하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습니다.
“자식들 대학 공부시키고 그래 봤자 누가 부모 모실라고 한당가.”
“자식 많은 사람들이 더 못 모시데. 저 며느리가 모시겠지, 저 며느리가 모시겠지 하고 미루다가.”
“판판이 보면 자식 많은 사람들이 다 요양원으로 가 부리데.”
“그래야 싸울 일 없지.”
“함씨도 요양원 갈 일만 남았다.”
“나는 죽어도 안 가.”

밭주인 할머니가 눙을 칩니다.
“여기 함씨들 다 영감 없는 사람들이요. 어디 중신 한번 서보소.”
“문디 소리도 다 하네.”
두 할머니가 동시에 밭주인 할머니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시늉을 합니다. 휴식이 끝나고 할머니들은 다시 밭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한 할머니 문득 '은총'을 받으셨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 말씀.
“날도 좋은데 하늘로 딱 올라가 버렸으면 좋겠어.”
꽃비는 내리지, 하늘은 푸르지, 봄볕은 따뜻하지. 승천이라도 할 수 있을 듯이 기분 좋은 봄날입니다.

함구미마을, 방파제 주변에는 여행객이 떼로 몰려 웅성거립니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걸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썰물 때, 물이 빠지자 방파제 안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생겼습니다. 때를 놓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웅덩이에 갇혔습니다. 어린 숭어떼. 돌로 쌓은 방파제 석축 사이에는 그물이 쳐져 있습니다. 물고기들은 함정에 빠진 것이지요.

독 안에 든 물고기들, 할머니는 양동이를 들고 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됩니다. 할머니 손길을 피해 달아나는 숭어들. 힘껏 내달려봐야 물 빠진 갯벌일 뿐이지요. 할머니를 따라 나온 손녀아이도 맨손으로 숭어를 잡습니다. 옛날에 섬이나 바닷가에서 흔했던 원시 어로인 돌살, 돌 그물과 비슷한 어법입니다. 물고기가 귀해진 요즘은 좀체 보기 드문 풍경이지요. 오늘 뭍에서 온 여행객들은 어업박물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섬 여행이 가져다준 행운입니다.

▲바람의 장례, 섬에는 아직도 풍장의 풍습이 남아있다. 금오도의 풍장, 초분. ⓒ섬학교

한반도를 품은 섬 안도

금오도가 육지가 되는 연륙교 건설을 포기하고 2009년 다리를 놓아 연결한 금오도 남쪽 끝의 이웃 섬입니다. 255가구 481명(2012년)의 주민이 삽니다. 섬이 기러기 모양과 같다고 하여 기러기 '안(雁)'자를 써 안호(雁號)라 하다가, 1910년 안도(安島)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곁에는 솔개 모양의 섬 소리도[鳶島]가 있습니다. 금오도 또한 자라처럼 생겼다 해서 생긴 이름이고 보면 이 부근의 섬들은 동물의 형상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 특징입니다. 통영의 섬들 이름이 불교에서 유래한 것과 대비됩니다. 안도는 또 금오도와 소리도 사이에 들어있는 섬이라 해서 안섬이라고도 부릅니다.

안도리 마을 앞바다는 인공의 호수 같습니다. 바다에서 들어가는 입구는 좁은데 마을 앞으로 가면서 넓어지는 S자 모양의 특이한 지형입니다. 천혜의 대피항이지요. 섬사람들은 이 포구를 ‘두멍안’이라 부릅니다. 하늘에서 안도리 마을을 보면 한반도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화제가 되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었습니다. 안도는 신라 말 장보고 선단을 따라 당나라에 불법을 구하러 갔던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이 일본 귀국 길에 들렀던 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따르면 그는 장보고 장군이 암살 된 후 장보고 휘하에 있던 김진(金眞)의 배를 타고 가다 귀향길에 안도에 들렀던 것입니다.

1300년경 정씨(鄭氏) 내외가 제일 먼저 정착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안도리 마을에는 정씨 내외의 위패를 모신 제당도 있습니다. 1880년에 대화재가 났는데 가옥 100여 호(일설에는 300여 호라고도 함) 중 1채만 남고 전소돼버려 주민들 대부분은 금오도로 이주해 가버렸고 이후 다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1992∼93년에는 6천 년 전쯤으로 추정되는 조개더미 유적이 발굴됐습니다. 발굴에서는 다량의 유구와 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질그릇 조각들과 돌도끼, 대패날, 숫돌, 돌톱 등이 발견됐고 2007년 안도대교 공사를 하면서 조가비 팔찌를 찬 인골 2구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안도는 현대사의 비극인 양민학살의 현장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1948년 10월19일 여순사건의 와중에 진압군 김종원 대위가 안도 이야포로 상륙해 좌익 색출을 명목으로 마을 청년 12명을 학살했습니다. 일제 패망 후 도주한 일본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치망 어장을 안도마을 공동체에 빼앗긴 이웃 섬의 한 주민의 무고로 진압군이 들어와 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 합니다. 또 한국전쟁 때는 350여명의 피난민이 배를 타고 이야포로 들어와 주민들의 환대를 받았는데 미군 제트기 4대가 피난선을 폭격했고 국군복을 입은 자들이 피난선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피난선이 침몰하고 피난민 150여명도 몰살을 당했다 합니다. 분단의 비극과 양민 학살의 만행은 남쪽 끝의 작은 섬도 비껴가지 못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안도 마을 뒤에는 신성한 당산이 있는데 지금은 당산공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록수 거목이 울창한 당산 숲은 잘 보존되어 있으나 체육 기구를 들여놓는 과정에서 당집은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안도의 당산은 아직도 섬을 품에 안아 지키고 있으며 숲 안은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신들의 거처, 안도 당산으로 들어가는 문 ⓒ섬학교

‘기도빨’ 센 향일암과 관음신앙

해마다 새해 첫 일출의 장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도량. 향일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 말사입니다. 다리로 연결되어 이미 뭍이 된 여수 돌산도 금오산 자락에 있습니다. 향일암은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고 그 아래는 가없는 바다가 펼처져 있습니다. 암자는 고통의 바다를 건네주는 자비의 배[苦海慈舟]입니다. 그 바다의 섬들 또한 그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떠 있습니다. 향일암 왼쪽 바다에는 중생(衆生)의 서원(誓願)에 해수관음보살이 감응했다는 감응도, 정면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 바다에는 아미타불이 나투었다는 미타도가 있습니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된 향일암은 <여수군지>와 <여산지>에 따르면, 659년(백제 의자왕 19) 원효대사가 원통암(圓通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하고 또 950년(고려 광종 9) 윤필(允弼)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도 합니다. 조선시대 1713년(숙종 39)에 돌산 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한 지 3년 뒤인 1715년에 인묵대사(仁默大師)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향일암>이라 했다 합니다. 1986년 대웅전과 관음전·용왕전·삼성각·종각·요사채·종무실을 새로 지었는데 2009년 12월 20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대웅전과 종각·종무실이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다시 복원됐습니다.

향일암은 한국 불교의 4대 해수관음기도처로 유명합니다. 남해 보리암, 석모도 보문사, 낙산 홍련암과 함께 소위 '기도빨'과 '영빨'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지요. 나한 기도처로 유명한 운문사 사리암까지 포함해서 소위 기도빨을 잘 받는다는 암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바위산이나 바위 위에 있다는 점입니다. 바위에서 나오는 에너지 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때문인지 이런 기도처들에 가면 도량 안은 온통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원으로 가득합니다.

천정에는 빈틈없이 연등이 달리고 기도객들은 불상 아래서 수도 없이 절을 합니다. 시주를 하면 도량에서 기도를 대신해 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기원은 대체로 가족 건강과 사업 번창, 학업 성취 등의 소망이 가장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자녀들 좋은 대학 가게 해주고, 가족들 건강히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들. 소망은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돈과 학벌과 건강. 연등에 걸린 신도들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스님들은 조석으로 기도를 대리합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내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기도란 내 안의 부처와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본래 부처이니 기도하는 것도 나이고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나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처에서의 기도는 소망을 이루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인간 정신의 높은 곳으로 이끄는 고귀한 행위입니다. 정신의 고양을 통해 스스로 신과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나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것도 기도라 할 수 있을까요? 절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어느 기도처에 가나 문득 그런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향일암에 이르는 길은 가깝지만 가파릅니다. 향일암의 해수관음보살을 친견하려면 험한 산길을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대게 영험하다는 기도처들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중턱이나 언덕의 끝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기도처의 창설자들은 적어도 인간 심리의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녔던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가 자기 정화 의식의 정수란 사실을 그들은 이미 눈치 챈 것이겠지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땀 흘리며 높은 곳으로 오르는 동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의 찌꺼기들은 걸러집니다. 몸과 정신은 자연스럽게 정화되고 고양됩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기도처에 도달한 순간 기도객들은 이미 기도의 반은 성취하게 됩니다. 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영험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러니 바위의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영빨이 세고 기도빨이 센 것은 그 때문일 듯합니다.

오랜 세월 해수관음에 대한 이 땅 사람들의 신심은 투철했습니다. 관음신앙은 미륵신앙, 지장신앙, 정토신앙 등과 함께 불교의 대표적 타력신앙입니다. 관음신앙은 한국, 일본, 중국, 티베트 등에서 특히 활발합니다.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여깁니다. 티베트의 포탈라궁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을 조형화한 것이지요.

관음보살은 범어(산스크리트어)로는 '아바로키테스바라'. 한자로 번역한 것이 관음, 광세음, 관세음, 또는 관자재, 관세자재 보살입니다. 관음보살은 세상의 음성을 관찰하여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건져주고’[悲]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慈] 자비(慈悲)의 화신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 견뎌야만 하는 땅, 사바[忍土]세계 어디에 자비의 화신은 계시는 것일까요. 뭇 중생들의 바람과는 달리 언제나 소망은 끝이 없고 성취는 기약 없습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생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향일암 여명. 도량 안은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원으로 가득하다. ⓒ여수시

섬학교 제57강 여수 <금오도> <안도>와 <향일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3월 4일(토)>

07:00 서울 출발(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 지하철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57강 여는 모임
-여수 돌산도 도착
-돌산도 신기항 출항
-금오도 여천항 도착(버스 이동)
-점심식사(섬밥상)
-첫째날 금오도 비렁길 걷기(6.5km)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절터→초분촛대바위→신선대굴등전망대→두포마을→굴등전망대→ 촛대방위→직포
-숙소 도착(버스 이동)
-저녁식사 겸 뒤풀이(안도 최고의 토속음식점에서 생선회와 각종 해산물 등으로 푸짐하고 맛깔스런 전라도식 해물요리)
-자유시간 및 취침(다인실)

<3월 5일(일)>

06: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섬밥상)
-안도 당산 산책
-금오도 여천항 출항
-여수 돌산도 신기항 도착
-향일암 탐방
-점심식사(여수 장어탕)
-여수어시장 장보기
-서울 향발. 제57강 마무리모임

▲3월의 여수 <금오도> <안도> <향일암> 답사지도 Ⓒ섬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걷기 편한 차림(가볍고 따뜻한 등산복/배낭/등산화), 스틱, 식수, 윈드재킷, 우비(+접이식 우산),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미지참시 승선 거부당합니다).

▶이번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으며, 기상 악화로 섬 체류가 연장되는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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