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대변인은 "정상회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것이었다"며 "그만큼 틈새없는 진정한 동맹관계 구축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북한에 대해 한미 정상이 일치된 강경론을 펴는 모습을 두고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지만, 굳이 몽니를 부리지는 말기로 하자.
오히려 이번 순방기간 내내 기자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이질성'이었다. 미국 대선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이라는 촌평을 내놓기도 했지만, 두 정상의 가치관과 철학은 서로의 피부색만큼이나 달라 보였다.
▲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 두 사람 사이의 '이질성'은 피부색만큼이나 두드러져 보였다. ⓒ청와대 |
'공공성' 강조하는 오바마 VS '민영화 전도사' MB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왔다는 점을 빼면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은 거의 찾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학을 졸업한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지독한 노력'끝에 CEO까지 오르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다. 국회의원을 거쳐 서울시장에 당선되긴 했지만 '정치'가 이 대통령의 전공이 아니라는 점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목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5년 만에 일리주이주 의회 상원의원에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정치인'으로 살아 왔던 인물. 눌변에 토론을 즐기지 않는 이 대통령과 비교해 오바마 대통령은 호소력 짙은 연설로 유명한 달변가이기도 하다.
'가치'보다는 '성과'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차이는 여러 장면에서 드러났다.
워싱턴에 도착한 이 대통령이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있던 바로 그 시점, 마침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의학협회(AMA) 연례회에서 고질적인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4600만 명의 무보험자를 방치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라면서 의료보험 서비스의 공적 역할을 강조했다.
"의료보험 제도를 손보지 않을 경우,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꼴이 될 것"이라며 강력한 추진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 오바마 정부는 '사회주의적 제도'라는 공화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보조하는 공적 보험을 무보험자에게까지 확대하는 한편, 공영 보험과 민간 보험 사이의 경쟁을 유도해 보험료를 인하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공공(public)'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반복해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같은 움직임이 과연 무수한 비난과 정치적 공격을 뚫고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안갯속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천대받고 있는 '공공성'이라는 깃발을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부여잡으려 하고 있었다.
논란 속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긴 했지만 당선과 함께 이 대통령이 '의료보험 민영화'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목을 상기해 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대통령을 가진 미국인들이 조금은 부러웠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일까.
오바마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대해서야"…MB는 '뜨끔'했을까?
자유로운 의사표현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도 양국 정상의 인식에는 차이가 적지 않아 보였다.
워싱턴에 도착한 첫날 백악관 주변에 나가봤다. 하얀 백악관 건물을 지척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시민들은 저마다 피켓을 들고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뭔가를 외치거나, 요구하고 있었다.
초라한 행색의 한 노인은 자신이 타고 온 자전거를 세워 두고 홈리스 문제에 대해 정부가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었다. 반군 진압과정에서 스리랑카 정부가 행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시민들도 있었다. 주변의 경찰들은 이따금 이들을 힐끗거릴 뿐 별다는 제지를 하지 않았다.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차벽을 매일 지나다녀야 하는 기자로선 신기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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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던 백악관 로즈 가든. 한 미국기자로부터 이란 대선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돌발 질문이 나왔다. 미국에선 정상회담과 맞물려 진행하는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국내문제나 기타 주요 이슈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이란에서는 강경 반미주의자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이란 정부의 총격으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대선결과에 개입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반대파들을 진압하는 이란 정부에 대해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며 "평화로운 시위대에게 폭력이 행사되는 모습이나 평화로운 반대의사 표명이 억압될 때 그 장소를 불문하고 이는 미국인들에게도 우려할 일"이라고도 했다.
▲ 백악관 바로 앞 도로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한 노숙자. "B.O.(버락 오바마 대통령)는 과연 홈리스들을 도울 것인가"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고,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왼쪽) 1년 만에 다시 광화문 일대에 등장했던 '차벽'(오른쪽)과 대조적이다.ⓒ프레시안 |
미국에서도 재확인된 MB식 '일방소통'
미국과는 '견원지간'인 이란에 대한 언급이었고, 한국의 상황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니겠지만,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서 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금은 '뜨끔'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순방 마지막 날인 17일 오전 이 대통령은 기자단과 조찬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과 관련해 이 대통령 역시 모종의 '쇄신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이에 대한 추가 언급이 나올 수 있는 자리였고,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그러나 전날 밤 이 일정이 갑자기 취소됐다. 귀국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촉박한 일정이기었기에 청와대나 기자들 모두에게 부담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통령이 국내 현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 대목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순방길에 열리는 간담회인 만큼 정상회담과 관련된 내용만을 듣고, 이야기하겠다는 얘기다. 기자들 역시 "그렇다면 뭐하러 간담회를 하느냐"며 반발했고, 대신 이동관 대변인이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일방소통'이라는 이 대통령의 고질적인 '습관'을 미국에서까지 재확인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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